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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이슈 최저임금 인상과 갈등

최저임금법 피하려 취업규칙 개정 꼼수…대법 "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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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명수(가운데)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이 전원합의체 판결 선고를 위해 대법원 대법정에 착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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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법 개정으로 택시기사 최저임금에서 초과운송수입금이 제외되자 회사가 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소정근로시간(근로자가 실제로 일한 시간)을 단축하기로 취업규칙을 변경한 것은 무효라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18일 이모씨 등 택시기사 5명이 회사 등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씨 등은 회사 소속 택시기사로 일하며 일정 수준의 고정급을 받았다. 회사에 사납금을 내고 남은 운송수입은 기사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최저임금법 개정으로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 운송수입 등 생산고에 따른 임금이 제외되자, 회사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받아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방향으로 취업규칙을 개정했다.

회사는 2010년 7월 격일제 근로자의 소정근로시간을 월 182시간으로 낮췄다. 같은해 10월에는 소정근로시간을 월 115시간으로 추가 조정했다. 당초 취업규칙의 소정근로시간은 월 209시간이었다. 취업규칙이 바뀌었다고 해서 기사들의 근로시간이 줄어든 것도 아니었다.

이에 이씨 등은 "실제 근로시간이 변경되지 않았는데도 소정근로시간을 줄인 것은 무효"라며 해당 기간 중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달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변경된 취업규칙이 무효라는 이씨 등의 주장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관련 증거가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실제 근로시간보다 현격하게 짧은 근로시간을 정해 형식적·외형적으로만 최저임금 이상을 지급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변경된 것"이라며 "근로자들의 집단적 동의가 있었다고 해도 최저임금법을 몰래 빠져나가기 위한 목적으로 변경된 것이어서 무효"라고 했다. 2심 재판부는 회사가 이씨 등에게 각각 171만~236만원을 지급할 것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9대 4의 의견으로 이 같은 취업규칙 변경이 무효라고 봤다. 재판부는 "개정된 최저임금법 조항은 기존에 합의된 소정근로시간에 대한 고정급을 최저임금 수준 이상으로 높이는 걸 예정했다"며 "실제 운행시간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 형식적으로만 소정근로시을 줄이는 편법을 예정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이어 "회사의 행위는 최저임금법의 입법 취지를 근로관계 당사자가 개별 합의로 피하는 탈법행위"라며" 이 규칙이 유효하다고 해석하면 최저임금법을 회피하기 위한 행위를 조장할 우려가 있고, 택시기사들은 근로기준법 적용에서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이동원 대법관은 "관련법 위반을 회피할 의도가 일부 있었다고 해도 소정근로시간 단축은 노사간 자발적 합의에 의한 것"이라며 "단축 후에도 택시기사의 총수입이 최저임금법상 임금에 미달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무효라고 할 수 없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김재형 대법관은 "근로관계 당사자가 변경된 취업규칙상 소정근로시간 단축 조항이 무효라는 점을 알았을 때 원했을 소정근로시간을 확정한 뒤 최저임금 미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며 파기환송 의견을 냈으나 소수에 그쳤다.

[오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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