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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이 책을 댁으로 들이십시오]해외살이의 환상을 깨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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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해외 생활 에세이 3권이 있습니다. 어떤 이는 스페인 깡촌에서, 어떤 이는 독일과 부탄에서, 또 어떤 이는 사우디에서 겪은 이방인으로서의 삶을 풀어냈습니다. 외국 남성과 결혼해 해외살이의 일상을 보여준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허나 각자 글쓰는 방식도, 외로움과 싸우는 방식도 달라서, 책이 주는 매력은 제각각입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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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 삶이란 불편까지도 감당한다는 것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스페인 고산 마을에서 일궈낸 자급자족 행복 일기

김산들 지음

시공사 | 336쪽 | 1만4800원


네팔에서 만난 남자를 따라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듣지 못한 채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 엽서 한 장을 썼다가 프로포즈를 받고 스페인에 눌러앉습니다. 결혼한 지 1년 되던 때, 남편은 전원생활을 제안합니다.

“도시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 부모로서 죄책감을 가질 것 같다. 아이들은 모름지기 자연에서 자라야 돼”

직접 가보니 1200m 고산지대에 있는 200년 된 돌집입니다. 단돈 600만원이라는 환상적 가격에 걸맞게 지붕이고 벽이고 문이고 성한 데가 없습니다. 돈이 없으니 집수리는 ‘셀프’. 주말마다 왕복 5시간 거리를 오가던 시간을 포함해 수리에만 7년이 걸립니다.

영하의 한겨울에 새집으로 이사를 했는데, 이미 만삭입니다. 아직 전기도 수도도 인터넷도 없죠. 촛불 아래 젖을 물리고, 남편은 전화 설치를 위해 정부와 수년을 싸웁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더니…. 태양광 전지를 도입하고, 저수탱크를 만들고, 인터넷을 연결합니다. 그 과정 속에 쌍둥이도 태어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집은 계속 진화해갑니다.

소나무 송진을 보며 “그건 꿀이 아니라 피야. 돌을 맞은 소나무가 피를 흘리는 거야!” 자연이라는 교과서 속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하루하루가 남다릅니다. 노인이 많은 시골마을이지만, 마을의 노인이 돌아가시면 “도서관 한 채를 잃었구나”라고 말하고, 나이가 들어도 지적 호기심이 넘치는 노인들이 많다는 부분도 생각할 거리를 줍니다.

“‘없다’는 것은 앞으로 생기리라는 가능성의 다른 말이었고, 그것을 둘이서 만들어간다는 것 또한 큰 행복이었다.”

끔찍한 추위 속에서도 다락방 창문 밖 설경을 보며 이곳이 천국 아닐까 생각합니다. 처음 전깃불이 집 안을 밝힐 때 심봉사 눈 뜨듯 기뻐서 춤을 춥니다. 남편이 도시의 전문가를 1년 반 동안 따라다녀 개통했지만 비바람 불면 끊기는 인터넷마저 너무 소중합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가슴을 칠 상황에 가슴 깊은 감사를 내놓는 저자를 보며, 안온한 삶을 추구한 이몸을 반성하게 됩니다.

“시골 생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불화실한 미래에 대한 ‘인내’다.” 이건 만국 공통의 진리일 것 같습니다.

<이 페이지에 머물다>

경향신문

<우리 가족, 숲에서 살기로 했습니다> 197~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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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커서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지을 꺼예요, 내가 커서 엄마처럼 어른이 되면 우리 집은 내 손으로 꾸밀 거예요’

동요를 듣던 아이가 질문을 던집니다

“엄마, 이 노래에서는 왜 엄마 아빠가 따로 일해요?”

당연한 질문입니다. 아이들에게 이 집은 아빠가 짓고 엄마가 꾸민 집이 아니기 때문이죠. 두 사람이 공동으로 만든 집이니 노래 속 남녀 불평등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요. 예전엔 몰랐는데, 동요도 동화책도 다시 듣고 보면 성 고정관념이 베어있는 구석이 참 많습니다.


