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9.28 (토)

[이슈논쟁] ‘기본소득’으로 청년에게 자유와 안정을 / 최영준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LAB2050 연구위원장


아인슈타인은 ‘미친 짓’이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 했다. 우리 사회는 다양한 사회·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고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2019년에 처음 나타난 것은 아니다. 지난 10년 혹은 20년 동안 지루할 정도로 논의했던 내용이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우리는 똑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다른 결과를 기대한다면 이제 담대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첫 발걸음으로 청년에게 자유와 안정을 주는 ‘청년 기본소득’ 실험을 제안한다.

왜 청년인가? 청년은 아동기를 벗어나 독립을 시작하는 시기이며,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는 때이기도 하다. 생애에서 청년 시기의 중요성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 증명된 바 있다. 하지만 청년들은 불안정하거나 종속되어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청년에게 어떤 일자리라도 빨리 가지라고 말해왔다. 그 ‘어떤 일자리’에 구의역에서 혹은 태안에서 목숨을 앗아갔던 위험천만한 일도 있고, 성희롱이나 인격모독을 참아가며 경제적 안정을 유지하려는 이들의 수많은 일들도 포함된다.

그럼에도 참는 것이 ‘철든 것’이라고 말하며, 고용률이 올라갔으니 ‘성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청년들은 이런 일을 피하기 위해서 안정을 담보하는 공공부문을 선호하고 있고, 부모들은 자녀들을 안정된 일자리에 보내기 위해서 노후 준비를 뒤로하며 사교육에 매달리고 있다. 이러한 경쟁에서 밀린 이들에게 불안정은 절망의 동기가 되고 있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안정의 원천이었던 50대 부모님들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며 취약계층이 되어가고 있고, 안정된 일자리로 들어가는 문은 점차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20대는 국가복지의 사각지대이며, 일자리에 진입해도 그들이 요구받는 부당함에 대해 보호를 잘 받지 못하는 시기이다.

이제 청년에게 안정을 주는 주체가 고용주나 부모가 아닌 국가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본인의 독립된 의지로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년 기본소득은 일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시간’을 주고, 부당함을 겪는 청년들에게 ‘노’(NO)를 외치게 할 수 있고, 50대 부모들에게는 이제 자신에게 집중하게 할 도구로서 사용될 것이다. 어려운 경쟁을 뚫고 대학에 입학하였음에도 늦은 알바 때문에 꾸벅꾸벅 졸던 학생에게도 새로운 ‘시간’이 허락될 것이다.

청년에게 주는 시간은 우리 사회에 더 큰 혜택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안정이 주는 자율성은 행복과 창의성의 핵심 요소이며, 창의성이 기업가 정신의 근본임은 이미 많은 연구가 증명하고 있다. 기술에 앞서는 대기업은 안정적 일자리를 더 만들 인센티브가 줄어들고 있다. 최근 30~40대 일자리의 감소는 구조적인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생산성이 낮은 중소기업이나 영세 자영업에 우리 경제를 의존할 수는 없다. 안정과 시간을 사회가 제공해주면 우리의 청년들은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서 다양한 빛과 색으로 사회와 경제를 채울 것이다. 새로운 일과 고용주들이 나올 것이며, 생산성은 더 올라가게 될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더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결혼과 출산은 개인의 결정이다. 다만 더욱 안정된 이들일수록 결혼과 출산에 대해 긍정적일 가능성이 높다.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되 안정의 결핍으로 원하는 선택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청년 기본소득은 사회적 관계를 회복시키고, 젠더 갈등이나 세대 갈등을 줄이는 데도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청년기본소득은 연대를 학습하는 도구가 되기도 할 것이다. 청년이 겪는 의존성이나 불안정성 그리고 낮은 사회적 신뢰는 저소득층 혹은 미취업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청년에게 자유안정성을 부여함으로써 높아진 연대감은 보편적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청년 기본소득 도입을 위해 민간 싱크탱크인 LAB2050에서는 최소 2년의 무작위 대조군 실험을 제안한다. 이 제안에는 통제집단과 두개의 실험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통제집단에는 현재와 똑같이 아무런 복지급여를 받지 않는 청년으로 구성된다. 실험집단1은 매달 50만원의 기본소득을 받는 청년들로 구성되며, 실험집단2는 50만원 이상의 소득이 발생하면 기본소득을 받지 못하는 청년들로 구성된다. 각 집단은 미취업 청년과 취업 청년 동수로 구성된다. 세 집단 비교를 통해 기본소득이 청년들의 일과 삶에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검증해보자는 것이다.

왜 실험일까? 이 담대한 정책이 실현이 되기 위해서는 더욱 확실하고 세밀한 증거가 필요하다. 효과성이 입증된다 해도 초기에는 예산의 제약으로 제한적 도입이 될 가능성이 높다. 확실하고 세밀한 증거들은 사회적 합의에 도움이 되며 더 효과적인 출발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실험은 기존의 사회경제체제가 점차 한계를 보이고 있는 현 시기에 청년을 넘어서 어떠한 분배혁신이 필요할지에 대한 고민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청년이 당면한 이슈들은 한국 사회의 모든 모순의 집약이자 미래 사회의 거울이다. 다른 것을 시도해보지 않고 현재의 문제들을 돌파하며 더 나은 사회를 기대할 수 없다. 청년기본소득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지만, 변화를 추동하는 중요한 ‘방아쇠’ 구실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새로운 자유안정성 실험을 통해서 한국 사회 변화를 시작해보자.



[이슈논쟁 / 청년 기본소득]

지난 1월 서울연구원과 민간 싱크탱크 ‘LAB 2050’이 ‘청년수당 2.0’ 정책실험을 서울시에 제안한 것을 계기로, ‘청년 기본소득’을 둘러싼 논쟁이 활발하다. 이번 제안은 기존에 서울시가 지원해온 ‘청년활동지원수당’과는 다르게,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청년 모두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자는 것이 뼈대다. 본격적인 ‘청년수당 2.0’ 정책 실행에 앞서, 서울시에 거주하는 20대 청년 1600명에게 2년간 월 50만원씩 지급하는 정책 실험을 해보자는 것이다.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보편적 기본소득 지급이 바람직한가’를 중심으로, ‘LAB 2050’의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는 최영준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와 정준영 불평등과 시민성 연구소 연구원의 견해를 들어본다.



[▶네이버 메인에서 한겨레 받아보기]
[▶한겨레 정기구독] [▶영상 그 이상 ‘영상+’]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