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시청에서 3일(현지시간) 2019년 지방선거 투표에 대한 개표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AP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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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풀뿌리 민심은 매서웠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지친 유권자들이 양대 정당에 회초리를 들었다. 집권 보수당이 지난 2일(현지시간) 지방의회 의원 등을 뽑기 위해 실시된 '2019 지방선거'에서 대패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 역시 많은 의석을 잃었다. 브렉시트를 두고 기성 정치권이 '결정장애'를 보이며 표류하자 유권자들이 단호한 심판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반면 중도주의 노선을 표방하며 브렉시트에 반대하던 자유민주당은 많은 의석을 얻었다. 자유민주당과 함께 EU 잔류를 선호하던 녹색당도 세를 불렸다. 브렉시트를 강하게 주장하던 극우정당인 영국독립당은 부진한 성적을 받았다. 선거를 통해 브렉시트와 관련한 영국 민심을 확인한 만큼 브렉시트 제2 국민투표 논의가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BBC방송에 따르면 집권당인 보수당과 제1야당 노동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2015년과 비교해 각각 1334석, 82석을 빼앗겼다. BBC는 이번 선거 결과를 "브렉시트를 둘러싼 혼란을 키운 거대 정당의 무능함에 대한 평결"이라고 풀이했다. 스카이뉴스도 "유권자들이 브렉시트 혼란과 관련해 보수당과 노동당 등 양대 정당에 싫증 난 점이 이번 지방선거 투표 결과로 이어졌다"고 풀이했다. 친(親) EU 성향인 자유민주당과 녹색당은 각각 703석, 194석이나 더 증가했다. EU 탈퇴에 적극적이었던 극우 성향 영국독립당은 145석을 잃었다.
브랜던 루이스 보수당 의장은 이날 BBC와 인터뷰하면서 "(이번 선거 결과는) 양당에 브렉시트를 완수하라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고 말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이날 웨일스 보수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유권자들이 브렉시트를 완수해줄 것을 양대 정당에 원하고 있는 점이 선거를 통해 드러났다"고 말했다고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도 브렉시트가 이번 선거의 변수였다는 점을 인정했다. 코빈 대표는 ITV와 인터뷰하면서 "유권자 중 일부가 EU와 관련해 양당의 접근법에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다"며 "이번 선거 결과가 하원이 브렉시트 교착 상태를 푸는 돌파구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메이 총리가 조기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등 리더십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인디펜던트에 따르면 이날 웨일스 전당대회에서 한 참석자가 갑자기 메이 총리의 사퇴를 주장하고 나섰다가 안내요원에 의해 밖으로 쫓겨나기도 했다.
게다가 5세대(5G) 이동통신망 구축 사업과 관련한 국가안보회의(NSC) 논의 내용을 언론에 흘렸다는 이유로 최근 경질된 개빈 윌리엄슨 전 국방장관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히는 등 메이 총리는 설상가상의 처지에 놓였다. 가디언에 따르면 윌리엄슨 전 장관은 총리실이 지적한 NSC 기밀누설 혐의를 부인하면서 "낡고 신빙성 없는 마녀사냥"이라며 이번 일에 대해 사법기관이 철저하고 공정하게 수사하도록 촉구했다. 메이 총리의 경질 결정에 반기를 든 것이다.
자유민주당과 녹색당은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크게 반겼다. 가디언에 따르면 빈스 케이블 자유민주당 대표는 "유권자들은 더는 보수당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보냈다"며 "동시에 브렉시트와 관련한 모호함 때문에 노동당에 상을 주기도 거절했다"고 말했다. 조너선 바틀리 녹색당 공동대표는 "이번 선거는 녹색당 역사상 최대의 승리로, 브렉시트가 이번 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분명하다"며 "녹색당은 영국이 EU 회원국에 남아야 한다는 분명한 태도를 보여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고 가디언이 전했다.
지방선거는 대체로 주택과 주차, 주민세 등 문제가 주요 이슈였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브렉시트가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영국은 지난 3월 29일을 기해 EU와 결별할 예정이었지만 두 차례 연기를 통해 이를 10월 말로 늦췄다. 이 과정에서 정치권은 분열된 모습을 보이면서 혼란을 자초했다. 영국에 대한 투자 중단을 경고하는 목소리와 함께 실제 유럽 등 다른 나라로 조직·인력을 옮기는 외국 기업도 늘어났다.
이번 지방선거는 잉글랜드와 북아일랜드에서 각각 실시됐다. 대도시와 준자치도시, 통합시 등을 포함해 잉글랜드 248개 지역에서 지방의원 8400여 명을 선출했다. 북아일랜드에서는 11개 지역에서 지방의회 의원 460여 명을 선출했다. 지난해 지방선거를 치른 런던과 스코틀랜드, 웨일스 지역에서는 올해 선거가 실시되지 않았다. 영국의 지방선거는 기본적으로 4년마다 열리지만, 지역구에 따라 2년에 한 번 지역의회 의원 절반을 뽑는 곳, 매년 3분의 1을 교체하고 4년째는 선거를 열지 않는 곳 등 다양하다. 영국 지방선거는 총 의석수보다는 지난번 선거 대비 의석수 증감으로 선거 승패를 판단한다.
[김덕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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