귀가 후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
유가족 “업무 많아 힘들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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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은 3년 전 우체국에 무기계약직 집배원으로 취직한 후 열심히 일하면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라며 좋아했어요. 국토대장정도 참가하고 헌혈도 자주 할 만큼 체력이 좋았는데, 최근엔 업무가 많아서 힘들다며 온몸에 파스를 붙이고 다녔습니다. 죽고 난 후 방에 가 보니 미리 작성해 놓은 정규직 전환 지원 서류가 놓여져 있더라고요. 지원은 하지도 못하는데….”
지난 13일 자택에서 돌연사한 공주우체국 소속 상시계약집배원(무기계약직)인 이모(35)씨의 형(40)은 14일 한국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하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전날 오후 10시쯤 어머니와 함께 사는 집에 귀가한 후 “피곤해 잠을 자겠다”며 잠자리에 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의 형은 “경찰은 돌연사(급성 심정지)라는데, 과로가 아니면 사망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씨는 매일 오전 7시20분에 출근해 오후 7~9시 사이에 퇴근을 했고, 토요일도 격주 근무여서 사망 이틀 전날(11일)도 일을 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연도별 집배원 과로사 그래픽=송정근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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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의 사망을 계기로 집배원 과로사 문제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오르고 있다. 최승묵 전국집배노조 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씨의 사망은 전형적인 과로사로 35세의 건강하고 젊은 노동자도 우정사업본부의 살인적인 노동환경을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고용노동부가 나서서 특별근로감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과로사(뇌ㆍ심혈관계 질환 기준)한 우정사업본부 소속 집배원은 총 82명이다. 2010~2017년까지는 10명 안팎이었지만 지난해 15명으로 늘었다.
집배노조와 유가족은 이씨가 평소에도 업무량이 많아 피로를 호소하는 일이 잦았고, 최근 들어서는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있어 업무량이 크게 늘어 힘들어 했다고 주장한다. 이씨의 죽음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집배원의 장시간 노동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공주우체국 관계자는 “올해 들어 이씨의 1일 평균 담당 우편물은 약 1,150통으로 같은 우체국 소속 집배원들 일평균(960통)보다 많지만, 집배부하량 시스템에서 우편물의 종류와 무게, 배달 거리 등을 고려해 집계한 결과를 보면 소속 집배원 평균 수준”이라며 과로사로 단정짓기 어렵다고 밝혔다.
지난 13일 자택에서 과로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공주우체국 소속 상시계약집배원 이모(35)씨가 숨지기 전 작성했던 정규직 전환 지원 신청 서류. 이씨 유가족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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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측은 집배원들의 과로를 부추키는 요인으로 업무량 측정 시스템인 집배부하량 시스템을 지목한다. 이 시스템은 적정한 여유시간이나 휴식시간 반영 없이 ‘도보이동시간 0초’등 업무량을 초 단위 산정해 현장 상황(배달 지역, 기후, 외부요인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실제 지난해 10월 우정사업본부 노사와 전문가로 구성된 ‘집배원노동조건개선기획추진단(이하 기획추진단)’이 발표한 자료에도 2017년 기준 집배원의 연간 노동시간은 2,745시간으로 우리나라의 임금 노동자 연평균(2,052시간)보다 693시간 길었다. 이에 기획추진단은 △정규직 집배원 2,000명 증원 △집배부하량 시스템 개선 △토요근무제 폐지를 위한 사회적 협약 노력 등을 권고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는 경영 위기를 이유로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기획추진단이 권고했던 정규직 증원 예산(417억ㆍ1,000명분)은 지난해 야당의 공무원 증원 반대로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집배원노동조건개선기획추진단장)은 “정규직 2,000명 증원이 힘들다면, 인력 충원이 시급한 신도시나 신규 대규모 아파트 단지 등부터라도 증원을 해야한다”면서 “우정사업본부의 경영위기 타개를 위한 우편요금 현실화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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