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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고 장자연 사건

공소시효 지났지만 ‘장자연 사건’ 조사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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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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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 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나약하고 힘없던’ 신인 배우 장자연씨는 2009년 3월7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이른바 ‘장자연 문건’이라고 불리는 자필 문서를 남겼습니다. 문서에는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온 사실과 그 가해자들의 이름이나 신분이 담겼습니다. 경찰은 장씨가 숨진 뒤 대규모 팀을 꾸리고 수사를 시작했지만,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한 가해자들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꼬박 10년이 흘렀습니다. 피해자는 여전히 세상에 없고, 가해자는 여전히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바뀐 것은 하나뿐입니다. 가해자들에게 적용 가능한 공소시효가 모두 지나버렸다는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겨레> 24시팀의 정환봉입니다. 이번에는 즐겁고 가볍게 인사를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자연씨 사건을 이야기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의 수사결과 발표는 2009년 8월19일에 있었습니다. 당시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장씨의 소속사 대표 김종승씨를 장씨에 대한 폭행 및 협박 혐의로, 장씨의 매니저였던 유아무개씨를 김종승씨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각각 기소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습니다. 경찰과 검찰 수사에서 강제추행 혐의, 강요 방조 혐의 등을 받았던 유력가 10여명은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사건은 잊혀갔습니다. 반전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법무부 과거사위)가 꾸려지면서부터입니다. 이들은 방 사장 사건을 검토한 뒤 지난해 5월28일 검찰에 <조선일보> 기자 출신 정치인이었던 조아무개씨를 재수사하라고 권고했습니다. 조씨는 2008년 8월4일 김종승씨의 생일 파티에서 장씨를 강제추행한 혐의로 2009년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는 재수사 한달 만인 지난해 6월26일 조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강제추행죄의 공소시효(10년)가 만료되기까지 40일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일어난 반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반전을 다시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이 사건에서 적용할 수 있는 죄명은 강제추행죄, 강요죄, 강요 방조죄 정도입니다. 하지만 강제추행죄의 공소시효는 10년, 강요죄와 강요 방조죄는 5년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것은 2008~2009년이라 공소시효가 다 지난 상태입니다. 강제추행이나 강요가 있었다는 구체적인 증거와 탄탄한 진술이 나오더라도 현행법으로는 처벌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미 기소된 조씨와 함께 장씨를 추행한 공범이 있다면 희망은 있습니다. 이미 기소된 피의자의 공범은 공소시효가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재로선 이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입니다.

법적 처벌이 어렵다고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오히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엇이 젊은 배우를 죽음으로 몰아갔는지 그 ‘진실’을 밝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다음 대목입니다.

“2008년 9월경 조선일보 방사장이라는 사람과 룸살롱 접대에 저를 불러서 사장님이 방사장님이 잠자리 요구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후 몇개월 후 김성훈(김종승의 가명) 사장이 조선일보 방사장님 아들인 스포츠조선 사장님과 술자리를 만들어 저에게 룸살롱 접대를 시켰습니다.”

법무부 과거사위의 결정에 따라 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대검 조사단)은 당시 사건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하며 ‘방 사장’과 ‘방 사장의 아들’을 비롯해 장자연 문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특정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진술도 확보했습니다. 최근에 방정오 전 대표의 한 지인이 “방 전 대표에게서 장씨와 자주 연락했었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대검 조사단에 밝힌 것을 <한겨레>에서 보도한 것처럼 말이죠.

대검 조사단의 활동은 다음달에 마무리됩니다. 그때는 10년 전 세상을 떠난 장씨의 고통이 무엇이었는지, 그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명확하게 밝혀지길 바랍니다. 그렇게 드러난 진실이 비록 누군가를 처벌하기 위한 판결문에 담기진 못하더라도, 뚜렷한 활자로 기록되고 기억돼 우리 사회에서 다시는 같은 고통이 반복되지 않길 빕니다.

정환봉 24시팀 기자 bon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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