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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토)

"도움 요청은 자살 시도자의 권리…민관 통합 예방시스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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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2부 ⑤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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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정부의 힘만으로 자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방자치단체와 민간단체와의 협력이 만들어져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가장 많은 자살사망자 발생국'이라는 수식어가 13년 넘게 따라 붙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자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사회 구조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지난해 '자살 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발표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는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생명존중 사회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서 치열하게 고민해온 6명의 전문가에게 바람직한 대안이 뭔지 들어봤다.

◆ 자살예방에 민관 힘 합쳐야

전문가들은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살위험도가 높은 사람들의 스트레스 원인을 해결하려면 다양한 정부 부처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2008년 자살 고위험군으로 분류되는 자살사망자 유가족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자살자는 실업, 경제적 원인, 신체질환, 우울증 등 네 가지 이상 스트레스 요인을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요인들이 연속적으로 발생하며 최종적으로는 '날 누구도 도울 수 없다'는 심정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것이다.

백종우 중앙자살예방센터 센터장은 "여러 부처가 민·관과 협력해서 포괄적인 생애 주기별 맞춤형 지원에 나서야 결과적으로 자살률 감소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우울증 치료는 복지 서비스로 연결해 주고 직장 내 상사와 스트레스는 고용노동부가, 학교에서 또래와 갈등은 교육부가 도움을 주는 등 자살위험자의 환경에 맞는 예방·치료 정책에 이뤄져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은 자살대책기본법에 자살 대책은 보건, 의료, 복지, 교육, 노동 등 관련 시책과 유기적 연계를 통해 종합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그 결과 일본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는 2009년 25.7명에서 2018년 16.5명으로 급감했다.

민간 조직 차원의 자살 예방 역량 강화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현장에서 뛰는 지역사회, 학교, 직장, 군대 등 각 사회 단위별 민간 조직을 제대로 활용해 정부의 예방 정책이 밑에서부터 탄탄히 기반이 잡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민간단체가 채워줘 촘촘한 자살 예방 안전망이 돼 줄 수 있다는 설명이다.

◆ 다양한 가치 존중하는 문화를

타인의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게 생명 존중의 시작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중앙심리부검센터에 따르면 자살자의 심리를 부검한 결과 변화나 충격에 예민하거나 트라우마에 민감한 사람이 많았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 센터장은 "사회 전반적으로 타인이나 자신보다 사회경제적 위치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하대하는 문화가 근절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 센터장은 "감성노동자들에게 무조건 친절만을 강요하거나 등수만으로 획일적으로 평가하는 교육, 나와 다르면 인정하지 않는 문화 등 이런 흑백 논리를 들이대지 않고 다양한 가치를 존중해주는 게 생명 존중의 시작"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0·20대 사망원인 중 자살이 20% 이상으로 제일 높다"며 심각한 사회문제임을 강조했다. 박 연구위원은 "누군가가 자살을 고민할 때 이를 개인의 별난 문제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환경이 개선되어야 하고 공동체와 사회가 같이 고민한다고 알려줘야 한다"며 "자살은 보건복지부 혼자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고 사회 전체 구성원이 서로를 지키는 보호망을 쳐주는 게 장기적인 자살 예방 효과를 불러올 것"이라고 당부했다.

작은 공감의 한마디가 직장인 자살 예방의 시작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김인아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자살자 중 약 35%는 직업이 있는 직장인이며 최근 화이트칼라, 전문직 자살이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김 교수는 "패자부활전이 없는 한국 사회에서 중간관리자 관점에서 경영의 실패, 업무상 부담 등이 가중됨과 동시에 가족과 유기적 네트워크 단절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누군가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거나 '자살하고 싶다'고 말하는 등 징후를 보인다면 '힘들겠구나'라는 공감의 말 한마디라도 던져달라"며 "힘들면 치료를 받으면 되는, 누구나 한 번씩은 겪을 수 있는 과정이라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 자살유가족 지원 강화 필요

전문가들은 자살 위험에 놓여 있거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백 센터장은 "자살예방법 3조에 자살 위험에 노출된 사람은 국가와 자치단체에 구조를 요청할 권리가 있다고 쓰여 있지만 증평 모녀 사망 사건처럼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채 생을 마감한다"며 "정부가 구축한 긴급복지지원 서비스, 각종 센터나 민간기관의 지원, 치료비·응급의료지원 서비스 등을 권리 의식을 갖고 사용해 달라"고 전했다.

자살 충동이나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러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24시간 운영하는 자살예방상담전화 1393,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 전화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또한 광역·기초자치단체가 운영 중인 정신보건복지센터를 통해 추가적인 심리 상담, 의료기관 연계 서비스, 치료비 지원 등이 가능하다.

박 연구위원은 "자살을 시도하거나 생각한다는 것만으로도 부정적인 낙인이 찍혀버려 어려움이 있어도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분위기가 있다"며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주변에서는 선입견 없이 바라보고 들어주고, 또 국가는 이런 분들이 용기 내 소리를 냈을 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빈틈없이 준비해놓아야 한다"고 했다.

자살유가족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점도 강조됐다. 전 센터장은 "암으로 투병 중인 환자나 유가족 모임은 활발한데 자살을 숨기는 폐쇄적인 한국 문화상 우리는 아픔을 외면하고 감춘다"며 "외국의 경우 유가족의 아픔을 누구보다 공감하는 다른 유가족이 서로를 위하고 경제적인 부분을 도와주기 위해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 노인 자살 막는 데 환경 변화가 필수

전문가들은 노인 자살 예방을 위해선 사회 환경 변화가 필수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은 2017년 인구 10만명당 47.7명으로 OECD 평균(18.4명)의 3배 수준이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노인이 사회에 나올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근본적인 노인 자살 예방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노년층은 부모를 부양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녀에게는 부양을 못 받는 첫 세대이지만 부족한 준비 끝에 맞이한 노후에서 경제적인 어려움, 질병, 사회에서 소외된 고독감 등으로 우울증을 호소하며 극단적인 선택으로까지 이어지는 특성을 보인다.

이 교수는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치매 노인들이라도 사회에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배려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며 "다니기 쉽게 건물의 턱을 없애거나,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쉽게 다니도록 보도블록을 바꾸는 등 사회 환경 변화 추구가 결과적으로 효과적인 노인 자살 예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신혜림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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