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데자키 감독이 지난 5일 도쿄 신주쿠구의 사무실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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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우익의 대표 논객 사쿠라이 요시코, 자민당 의원 스기타 미오, ‘친일(親日)’ 미국인 변호사 켄트 길버트, 그리고 일본 최대 우익단체 ‘일본회의’의 가세 히데아키….
오는 20일 일본에서 개봉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主戰場)>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기존 영화와 접근법이 다르다. 위안부 지원단체나 학자들뿐 아니라 위안부 존재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들, 이른바 ‘역사수정주의자’들이 등장한다. 영화는 위안부 숫자, 강제연행, 성노예 등 쟁점들을 두고 반론과 재반론이 교차하는, 제목 그대로 ‘전장(戰場)’이다.
“쟁점들을 명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다큐가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야 위안부 문제가 왜 이렇게 한·일 간에 꽉 막힌 논의가 됐는지 맥락을 보여주는 게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미키 데자키 감독(36)은 지난 5일 인터뷰에서 “일본뿐 아니라 한국도 선입견을 갖고 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가 아닌 인권 문제”라며 이렇게 말했다.
영화에선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은 처음과 마지막 자료영상에서만 등장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 위안부의 모습도 후반부에나 나온다. 데자키 감독은 “위안부 사진을 환경이 좋았다거나 비참했다는 양측 주장에 맞춰 이용해왔는데, 그러면 ‘몇 %냐’는 문제로 들어간다”면서 “국제법의 성노예 규정에 근거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일본계 2세 미국인으로 2007년부터 5년 간 일본에서 영어교사를 했던 그는 ‘일본의 인종차별’이라는 동영상을 올렸다가 일본 우익의 공격을 받았다. 위안부 문제를 처음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공격받는 것도 봤다. “일본 우익들은 왜 위안부 문제를 덮으려할까”라는 의문을 갖고 매달린 게 이번 영화다. 우익들을 시작으로, 30명 가량을 인터뷰했다.
“우익들의 주장을 뒤집을 만한 것이 내 자신에 없어 감정적으로 흔들릴 때가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조사하고 토론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확고한 생각을 갖게 됐어요. 영화를 논쟁식으로 구성한 것도 제 체험을 관객들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가 (소녀상을 설치한) 미국 글렌데일 같은 작은 마을에 항의 서류를 보낸 데 위화감을 느꼈다”는 그는 위안부 논쟁의 배후까지 파고들어간다.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정계와 일본회의 등 우익의 밀착,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천황제 이데올로기까지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이 왜 위안부 문제를 침묵시키려는지 따라가다보면 자연스럽게 도달하는 지점”이라면서 “이 영화는 위안부 문제뿐만 아니라 왜 위안부 문제가 공격받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오는 20일 일본에서 개봉되는 다큐멘터리 영화 <주전장>의 포스터. (C)NO MAN PRODUCTIONS LLC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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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완성된 영화는 지난해 10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된 뒤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위안부 숫자가 20만명이라거나 10살 아이까지 동원됐다는 주장의 맹점을 짚은 데 대해선 비판도 각오했다. “새로운 시각으로 위안부 문제를 보는 게 가능했다”거나 “단순하게 보이는 문제가 실은 중대하고 복잡하다는 데 놀랐다”는 반응이 많았다.
현재까지 일본 우익들의 반응은 “조용하다”고 했다. 일본에서 위안부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위협해온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데자키 감독은 “자신들의 주장도 영화에 나오고, 문맥을 비틀지도 않으니까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 4일 저녁 도쿄 일본외국인특파원협회(FCCJ)에서 열린 시사회장에선 우익으로 보이는 이들이 “왜 영화에 반대 학자들은 많이 안 나오느냐” 등의 질문으로 트집을 잡았다.
데자키 감독은 “위안부 문제를 미디어가 어떻게 다루는지가 중요하다”면서 “각국에 소녀상이 세워지는 데 일본인은 화내지만, 위안부 문제가 교과서로부터 지워지는 데 대한 반응이라는 문맥은 전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터넷에는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이 퍼지고 있다. 그게 “2시간이 넘는, 정보가 가득 들어간 영화를 만든 이유”라고 했다.
데자키 감독은 “한·일 관계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희망이 없었으면 영화를 만들지 않았다”라며 “한·일이 역사뿐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을 아는 것이 타협점을 찾는 길”이라고 했다. <주전장>은 올 여름 한국에서도 개봉될 예정이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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