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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 (수)

“어젯밤 그놈은 차마 못잊겠다” 조선 춘화도의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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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진달래밭에서 뭐하시나…김홍도·신윤복, 이분들 야하네

대중 만나는 조선 후기 춘화들


운우도첩·건곤일화첩 원화 공개
‘19금 음탕함’에 숨은 해학미 묘사
조선춘화 특징은 ‘자연에서 정사’
수출풍속화 대표 김준근 작품도


강직한 관료이자 시조에 뛰어났던 조선 문인 이정보(1693~1766)는 교과서에도 실린 “국화야 너는 어찌 삼월춘풍 다 보내고(중략), …아마도 오상고절은 너뿐인가 하노라”는 시를 남긴 이다. 판서와 대제학을 지낸 당대의 인물이었던 그가 쓴 다른 시조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어젯밤 자고 간 그 놈, 아마도 못 잊을 거야. 기와장이 아들이었나 마치 진흙을 반죽하듯이, 뱃사공의 손재주였나 마치 노 젓듯 하듯이, 두더지의 아들이었나 마치 곳곳을 파헤치듯이, 평생에 처음이요 마음이 야릇해지더라. 그간 나도 겪을 만큼 겪었으니, 정말 맹세하건데 어젯밤 그 놈은 차마 못잊을거야.”

■ 조선 후기, 에로티시즘이 꽃피다 조선 후기는 두 얼굴을 지닌 시기였다. 실로 깐깐하고 엄격했던 금욕의 시대 같지만, 동시에 성(性)에 대한 문화적 관심이 최고조에 올랐던 시기였다. 이런 흐름을 대표한 것이 ‘춘화’다. 영ㆍ정조대에 이르러 조선 회화는 인간의 진솔한 삶을 바라보는 풍속화가 절정을 맞았고, 여기에서 더욱 솔직하게 인간 본성으로 파고들어가는 춘화가 등장했다.

성리학자 이정보가 야한 시를 썼던 것처럼 풍속화를 완성한 두 거장, 김홍도와 신윤복도 야하디 야한 춘화를 그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두 거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춘화가 모처럼 대중들과 만나는 전시가 마련됐다. 서울 사간동 두가헌갤러리와 갤러리 현대 본관에서 조선 후기 풍속화와 춘화를 모아 전시하는 ‘옛 사람의 삶과 풍류전’이다. 그 이미지는 널리 나돌았어도 진품을 보기 어려웠던 우리 춘화의 대표작을 만나볼 수 있는 드문 전시다.

춘화를 보면 우리가 보인다 세계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춘화는 존재했다. 그리고 각 문화권과 시대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생활사 유물과도 같다. 몽골의 춘화는 ‘마상 정사’ 장면이 많고, 인도 춘화는 요가 자세를 연상시키는 체위가 많으며, 일본 춘화는 특유의 과장과 기괴한 분위기가 특징이다. 그럼 조선 춘화는?

미술사학자 이태호 명지대 교수는 “열린 공간에서 온몸을 드러내고 자연과 교감을 이루는” 점을 우리 춘화만의 매력으로 꼽는다. 곧 야외 장면이 많으며, 중국이나 일본 춘화의 야외 장면이 주로 잘 꾸민 정원을 무대로 하는 것과 달리 우리 춘화는 진달래 밭, 개울가, 달밤 연못 등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공간을 주로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다른 나라보다 훨씬 ‘유머’가 강하다. 이른바 ‘해학의 미’다.

■ 신윤복, 춘화 그리다 쫓겨나다 그러나 이런 전통 춘화는 실로 드물게 전해진다. 소장자들도 소장 여부를 알리지 않으려 하는 것이 보통이다. 줄잡아 6~7개의 화첩이 전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 데, 이번 전시에서는 김홍도가 그렸다는 ‘운우도첩’, 그리고 신윤복이 그렸다는 ‘건곤일회첩’이 원화 화첩으로는 처음으로 동시 공개된다. 단원 김홍도의 경우 알려진 성품으로 보아 춘화를 과연 그렸을지 이론이 있지만, 혜원 신윤복은 춘화를 그리다가 국가 화원이었던 도화서에서 쫓겨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두 화첩의 춘화들은 처녀들이 얼굴을 붉히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노골적이다. 남자 1명에 여성 2명이 벌이는 혼음, 승려와 일반인의 정사, 노인들의 섹스까지 현대 포르노와 다를 것이 없다. 처음 만나는 충격을 달래고 나면 그림 세부가 보인다. 가늘게 치켜뜬 눈 묘사만으로 흐뭇함과 달뜸을 표현해내는 붓질이 눈에 들어온다.

■ 조선말 수출용 풍속화도 있었네 전시는 풍속화와 춘화 두 장르를 풍성하게 모았다. 춘화로 옛 사람들의 ‘밤’을, 다양한 풍속화를 통해 ‘낮’을 만나볼 수 있다. 풍속화는 그 장르 이름은 친숙하지만 실제 진품은 그리 많지 않아 자주 보기는 쉽지 않은 장르인데, 이번 전시작들은 굵직한 것들이 많다. 관아재 조영석의 <이 잡는 노승>과 신윤복의 <후원탄금도> 등에 김홍도의 아들인 긍원 김양기가 조선 시대 도박판을 묘사한 <투전놀이> 등을 전시한다. 또한 19세기 조선을 찾은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수출용 풍속화의 대표 작가였던 기산 김준근의 작품들이 여럿 나온 점도 눈길을 끈다. 15일부터 2월24일까지. 학생 3000원, 어른 5000원, 춘화 전시장은 19세 미만 관람 불가. (02)2287-3591.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도판 갤러리현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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