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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영화를 낭독하라… '詩네마'에 빠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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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게·강변호텔 등 최근 詩 소재 영화 잇따라 개봉… 시적 은유로 잔잔한 감동 줘

"계단은 먼 곳으로 쏟아진다/강변에 서면 예외 없이/마음은 낮은 곳으로 미끄러진다//강물에 아직 그의 얼굴이 걸려 있고/흔들리는 다리에는/다 접지 못한 날개로 갈매기들이 앉았다…"

이달 초 개봉한 영화 '한강에게'(감독 박근영)의 마지막 장면. 연인 길우(강길우)를 잃은 슬픔에 한동안 시를 쓰지 못했던 시인 진아(강진아)가 어렵게 입을 뗀다. 그의 낭독이 이어지는 동안 카메라는 진아와 주변을 비춘다. 평소처럼 시 수업을 하고, 길우와의 추억이 켜켜이 쌓인 한강변을 걷는다. 그리고 갓 인쇄돼 나온 초판본 시집에 사인한다. 카메라는 자기 이름 밑에 주춤거리며 '길우'라고 쓰는 진아의 손을 클로즈업한다. 이때 "책의 첫 장에 그 사람을 써서 보냈다"는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조선일보

영화 ‘한강에게’에서 진아가 자신의 초판본 시집에 사인하는 장면(위). 아래 사진은 영화‘패터슨’에서 버스 운전사 패터슨이 시를 쓰는 모습. /영화사 행방·그린나래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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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과 출신 문학청년이었던 감독이 직접 쓴 시다. 박근영 감독은 "마지막 장면의 시 낭독만을 듣기 위해 여러 번 영화를 봤다는 관객 분들도 있었다"며 쑥스러워했다. 약 2분가량의 짧은 낭독이지만 그만큼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 "저는 시와 영화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함축적이고, 은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잖아요. 영화적 표현은 시적 은유와 닮은꼴이죠. 이번 영화에서 시적인 스타일을 충분히 살리려고 했습니다."

시(詩)가 주요 소재 혹은 주제인 영화가 최근 잇달아 개봉되고 있다. 시(詩)와 시네마(cinema)를 결합했다고 해서 '시(詩)네마'로도 불린다. 두꺼운 수필집이나 소설책보다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좋은 시집이 더 팔리는 요즘, 시가 어느덧 젊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모으는 매개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 '강변호텔'에서도 시 낭송이 비중 있게 다뤄진다. 영환(기주봉)이 만취해 두 여인 상희(김민희)와 연주(송선미)에게 시를 읊는다. "눈이 오는 날, 두 여인이 작은 남자아이를 데리고 왔습니다… 두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가지 못하자, 아이가 그곳에서 어둡게 크기 시작합니다…" 소년은 영환 자신이면서 홍상수 감독 본인이기도 하다.

시 영화들은 특유의 아우라로 잔잔한 흥행을 이어간다.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이 시를 쓰는 버스 운전사 이야기를 다뤄 다양성 영화로는 드물게 6만7000명을 모았던 것이 2016년이다. 중년의 유치원 교사가 천재 꼬마 시인을 만나며 벌어지는 일을 담은 '나의 작은 시인에게'(감독 사라 코랑겔로)는 4월 2주 차 다양성 영화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낭송의 힘이 영화를 지배하는 것이다. 홍수정 영화평론가는 "요즘은 흔치 않은 낭독의 순간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면서 새롭고도 이질적인 느낌, 독특한 아우라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했다.



[황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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