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정준영 씨가 12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급히 귀국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
폭행 사건으로 시작된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 사건이 마약, 경찰과의 유착, 탈세, 성접대에 이어 가수 정준영 씨(30)의 몰래카메라 촬영 문제로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정씨의 도덕성을 지적하는 비판 여론이 들끓는 와중에도 일부 네티즌이 동영상 존재 여부를 묻거나 추측으로 피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는 글이 유포되는 등 상식을 벗어난 반응이 나오면서 2차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12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이날 정씨를 입건했다고 밝혔다. 피의자 신분이 된 정씨는 미국 현지에서의 촬영을 중단하고 이날 오후 6시께 귀국했다.
입국장을 빠져나온 정씨는 취재진이 '보도된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사실이냐'고 묻자 "죄송합니다"라고 속삭이듯 답한 뒤 공항을 빠져나갔다. 경찰은 조만간 정씨를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이번 사건은 가수 승리(이승현·28)가 성매매를 알선한 내용이 포함된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났다. 경찰은 정씨가 승리 등 동료 가수 및 지인들과 함께 있는 이 대화방에서 여성들을 대상으로 본인이 직접 찍은 것으로 의심되는 사진과 동영상 등 불법촬영물을 유포한 사실을 확인했다.
인터넷에서는 벌써부터 정씨가 촬영한 동영상에 어떤 여성 연예인이 등장하는지에 대해 추측성 댓글이 난무하고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는 이른바 '지라시'까지 돌고 있다. 유명 걸그룹 멤버 A씨와 또 다른 걸그룹 멤버 B씨 등이다. 이 밖에도 정씨와 함께 이른바 인증샷을 찍었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여성 연예인들의 이름까지 거론되면서 2차·3차 피해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해당 동영상을 찾기 위해 몰지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은 자극적인 제목으로 클릭을 유도하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에서는 "어디서 볼 수 있느냐" "경찰들만 보고 있느냐" 등 해당 동영상을 찾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은퇴를 발표한 승리를 향해 "영상은 뿌려주고 가라"며 조롱하는 댓글도 쏟아졌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피해자들의 국선변호를 전담하는 신진희 변호사는 "피해자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얼굴이나 이름 등을 어느 정도로 특정할 수 있는 내용을 올리면 정보통신망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며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처벌이 가능하며 허위 사실일 경우 더 무겁게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 변호사는 "영상물을 공유해 달라고 하는 것 또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기는 힘들지만 유포죄 교사범으로 처벌받을 가능성이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속 연예인의 실명이 언급된 엔터테인먼트사는 피해가 번질까 걱정하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소속 연예인 이름이 언급된 것에 대해 "단순히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여성 연예인에게는 큰 피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 회사는 공식적으로 "최초 작성자와 유포자에 대해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할 것"이라며 전면 대응할 뜻을 밝혔다.
이와 함께 당시 대화방에 포함된 남성 연예인들의 처벌 유무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법률 전문가들은 해당 행위에 대해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내놨다. 법무법인 온세상 김재련 대표변호사는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올리고 공유하는 행위는 사실적시나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사회가 성폭력 사건을 자극적으로 소비하는 세태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피해자 신상이나 얼굴, 영상을 궁금해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어떤 성폭력을 저질러왔는지와 추가적인 가해자 발견에 대해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실명이 거론되는 여성 연예인들은 본인 이름이 언급되고 혹여나 영상이 유포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며 "연예인이 누군지를 특정하려는 시도는 이미 성폭력 피해자가 된 여성 연예인에 대해 직접적인 가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이날 방송사들은 정씨 퇴출 소식을 잇달아 전했다. CJ ENM은 정씨를 예능 프로그램 '짠내투어'에서 하차시키고, 방영 전인 '현지에서 먹힐까? 시즌3'에서 그가 출연한 분량 전체를 편집하겠다고 밝혔다. 또 그가 고정출연 중인 KBS '1박2일' 역시 "정준영의 '1박2일' 출연을 중단시키기로 결정했다"고 알렸다.
각 방송사 예능·드라마 프로그램 제작진도 '버닝썬 게이트'의 확산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출연자가 이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는 순간, 문제 연예인을 걸러내지 못한 프로그램 제작진도 비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일부 시청자는 승리와 정준영이 출연했던 각종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도의적 책임을 묻고 있다. 방송사 관계자는 "지난해 '미투' 때 대처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연예인 성추문을 다루는 노하우가 축적된 상태"라며 "앞으로는 예능 출연자를 섭외하면서 친구 관계까지 꼼꼼히 모니터링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창영 기자 / 문광민 기자 / 박윤균 기자 / 신혜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