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4 (월)

[Weekend Interview] 사이버범죄수사 최전선엔 이 남자가 있다…박윤상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경위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길고 긴 직함을 처음 들었을 때 그저 '사이버'란 단어만 머릿속에 남았다. 박윤상 경위(46)의 공식 직함은 다음과 같다. 경찰청 사이버안전국 사이버수사과 사이버테러수사1대 사이버성폭력수사팀 소속 수사관. 사이버가 4번이나 등장하는 직함은 그의 경찰 생활과 퍽 닮았다. 박 경위는 사이버 범죄 수사만 10년 넘게 해온 베테랑 수사관이다. 사이버 범죄가 급증하며 경찰 내부에 대응조직이 신설될 때마다 인사 명단에는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올랐다. 덕분에 그는 사이버 도박·테러, 개인정보 대량유출, 불법촬영·유포 등 안 해본 사이버수사가 없다. 최근 남자 연예인들의 불법촬영·유포 등 문제가 연일 불거지는 가운데 사이버 범죄 수사통인 박 경위를 만났다. 가상의 적을 잡기 위해 현실에서 고군분투하는 그는 "주로 질문하는 쪽이지 받는 쪽은 아닌데"라고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

―경찰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체육대학에서 검도를 전공했다. 원래 검술 지도자의 길을 걸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졸업할 무렵인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영향으로 검도장이 줄줄이 문을 닫아버렸다. 특기를 살릴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경찰 시험을 치렀다. 합격 후 형사기동대(현 광역수사대)에 배치돼 순경 생활을 시작했다.

―언제 처음 사이버 수사를 맡게 된 건가.

▷형사기동대에서 5년 넘게 근무하고 일선 경찰서 수사과에 배치돼 경제팀, 지능팀을 거쳤다. 2000년대 초·중반 사이버 범죄가 점점 퍼지면서 2005년 일선 경찰서에도 사이버수사팀이 처음 생겼다. 그 전까진 사실상 경찰청(본청)에만 사이버수사대가 있었다. 신설된 수사팀은 온라인에 좀 더 익숙한 젊은 형사들 위주로 꾸려졌다. 나도 그때는 30대 초반이었고 사이버 범죄에 관심이 많아 합류했다.

―왜 사이버 범죄에 관심이 많았나.

▷새로운 범죄 유형이라 흥미로웠다. 사이버 범죄가 많아진 만큼 추적 수사 기법 역시 발전을 거듭했다. 앞으로 수사 과정에서 이런 기법들을 훨씬 많이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2006년에는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수사팀에까지 들어갔다. 본청에서 2년 넘게 사이버 수사만 하다 보니 전문성이 생겨 그 후로는 쭉 관련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다.

―보통 어떤 경위로 수사에 착수하나.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우리가 직접 온라인을 모니터링하며 불법사이트를 찾아본다. 두 번째는 제보를 받는 것이다. 컴퓨터·보안업체나 전문기관, 일반시민 등이 보내오는 제보가 정말 큰 힘이 된다. 당장 지난해 12월 한 시민이 해외 음란사이트에 한국 모텔 상황이 실시간으로 생중계되는 것 같다고 제보했다. 실제 확인해 보니 투숙객들의 은밀한 사생활이 고스란히 인터넷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숙박업소에 불법 IP카메라(유·무선 인터넷에 연결해 사용하는 카메라)를 설치해 몰래 엿본 범죄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생중계'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모텔 생중계 사건은 어떻게 수사했나.

▷사이트에 올라온 일부 영상에 모텔 상호가 언뜻 보이더라. 즉시 현장에 갔다. 경찰이 무작정 카메라를 뜯어내면 화면을 보던 범인들이 도망칠 테니까 모텔 주인의 협조를 받아 손님인 척 들어갔다. 상의를 탈의하고 쉬는 척 연기하며 휴대폰을 켰다. 문제의 사이트에 접속하니 내 모습이 고스란히 생중계되는 것 아닌가. 생중계 화면 속 각도를 보니 대략 텔레비전 셋톱박스 부근에 불법 카메라가 있는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는 척하며 이동하다 바닥에 바짝 붙어 촬영 각도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셋톱박스 쪽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바닥에 딱 붙어 위를 보니 실제 셋톱박스 인근에 이상한 선이 달려 있었다. IP카메라 충전선이었다. 조금 뒤 노트북 작업을 하다 끝내는 척하면서 공유기 전원까지 함께 꺼버렸다. 범인들은 '공유기 연결이 안 돼서 IP카메라도 작동이 안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다음 감식반이 투입돼 현장 흔적을 살폈다.

―범인의 흔적이 남아 있었나.

▷아휴, 지문 흔적이 전혀 없더라. 어쨌든 카메라를 설치하기 위해 현장에 오긴 했을 테니 모텔 인근 폐쇄회로(CC)TV를 몇 개월치 분석해 용의자를 특정했다. 이후 숙박업소를 돌며 무선 IP카메라를 몰래 설치한 피의자, 해외 서버를 개설하고 관리·운영한 피의자 등 총 4명을 검거했다. 범죄에 쓰였던 영상 서버들을 조사해 보니 피해 규모가 예상보다 컸다. 피의자들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영남·충청 지역 10개 도시에 위치한 30개 숙박업소 객실 안에 불법카메라를 수십 대 설치했다. 이로 인해 투숙객 1600명의 사생활이 불법 촬영돼 실시간 중계됐다. 압수한 서버 속 IP 기록을 토대로 불법카메라를 다 수거했다. 새롭게 개발한 '무선 IP카메라 탐지 기법'이 무척 유용하게 쓰였다.

