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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1 (토)

[사설]정치브로커가 ‘나 감당되냐’고 대통령 협박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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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8일 오전(현지시간) 싱가포르 의회에서 열린 공식환영식에 도착해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대통령의 영접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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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부부에게 김영선 전 의원의 재보선·총선 공천을 청탁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가 지난 7일 언론에 대고 “(검사에게) 잡아넣을 건지 말 건지. 한 달이면 하야하고 탄핵될 텐데 감당되겠나. 감당되면 하라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는 그가 ‘감당할 수 있으면 구속해 보라’고 윤 대통령 부부를 협박한 것이다. 도대체 이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한낱 정치브로커가 저런 말을 대놓고 하는지 기가 막힐 지경이다.

명씨 ‘비선 의혹’이 커지자 대통령실은 “명씨와 윤 대통령은 긴밀한 관계가 전혀 아니다. 본격적으로 대선에 들어가기 전에 대통령이 선을 그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러자 명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를 곧장 반박했다. 김건희 여사가 인수위 참여를 제안했고, 자신은 윤 대통령에게 ‘문재인 전 대통령 가족 수사는 총선 뒤에 하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2022년 9월 윤 대통령 부부의 엘리자베스 여왕 장례식 불참과 관련해 김 여사와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캡처본을 공개했다. 명씨는 “난 6개월마다 휴대전화기를 바꾼다. 휴대전화를 여러 대 가지고 있고, 다른 텔레그램은 그 휴대전화에 있겠지”라고 했다. 추가 폭로가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대통령실 말대로 명씨 주장이 허무맹랑하다면 윤 대통령 부부는 즉각 명씨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등 법적 조치에 나서야 정상이다. 그러나 대선 후보 검증 보도의 일환인 윤 대통령 부산저축은행 부실 수사 의혹 보도를 두고는 “희대의 대선 정치공작”이라고 핏대를 세웠던 대통령실도, “사형에 처해야 할 국가 반역죄”라고 했던 여당도, 특별수사팀까지 꾸려 대대적으로 수사한 검찰도 지금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 명씨 발언을 두고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뭔가 켕기는 게 있어 그러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대통령과 한배를 탔던 정치브로커가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마치 약점이라도 쥔 양 대통령을 노골적으로 협박하는 건 정권 말기에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임기가 반환점을 채 돌기도 전에 벌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 주변에는 천공, 건진 등 명씨와 같은 자칭 정치도사들이 유독 많다. 시스템보다 사적으로 믿는 사람에게 과도하게 의존하는 성향 탓이 클 것이다. 그 후과가 지금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다. 모든 것이 윤 대통령의 자업자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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