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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단독] LG 사외이사, 총수일가 탈세 재판 변호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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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2019년 LG 사외이사 노영보 변호사

지난해 10월부터 일가·임원 재판 변호 맡아

국세청 조사는 노 변호사 소속 ‘태평양’ 대리

사외이사 임무와 배치…“심각한 이해상충”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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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소득세 156억원을 탈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엘지(LG)그룹 총수 일가 등의 변호를 그룹 지주사인 ㈜엘지의 사외이사가 맡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외부인으로 경영을 감시해야 할 사외이사의 임무와 배치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상법은 사외이사의 이해상충 행위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23일 <한겨레> 취재 결과, 지난해 9월 탈세 혐의로 기소된 고 구본무 엘지 회장의 남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장녀 구연경씨 등 엘지 총수일가 14명과 엘지 전·현직 재무관리팀장 2명은 ㈜엘지 사외이사인 노영보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를 선임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4월 국세청의 탈세 고발로 엘지그룹을 압수수색했다. 이어 총수 일가 사이의 주식거래를 ‘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아닌 일반 거래인 것처럼 꾸며 156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은 혐의로 구본능 회장 등을 기소했다. 이들은 2007년부터 10여년간 엘지와 엘지상사 주식 수천억원어치를 102차례에 걸쳐 장내에서 거래했다.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 간 지분 거래는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해, 거래액에 20%를 할증한 금액을 기준으로 양도소득세(상속세 및 증여세법 63조)를 내야 한다.

검찰은 엘지 총수 일가가 양도세를 포탈했다고 판단했다. 해당 주식거래 중에는 구광모 엘지 회장이 구매자로 참여한 거래도 포함돼 있다. 2013년 11월 구연경씨 소유 엘지 주식 27만주가 나흘에 걸쳐 시장에 매도됐는데, 같은 기간 고 구본무 회장과 구광모 회장이 같은 양의 주식을 매입하는 식이다. 하루 거래량의 20~50%에 이르는 물량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엘지 주가는 하락했고 일반 투자자는 손해를 봤다.

구 회장 등은 기소 직후인 지난해 10월 서울고법 부장판사(차관급) 출신인 노 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문제는 노 변호사가 2013년부터 지난달 15일까지 6년 동안 ㈜엘지 사외이사를 지냈다는 점이다. 사외이사를 하면서 6개월가량 총수 일가 변호인으로 활동한 셈이다. 대주주의 독단과 전횡을 막기 위해 대주주와 관련없는 외부인을 이사회에 참가시키도록 하는 게 사외이사제 취지인데, 이를 정면으로 위배한 것이다.

‘거수기’ 논란이 끊이지 않는 대기업 사외이사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개혁연대의 이총희 회계사는 “사외이사가 특수관계인인 총수일가의 변론을 맡는 것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렇게 되면 사외이사가 회사의 의사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한 기업의 사외이사를 맡은 변호사는 “매우 심각한 이해상충 행위다. 이런 사례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상법(제542조8항)은 ‘사외이사로서의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기 곤란하거나 상장회사의 경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는 사외이사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노 변호사는 2013년 3월 주주총회에서 그룹 사외이사에 선임된 데 이어 2016년 3월 사외이사에 재선임됐다. 노 변호사는 탈세 사건 재판을 맡은 지난해, 11차례 이사회에 참석해 33개 안건에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엘지는 사업보고서를 통해 “이사회는 대주주 및 경영진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중 사외이사는 4명으로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사외이사 선임에 공정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 후 주주총회에서 선임하고 있다”고 공시했다. 노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한 이유로는 “법률전문가로서 적임자로 판단된다”고 공시했다. 노 변호사의 담당업무에 대해서는 “전사 경영전반에 대한 업무”라고 했다. 노 변호사는 변론을 맡은 시기를 포함해 2013년부터 6년 동안의 사외이사 기간 동안 표결에 참여한 모든 안건에 찬성 의견을 냈다.

사외이사의 총수 일가 변호와 관련해 엘지 쪽은 “그룹 관련 사건이 아니고 개인 주주 사건을 선임한 것이다. 사외이사 역할과 충돌되지 않고 업무연관성도 없는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노 변호사는 “개인에 대한 변호로, 위법하지 않아 맡았다”고 말했다. 그는 사외이사에서 물러난 뒤에도 계속 사건 변호를 맡고 있다.

지난해 초 국세청의 탈세 조사 때는 노 변호사가 고문으로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이 엘지 사주 일가를 대리했다. 지난해 9월 말 시작된 엘지 총수일가의 재판도 장기화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송인권)가 맡고 있는데, 7개월째 공판준비절차만 진행했을 뿐 정식 재판을 열지 못했다. 재판부 재배당, 약식기소 사건의 정식재판 회부로 인해 지연된 면도 있지만, 최근 피고인들이 계속해서 공판준비기일 연기를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24일 오후 열리는 공판준비절차에서 엘지 쪽 변호인은 정식 공판에서 주로 등장하는 ‘프레젠테이션’까지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재판에는 노 변호사를 비롯해 법무법인 태평양 소속 변호사 12명이 투입돼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난해 초 국세청 조사 때부터 총수 일가를 대리해왔다.

최현준 고한솔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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