■빵빵 터지는데 진지한, 독일·부탄 관찰기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소심한 글쟁이의 세상탐구생활

김소민 지음

서울셀렉션 | 328쪽 | 1만5800원


기자 10년차에 찾아온 허리 통증과 불면증.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습니다. 가진 거라곤 배낭과 물집밖에 없던 길 위에서, 누군가에게 심장이 뛰었습니다. “널 좋아한다고 내가 말했던가?” 문자 하나가 열어준 길은 독일로, 부탄으로, 그리고 서울로 이어집니다.

통장 잔고 사망선고 직전, 문방구 재고 정리 아르바이트를 구합니다. 동네방네 자랑했는데, 전화 통화로 독일어 실력이 들통나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잘립니다. 레스토랑 구인 광고를 보고 한 시간을 배회하다 물었는데 늙어보여서 탈락합니다. 대학 나온 여자인데, 펜대 굴리던 기자 출신인데 단순 아르바이트 구직도 어렵습니다. 한국 분식집에서 ‘인턴’으로 나흘째 일한 마지막날은 주인이 돈을 줄지 안줄지 전전긍긍합니다. 계란 부치고 만두 찌고 김밥 말다 불고기를 볶는데, 덤으로 주인 속도 볶았으니까요. 다행히 한국 무 한덩이와 40유로를 받아 들고, 세상 살 만한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부탄의 길은 평등합니다. 포르셰도 달구지로 만드는 길입니다. ‘위험 구간’이라는 팻말을 보고 누가 말합니다. “여기만 위험해? 이거 유머야?” 수도 팀푸에서 4시간 떨어진 시골학교로 갑니다. 집이 멀어 창문이 다 뚫린 기숙사에 사는 아이들. 잘 때 춥지 않냐니까 “친구랑 껴안고 자면 안 추워요.” 이날 5대 왕 생일이라 열린 학교 행사에서 교장이 말합니다. “특별한 손님이 오셨어요, 미스 코리아!” 읽는 사람도 죄스럽습니다.

어느 문장 하나 허투루 쓰지를 않는 저자입니다. 이야기마다 첫문장이 압권입니다. 문장은 웃기지만, 내용은 진지합니다. 독일에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현실이나 부탄의 약물중독 재활센터, 프랑스인 ‘개 엄마’ 이야기 등은 많은 생각을 던져줍니다. 실제 시간 순서와 다르게 독일, 부탄, 산티아고 순례길로 이야기를 배치한 이유는 에필로그에서 짐작해봅니다. 이웃인 줄만 알았던 사람이 가족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마치 영화나 드라마 속 반전을 접한 것처럼 앞부분 이야기가 다시 보입니다.

아참, 만인의 고민인 ‘화장실’ 이야기의 빈도가 높은 편입니다. 연재물로 읽을 때 명작이라고 주변에 전파했던 ‘이미 얼굴로 일을 보고 있었다. 낯빛이 똥색이다’로 시작하던 글은 아쉽게도 책에 없네요.

<이 페이지에 머물다>

경향신문

<이해하거나 오해하거나> 258~2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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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트레킹 4박5일 여정을 떠났습니다. 외국인 4명, 각 하루 100달러. 말 일곱마리, 요리사 한 명과 보조, 가이드가 짐을 들고 따라가는 ‘귀족’ 여행입니다. 성실한 요리사는 한 끼에 세 가지 반찬을 꼬박꼬박 내옵니다. 첫날은 고사리, 버섯과 치즈에 감자 넣은 ‘케와다치’. 다음날은 케와다치, 고사리, 버섯. 그 다음날은 버섯, 고사리, 케와다치. 컵라면 한 젓가락에 영혼을 팔 것 같던 사흘째부터 넷 중 셋이 설사대란에 휘말립니다. ‘성스러운 비’마저 대차게 쏟아집니다. 설산은 눈에 봬지도 않습니다.

결국 먹구름 사이로 설산이 모습을 드러낸 건 마지막 날 새벽입니다. 신들이 사는 봉우리 앞에서, 모두가 하찮음을 깨닫습니다. 그때 감동의 적막을 깬 것은, 누군가의 방귀 소리. 만인이 평등한 축복을 깨닫습니다.


