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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다 죽고 여섯, 저래 누워 있어…따뜻해지면 수요시위 가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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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선 할머니의 바람

‘일본 사죄’ 말한 것만으로도 입이 다 낡아버렸겠다 싶어

학생들 우리역사 많이 알아야

경향신문

이옥선 할머니(오른쪽)와 단짝 친구였던 고 김군자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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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2일 경기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 ‘나눔의집’을 찾았다. 한때 15명 남짓한 할머니들이 함께 살았던 이곳엔 이제 6명의 할머니들만 남았다. 정복수(103)·박옥선(95)·하수임(89)·강일출(91) 할머니, 부산에서 온 이옥선 할머니(93)와 속리산에서 온 이옥선 할머니(90)다.

이 중 세 명은 병상에서 생활한다. 요양보호사의 돌봄이 없으면 생활이 힘들다. 이동이 가능한 사람은 부산 이옥선 할머니와 강일출 할머니뿐이다.

부산 이옥선 할머니는 “군자하고 나하고는 사정이 좋았다”고 기억했다. 김군자 할머니는 1998년, 이 할머니는 2000년 나눔의집에 들어왔다. 불교 시설인 이곳에서 두 사람만 천주교를 믿었다. 차로 20~30분 걸리는 퇴촌성당을 매주 같이 다녔다. 이제 이 할머니 혼자 다닌다. 적적하지 않으냐는 물음에 이 할머니는 “한도 없어. 몇 해는 생각나지. 그래도 죽을 때가 되어 오라고 간 거니까 괜찮아”라고 했다. 이 할머니는 방 벽면에 걸린 액자 하나를 가리켰다. “군자랑 민속촌에 가서 신랑각시 하고 찍었어. 언제인지는 기억 안 나. 하여튼 옛날에 많이 놀러 다녔어”라고 했다.

두 사람은 약 20년 세월을 친구로 지냈다. 이 할머니는 열다섯살이던 1942년 부산에서 중국 옌지로 끌려갔다. 3년간의 위안부 생활 뒤, 해방이 왔으나 귀국하지 못했다. 국내 시민사회단체 도움으로 2000년 영구 귀국했다. 귀국 기자회견에서 “고국에서 눈을 감을 수 있게 돼 꿈만 같다”고 했다. 한국에 왔지만 정을 터놓을 친구가 없었다. 할머니는 “젊을 때부터 사람들이 나를 웃기려 해도 내가 잘 웃지 않았다”며 지금껏 친한 친구는 “군자 할머니”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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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선 할머니 방의 지구본. 이 할머니는 전세계를 찾아 일본의 만행을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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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돌아와서는 해외 증언 등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활동을 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에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2013, 2014년 독일을 찾아 일본의 사죄를 촉구했다. 2017년 중국 상하이 증언 때는 유창한 중국어 실력으로 일본의 만행을 고발했다. 방에 놓인 작은 지구본은 할머니가 각국을 다니며 증언했던 때, “세계지도를 보려고 산 것”이다. 다만 할머니는 지금은 “기억나는 게 거의 없다”고 했다.

2017년 7월 김군자 할머니 죽음 이후 몸에 탈이 났다. 짝꿍의 죽음에 큰 스트레스를 받은 이 할머니는 신경성 장 천공이 생겼다. 수술을 했지만 고령의 나이에 회복은 더뎠다. 이 할머니는 “이제 겨우 밥 먹어, 포동포동했는데 살이 다 빠졌어”라고 했다.

아직도 “하고 싶은 게 많다”는 할머니는 나눔의집에 누군가 찾아와도 맞아줄 사람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 할머니는 “다 죽고 여섯, 여섯도 저래 누워 있어. 우리 역사 청년들이 많이 알아야 해. 미국에도 일본에도 가고 싶어. 가서 말하고 싶어. 일본한테 사죄받아야 해. 여태까지 말했는데, 말한 것만으로 입이 다 낡아버렸겠다”고 했다. 봄이 와 날이 따뜻해지면 몸이 다 낫지 않더라도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싶다고도 했다.

나눔의집엔 10개의 1인 생활 공간이 있다. 현재 4개의 빈방이 생겼다. 유족들이 물품을 챙겨간 방도 있지만 김 할머니처럼 유품 대부분이 고스란히 남겨진 경우도 있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같이 생활하시던 분들도 방을 바로 치우면 가슴 아파한다”며 “할머니들도, 방문하는 분들도 떠난 분의 흔적이라도 느껴보시라고 빈방을 놔뒀다. 할머니들이 돌아가셔도 나눔의집은 끝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도 쉼터를 운영한다. 현재 길원옥 할머니(91) 혼자 생활 중이다. 2003년에 만든 쉼터에는 약 15명의 할머니가 들고나며 생활했다. 최근 2년간 길 할머니와 함께 이순덕·김복동 할머니가 생활했다. 2017년 이 할머니가, 올 초 김 할머니가 세상을 떴다. 길 할머니는 지난 1월 김 할머니 장례식에 휠체어를 타고 찾았다. 영정 앞에 선 그는 5분여간 아무 말도 없이 사진을 보다 빈소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렇게 빨리 가시네”라는 말뿐이었다. 길 할머니 건강도 좋지 않다. 오성희 정의연 인권연대처장은 “길 할머니가 원래 당뇨가 있으시고, 지금도 기억을 계속 잃고 계신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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