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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20 (토)

"따뜻한 한마디가 내 생명 살려…내 도움이 누군가의 희망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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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

매일경제

"우연히 저를 보고 '힘들어 보여 걱정돼서 전화했습니다'라며 건넨 그분의 한마디가 나를 지금까지 살게 했어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고 싶었어요."

권순정 공군본부 자살예방교관(46·사진)은 10년 전 자신에게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회상하며 이같이 말했다. 권 교관이 자신의 생명을 지켜준 수호천사처럼 말하는 이는 당시 공군 20전투비행단 소속이었던 정재부 예비역 공군 준장이다. 권 교관은 2006년 남편의 사업이 갑작스럽게 부도나면서 빚쟁이의 독촉에 시달리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같은 해 12월에는 남편이 교통사고로 장애를 얻으면서 권 교관이 실질적인 가장 역할까지 떠맡게 됐다. 이후 3년 동안 빚에 남편의 치료비까지 더해지며 생활비는 거의 바닥나 있었다.

그는 어렸을 적 자살로 소중한 가족을 떠나보낸 과거가 있어 '자살유가족'으로 불리며 힘든 삶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1999년부터 공군 항공 장구 정비 군무원으로 일을 시작하면서 악착같이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가족의 위기는 그의 굳은 의지를 흔들어놓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사망 직전 자신을 찾아와 '고마웠다'며 인사를 건넨 것이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린 권 교관은 죄책감에 자신도 그의 뒤를 따르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됐다.

권 교관의 어두운 표정을 읽은 정 예비역 준장은 직접 연락처를 수소문해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 오후 집에서 멍하니 앉아 있던 권 교관은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괜찮으냐"는 한마디에 아무 말도 못한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권 교관은 "내가 이렇게 힘든 걸 알아주는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됐다"면서 "그날 울며 다 털어놓으니 죽고 싶을 때도 그분의 얼굴이 아른거렸다"고 회상했다. 그는 "내가 열심히 살아남아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을 내밀고, 작은 관심의 한마디가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권 교관은 도움의 손길을 이어나가겠다는 의미로 공군 인트라넷에 자살을 생각하는 장병을 위한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부대 상사의 추천으로 국방부 자살예방 교관화 교육을 수료했다. 공군 내에도 자살예방교육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직접 부대를 찾아다니며 설득했다. 이에 공감한 공군은 2011년 권 교관을 공군본부 자살예방 전담교관으로 임명했다. 아직도 육해공군 전체에서 자살예방 전담교관은 권 교관이 유일하다. 권 교관은 지난 5년간 연평균 170일 강의에 나섰다. 지난해에만 공군 장병 6만명이 권 교관의 교육을 거쳐 갔다. 지금도 공군에 입대하는 모든 장병이 권 교관의 교육을 듣고 있다.

권 교관은 고(故) 임세원 교수와 '보고 듣고 말하기'라는 자살 예방 프로그램을 함께 개발하기도 했다.

권 교관의 꿈은 자살로부터 안전한 군대와 대한민국을 만드는 것이다. 권 교관은 "전 국민이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자살 예방 교육을 받을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며 "게이트키퍼들이 단 한 명의 삶이라도 구할 수 있다면 힘닿는 날까지 현장에서 뛰겠다"고 전했다.

[신혜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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