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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펠로시 "트럼프 탄핵할 가치 없다, 국론만 분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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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민주당 지도부가 탄핵 꺼려하는 4가지 이유는?

미국 야권에서 거세지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탄핵론에 대해, 민주당 1인자인 낸시 펠로시(78) 하원의장이 "탄핵 추진에 반대"라고 선을 그었다.

펠로시는 11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윤리성과 지성, 정치적 정당성 모든 면에서 대통령직에 걸맞지 않다"면서도 "탄핵은 국론을 분열시키는 일로, 매우 급박하고 압도적인 사유와 초당적 지지가 없는 한 가서는 안 되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트럼프를 상대로 그런 일을 할 가치가 없다"고 했다.

펠로시 의장이 '탄핵에 신중하자'는 뜻은 여러 번 내비쳤지만 명시적으로 제동을 건 것은 처음이다. 그것도 탄핵 열기가 여느 때보다 높은 시점이다. 탄핵 소추권을 쥔 하원 법제사법위원회는 최근 트럼프의 사법 방해·부패·권력 남용 혐의에 대해 국정조사에 착수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탄핵안 초안까지 써놨다. 헌법상 최대 탄핵 사유인 반역·뇌물수수와 관련, 트럼프 대선 캠프와 러시아 정부 커넥션에 대한 뮬러 특검의 수사 결과도 곧 발표된다. 이런 상황에서 펠로시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당장 진보 진영에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은 "탄핵의 가치는 트럼프가 아니라 국민을 보고 따지는 것" "초당적 지지가 변수라니, 공화당이 오케이 안 하면 우린 아무것도 못 하느냐" "진실을 파헤치기 전에 결과부터 정해놨다"며 들끓었다. 트럼프 탄핵 운동에 수천만달러를 쏟아부은 기업인 톰 스타이어도 "펠로시가 정치적 계산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민주당 중진과 지도부, 진보 전략가들 사이에선 펠로시에게 공감하는 분위기가 크다고 폴리티코·뉴욕타임스 등은 전했다. USA투데이는 "미 240년 역사상 탄핵당한 대통령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법적·정치적 절차가 엄정하단 이야기"라고 했다. 1974년 리처드 닉슨이 탄핵 표결 전 워터게이트 의혹을 인정하며 '질서 있는 퇴진'을 택한 게 유일한 낙마 사례일 만큼, 미국은 대통령을 쫓아내는 행위를 가볍게 다루지 않았다.

① 상원의 높은 문턱

미국에서 탄핵은 연방하원 재적 의원 과반수 동의로 발의해, 상원의 3분의 2(100명 중 67명) 이상 찬성으로 가결된다. 현재 하원은 민주당이 다수여서 탄핵안 발의는 할 수 있지만, 상원(공화 53명, 민주 47명)에선 여당 의원 20여 명이 가세해줘야 한다. 민주당 의원이 모두 탄핵에 동의한다는 보장도 없다. 1999년 성추문으로 촉발된 빌 클린턴 탄핵 때도 야당인 공화당에서 10명이 반대표를 던져 부결됐다.

NYT는 "펠로시는 법안 표결마다 의원들을 전수 조사해 통과될 것만 추진하는 '인간 검표기'"라며 "탄핵 표를 2년간 수없이 세봤을 것"이라고 했다.

② 트럼프 가면 '펜스' 온다

트럼프가 탄핵되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2020년까지 대통령을 맡는다. 민주당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펜스라고 뉴요커 등은 전한다. 펜스는 이민·낙태·동성애·여권 인정에서 트럼프보다 더 강경하고 치밀한 정치인이다. "게이 외계인의 지구 침공을 막기 위해 우주군을 창설해야 한다"는 말을 진지하게 할 정도다. 민주당으로선 허점이 많은 트럼프가 훨씬 상대하기 쉬운 상대다. 또 반역죄 등의 결정적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탄핵 역풍으로 보수 세력이 결집할 경우, 펜스 같은 강경 보수가 2020년 재집권에 성공할 수도 있다.

③ 야당 구심점이 없다

탄핵의 혼란을 감당할 강력한 야당 지도자가 없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미국 민주당은 매력적인 대통령이나 대선 주자 등 리더 1인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의회의 리더일 뿐 진보 진영엔 인기가 없으며,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급진파 의원들이 당을 흔들고 있다. 열혈 보수 지지세를 가진 트럼프에게 맞설 구심점이 없는 것이다. 펠로시는 WP 인터뷰에서 "트럼프(에 대한 반대 정서)가 민주당의 최대 결집 요인이자 자금 모금책이었다"며 "그가 그 자리에 있는 게 미국에 더 좋은 일 아니냐"고 했다. 2020년까지 트럼프 정권에 대한 여론을 계속 악화시켜 그의 재선(再選)을 막는 게 훨씬 쉽다는 말이다.

④ 탄핵 않고 트럼프 막을 수 있다

사실 민주당과 의회는 탄핵이란 부담을 지지 않고 트럼프를 옭아맬 수단을 갖고 있다. 최근 국경 장벽 예산 축소, 시리아 철군 번복 등은 초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꺾은 사례다. 무분별한 관세 전쟁 여파로 미 무역 적자가 10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경제에서도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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