■억압할수록 나는 더 강해진다

만약에 사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사막에서 보내온 힐링 에세이

김정완 지음

이담북스 | 375쪽 | 1만5000원


‘아바야’(avaya). 결혼식 후 사우디로 돌아가는 영국인 남편이 “안 입으면 잡혀가”라며 생일선물로 사준 옷의 이름이자, 사우디에 막 도착한 그에게 남편이 인사 대신 애타게 외친 말이었습니다. 무슬림이건 아니건 사우디 여성이라면 꼭 입어야 하는 긴 드레스 아바야는 억압의 상징입니다.

두번째 결혼과 함께 사우디로 날아간 그는 프린스 술탄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남편 덕분에 탱크들이 지키는 외교구역 ‘디큐’에서 생활합니다. 당시 디큐 안에는 두 곳의 커피숍이 있었는데 그 중 스타벅스는 실내에만 앉을 수 있고, 다른 한 곳은 실외에만 앉을 수 있었습니다. 스타벅스에는 남성들만 갈 수 있는 싱글 섹션 외에 커튼이 쳐져서 가족이 있는 여성이 갈 수 있는 패밀리 섹션이 생긴 상태였습니다. ‘싱글인 여자’는 없고, 가족이 아닌 남녀는 한자리에서 마실 수 없다는 겁니다. 남녀가 마주치면 안되는 문화 덕분에 고급 체육센터에서 운동하던 여성들은 남자 전기기사 한 명이 왔다고 모두 구석진 방에 숨습니다. 70대 노교수는 빈 강의실에서 강의하고, 여학생들은 다른 캠퍼스에서 비디오로 수업을 봅니다.

서양인이라도 대사관 앞에서 시계를 봤다는 이유로 경찰에 잡혀가고, 게이로 의심받으면 가차 없이 추방되는 곳. 하루 5번의 기도시간엔 마트 계산대도 중지되고, 기도하러 가느라 세워진 차들로 도로가 마비되는 곳. 모래바람이 불면 학교 수업은 중단되고 TV도 인터넷도 신호가 잡히지 않는 곳. 수도꼭지를 파란색쪽으로 틀어도 미지근하던 물은 곧 뜨거워지고, 물에서 모래냄새가 나는 곳.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처럼 집 앞에 엑스(X)자 표시를 해둬야 집을 찾아갈 수 있는 곳. 출국할 때도 출국 비자와 재입국 비자가 필요한 곳. 외국인등록증 갱신을 안했다고 사망신고가 거부되는 곳.

이런 사우디에서의 38개월. 그는 사우디 여성들은 꿈도 꾸지 않는 일들을 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마라톤 완주를 하고, 암벽등반을 감행합니다. 법 위에 있는 종교경찰 무타와가 “얼굴을 가려라” 명령하자 “여자 얼굴 왜 봤어!”라고 받아치기도 합니다. 감정이 담긴 다소 긴 문체가 쉬이 읽히지는 않지만,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중동의 삶을 대신 엿볼 수 있습니다.

<이 페이지에 머물다>

경향신문

<만약에 사막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216~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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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세계 유일의 여성 운전 금지국이었던 사우디(2018년 허용). 어느날 혼자 택시를 탔는데 “예스, 마담. 노 프로블럼”이라며 출발한 기사. 달리면서 백미러로 자꾸 눈치를 봅니다. “디큐 가는 길이 맞느냐” 물으니 그제서야 디큐가 어딘지 모른다고 합니다. 남편은 전화를 받지 않고, 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생각만 또렷해집니다. 코너를 돌 때 차문을 열어젖히니 차가 급히 멈춥니다. 재빨리 내렸는데 지나가는 차를 향해 손을 들기에는 겁이 납니다. 모든 운전자가 다 공범일 것 같습니다. 그때 나타난 것은….

경찰이었습니다. 경찰과 택시기사는 아랍어로 “마피 무시낄라(노 프라블럼)”만 연발합니다. 경찰이 다가와 “마피 잉글리시(영어 못해)”, 이쪽은 “마피 아라빅(아랍어 못해)”. 경찰의 호위를 받으며 겨우 디큐에 돌아옵니다. 이후 그는 남편 없이 바깥 외출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합니다.


임소정 기자 sowh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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