―무선 IP카메라 탐지 기법이 무엇인가.

▷카메라 고유 기기 번호와 신호 세기 등 감도 정보를 결합해 먼 거리에서도 카메라를 탐지할 수 있는 기법이다. 이번 수사 과정에서 최초로 쓰였다. 기존에는 주로 '전파기반 탐지'나 '렌즈기반 탐지' 기법이 활용됐다. 전파기반 탐지는 전자기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추적해 불법카메라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렌즈기반 탐지는 적외선을 쏴 렌즈에 반사되는 빛을 포착해 카메라 위치를 잡는다. 두 방법은 공개된 장소나 가까운 곳에서만 효과를 낸다는 한계가 있다.

매일경제

경찰청 사이버성폭력수사팀 소속 윤정연 경장, 김상효 경장, 이경빈 경위, 박윤상 경위, 홍혜정 경감, 김태영 경장(왼쪽부터). 이 팀은 디지털성범죄가 급증함에 따라 지난해 8월 만들어졌다.


―최근 가수 정준영 등 남성 연예인들의 몰래카메라 범행이 드러나며 불법촬영·유포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아무래도 여성들이 많이 불안감을 호소한다. 사이버 성폭력 피해자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라 여성들이 자주 이용하는 공중화장실, 탈의실, 목욕탕 등이 불법촬영의 타깃이 되곤 한다.

―불법촬영 및 유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현실적으로 온라인상에 한 번 유포된 영상을 완벽하게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 불법촬영 유포는 인격살인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불법촬영물이 유포되기 전에 미리 찾아서 없애야 한다. 제작 단계에서부터 원천적으로 막아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우리가 불법촬영 제작에 대한 수사 단서를 찾기 위해 밤낮으로 범죄 정보를 수집하는 이유다. 지난해에는 해외에 떠돌아다니는 해킹된 국내 IP카메라 목록들을 정보원으로부터 입수해 엄청난 피해를 사전에 막았다.

―어떤 유포 피해를 막았다는 건가.

▷입수한 정보를 토대로 이미 보안이 뚫린 카메라들의 해킹 경로를 역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IP카메라에 무단 접속해 사생활을 들여다본 피의자 10명을 찾아냈다. 피의자들은 2014~2018년 IP카메라 총 47만5164대의 접속 정보를 알아내 여성들의 민감한 사생활을 불법으로 녹화했다. 이때 녹화된 영상이 무려 2만7328건이나 된다. 유포됐다면 큰 피해가 발생했을 것이다.

―해킹된 IP카메라들의 특징이 있나.

▷피의자 중 1명은 국내 한 반려동물 사이트를 해킹해 IP카메라 정보를 얻었다. 혼자 사는 여성들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운다는 사실에 착안해 범행을 저지른 것이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외출 시 반려동물이 혼자 남게 되는 걸 걱정해 집 안에 IP카메라를 설치해 뒀다. 피의자들은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성폭력특례법이 적용되는 게 아닌가.

▷법과 제도 정비가 반드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 판례상 IP카메라를 해킹해 단순히 훔쳐본 건 성폭력 특례법으로 처벌이 어렵다.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가 주로 적용된다.

―IP카메라가 자주 범죄 타깃이 되는 것 같다.

▷IP카메라 사용자들에게 초기 비밀번호를 반드시 재설정하고 수시로 변경하라고 권유하고 싶다. IP카메라를 사용하지 않을 때는 전원을 끄거나 렌즈를 가려 놓는 것도 방법이다.

매일경제

―수사 과정에서 가장 힘들 때는 언제인가.

▷수사력은 국내를 벗어나기 힘든데 사이버범죄는 글로벌하게 일어난다. 국민이 피해를 보는데 국경의 장벽을 넘지 못할 때는 참 안타깝다.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으면 국제 공조 없이는 검거가 어렵다. 아예 외국인 해커가 한국인을 상대로 범죄에 나서는 경우도 많다. 일례로 2017년 한 중국인 해커가 국내 유명 숙박예약 애플리케이션(앱)을 해킹해 개인정보가 대량 유출된 적이 있었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가 어느 정도였나.

▷중국인 해커가 2017년 3월 숙박예약 앱 전산망에 침입해 총 99만명의 개인정보 341만건을 유출한 일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검거해 보니 중국인 해커가 숙박예약 앱만 해킹한 게 아니더라. 다른 국내 사이트들을 해킹해 얻은 개인 정보가 2500만건에 달했다.

―보이지 않는 적과의 싸움이라 답답할 것 같다.

▷보통 여러 가지를 시도해도 결국 실체를 알아내지 못했을 땐 피의자 '성명 불상'으로 범죄 사건을 검찰에 보낸다. 나는 '성명 불상'이란 단어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

―수사지론이 있나.

▷사이버범죄를 수사한다고 해서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으면 안 된다. 사이버 공간에 숨었어도 범죄를 저지른 컴퓨터는 반드시 현장에 존재하니까.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결국 현장에서 발품을 팔지 않으면 범인을 잡기 힘들다. 끝까지 현장을 누비며 생활하고 싶다.

▶▶ He is…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나 용인대 검도학과에 입학했다. 1998년 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 형사기동대에서 순경 생활을 시작했다. 2004년부터 서울 서부경찰서 수사과에서 근무하다 2006년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수사팀에 합류했다. 현재 경찰청 사이버테러수사1대에서 근무하고 있다. 최근 숙박업소에 불법카메라를 설치해 1600명의 사생활을 생중계한 일당을 검거하는 등 사이버성폭력범죄 수사의 달인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희수 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