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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5 (화)

까칠해진 회계사 때문에…충당금 폭탄맞은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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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반준환 기자, 이태성 기자, 김사무엘 기자] [끝나지 않은 회계전쟁-①]흑자기업이 적자기업으로 돌변 '역분식 후폭풍'

머니투데이

@머니투데이 이승현 디자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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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 비상장 자회사인 팜한농은 지난해 3분기까지 381억원의 누적 영업이익과 164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연간실적은 154억원 영업이익, 499억원 순손실이었다. 계절적 비수기 이슈도 있었으나 400억원 가량의 환경복원 충당금이 일시에 더해지며 적자로 전환한 것이다.

#게임업체 위메이드도 3분기까지는 영업익 31억원·순손실 14억원이었는데 4분기가 지나자 '361억원 영업손실에 485억원 순손실'이라는 연간 수치가 나왔다. 전년 3억원에 불과했던 매출채권 대손충당금을 지난해 재무제표에 392억원으로 일시 반영한 것이 쇼크의 원인이었다.

이처럼 지난해 상장기업들의 재무제표에 충당금 쇼크가 상당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영업부진으로 인한 실적둔화보다는 매출채권이나 재고자산, 무형자산 등의 가치를 극도로 낮춰 잡으면서 이익지표가 떨어지는 '역분식 결산'이 나타난 셈이다.

원인은 엄격해진 회계법인들 때문인데, 기업 뿐 아니라 투자자들도 실적 변동성을 지나치게 키웠다는 불만이 심각한 수준이다.

18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코스닥 상장기업들의 대손충당금(연결기준)은 2017년 13조8090억원에서 지난해 14조6251억원으로 5.9% 증가했다. 특히 재고자산 평가손실 충당금은 7조9933억원에서 9조9096억원으로 24.0%나 급증했다.

이번 분석에는 재무제표 주석사항에 공시된 것만 집계됐다. 공시 누락분, 그리고 다른 종류의 충당금까지 더하면 수치는 더 커진다.

대손충당금은 받지 못할 매출채권을, 재고자산 평가손실 충당금은 팔리지 않을 제품의 손실을 재무제표에 미리 반영해 놓는 것이다. 금액이 클수록 이익이 감소하기 때문에 되도록 적게 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지난해에는 정 반대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넥센은 평소 6~7억원이었던 대손충당금을 지난해 130억원으로 잡았고, 웅진은 전년 39억원에서 지난해 246억원이 됐다. 이 밖에 CJ ENM(234억→757억), KT&G(256억→757억), OCI(35억→105억) 한화케미칼(796억→1642억) 등 업종 구분 없이 경쟁적인 충당금 설정이 이어졌다.

재고자산충당금도 마찬가지다. 한국항공우주(19억→172억) 현대위아(80억→271억) 삼성전기(500억→1078억) SK하이닉스(1821억→3780억) KT(583억→1136억) 삼성SDI(956억→1123억)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국제유가 하락이 있었던 S-OIL과 SK이노베이션 등은 2000억원대의 재고자산충당금을 쌓았다.

이로 인해 흑자기업이 적자로 돌변하는 등 주가가 급락한 기업이 속출했고 연초 주식시장이 크게 흔들린 원인이 되기도 했다. 충당금 증가에는 잠재부실을 반영하고 가려는 경영판단도 있었으나, 대체로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의 입김이 컸다.

기업회계에 오류가 발생할 경우 외부감사를 맡은 회계법인들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신외부감사법'이 지난해 11월 시행됐다. 여기에 올해 연말에는 일정 기간마다 회계법인을 바꾸도록 하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도'가 도입된다. 바뀐 회계법인이 과거 회계법인이 맡았던 재무제표를 다시 검수하는 것이다.

한 상장기업 CFO(최고재무책임자)는 "회계사들이 손 끝 하나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수치를 내지 않으면 감사의견을 받지 못할 지경"이라며 "지난 감사에서 최대한 보수적인 재무제표를 내고도 5번 재작성을 거쳐 겨우 승인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상채권이라도 결제기간이 조금이라도 길면 무조건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는 회계법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어려웠다"며 "신규제품의 경우 판매계획을 인정하지 않고 일단 재고자산 평가손실로 반영하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이 밖에 기업들이 드는 문제는 △투자 및 연구개발(R&D) 자산평가 △비상장 주식 가치산정 △과도한 감사비용 △가이드라인 없는 감사 △무분별한 자료요청 △미숙련 회계사 투입 등이었다. 당국과 회계법인들도 이런 혼란을 알고는 있으나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공인회계사회 관계자는 "과거 지나치게 느슨했던 감사절차가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겪는 혼란으로 본다"며 "회계사 뿐 아니라 기업도 막중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양측이 조율점을 찾아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반준환 기자 abcd@, 이태성 기자 lts320@mt.co.kr, 김사무엘 기자 samuel@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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