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할머니 전국에 22명, 10년간 생존자 수 4분의 1로
증언 의존한 현재 방식 한계
‘피해자 없는’ 이후 모색해야
지난달 12일 경기 광주시 ‘나눔의집’에서 만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옥선 할머니(왼쪽 사진)와 그의 단짝이었던 김군자 할머니의 빈방. 함께 생활했던 피해자들은 하나둘씩 세상을 뜨고, 이 할머니는 조금씩 옛 기억을 잊어가고 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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닫힌 방문을 열었다. 얇은 이불이 깔린 침대 위 액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사진 속에서 환히 웃는 얼굴은 2017년 7월23일 별세한 위안부 피해자 김군자 할머니다. 서랍장 위엔 주전자, 로션, 빈 꿀통이 놓여 있다. 냉장고부터 텔레비전, 책장, 이불, 전화기까지 생전 김 할머니가 사용하던 물품이다. 침대 밑에 놓인 신발, 옷장의 옷가지 모두 김 할머니에 관한 기억을 생생하게 살려내 전한다.
방 안 달력은 2017년 4월에서 멈췄다. 시곗바늘은 움직이지 않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시설 ‘나눔의집’에서 김 할머니와 ‘단짝’으로 지낸 이옥선 할머니(93)가 빈방을 보며 말했다. “다 그냥 있지. 사람만 없지. 나도 죽으면 내 방은 그대로 있는 거야. 누가 가져가겠어. 죽은 사람 것을….”
나눔의집 빈방은 늘어난다. 곧 피해자 할머니 없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말이다. 정부 등록 위안부 피해자 240명 중 3월4일 현재 22명만 생존해 있다. 모두 85세 이상이며 이 중 15명은 90세를 넘겼다. 평균연령은 91세. 2009년 87명이던 생존자 수는 올해 초 4분의 1로 줄었다. 고령인 피해자들은 노인성 질병도 앓아 건강이 좋지 않다. 한 활동가는 “머지않아 할머니들이 거의 다 돌아가실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올해 세 명이 세상을 떠났다. 지난 2일 광주·전남 지역 유일한 생존자 곽예남 할머니가 94세로 별세했다. 1944년 만 19세 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곽 할머니는 광복 이후에도 중국에서 약 60년을 살았다. 2004년 한국에 돌아왔지만 2015년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최근에는 수양딸이 돈을 노리고 곽 할머니에게 접근했다는 논란을 겪는 등 평생 편치 않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1월28일 김복동 할머니와 이름을 밝히지 않은 이모 할머니가 각각 93, 94세의 나이로 숨졌다.
위안부 운동에서 ‘피해자 할머니’의 존재는 상징적이었다. 일본의 전시 성폭력 문제를 세계에 알리는 운동의 핵심은 할머니들 증언이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 이후 많은 피해자들이 만행을 증언했다. 법정에 선 고령의 피해자들 육성은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분노로 이어졌다.
그 후 30년이 지났다. 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제100주년 3·1절 기념식엔 이용수 할머니만 나왔다. 이제 운동 현장과 무대에 서는 피해자를 찾기 어렵다. 피해자가 현장에 존재하지 않을 때, 위안부 운동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은 위안부 자료를 발굴·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이 팀의 김소라 공동연구원은 “한국 위안부 운동은 지나치게 피해자에게 의존해왔다. 반복적으로 과거 트라우마와 경험을 말하게 한 것이 좋은 방식이기만 했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이제 할머니들의 기록을 우리의 공유된 기억으로 만들어 운동을 계승할 때”라고 했다.
피해자들은 그간 “입이 다 낡아버리도록 말했다”고 얘기한다. 국내에는 일본군 위안부 관련 자료를 모아놓은 공식 데이터베이스나 저장 플랫폼조차 없다. 김 연구원은 이 문제도 거론했다.
경향신문은 여성·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밑바닥에서부터 끌어올린 운동의 역사를 통해 한국·북한 및 동아시아 지역 위안부 운동의 현황을 살펴본다. 사라지는 증언과 기록을 파헤쳐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는 연구자들과 함께 ‘피해자가 사라진 시대’의 위안부 운동 방향도 모색한다.
■ 늘어가는 ‘나눔의집’ 빈방…“이제 청년들이 대신 말해줘야”
“피해자들이 여전히 우리 곁에서 숨 쉬고 있다”는 문장이 주는 울림은 컸다. 한국은 머지않아 이 말을 꺼낼 수 없는 시대에 살아야 한다. 국내 시민사회단체와 연구자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떠난 이후의 위안부 운동과 역사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는 2015년 한·일 합의 이후 조직 재정비에 들어가, 2016년 6월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을 설립했다. 지난해 정대협과 정의기억재단을 통합해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를 출범 시켰다.
정의기억연대·나눔의집 등
할머니 활동 조명 ‘적극 대응’
현재 정의연의 주요 사업 활동 중 하나는 기억과 추모다. 소설가 김숨씨의 일본군 위안부 소설도 정의연 등과 협조해 출간됐다. 소설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현대문학)와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이 있는가>(현대문학)는 김복동·길원옥 할머니 증언을 토대로 집필됐다.
책 출간 당시 정의연은 “소설을 통해 사회의 차가운 시선과 냉대 속에서 살아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삶을 다시 한번 알리고, 피해자들을 향한 우리의 연대의식을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2012년 5월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개관했다.
오성희 정의연 처장은 “이후 동력은 미래세대밖에 없다”고 말한다. 오 처장은 “예전에 할머니 한 분이 목소리 내면 됐지만, 이제는 청소년들과 학생들이 말해줘야 할 시간이 왔다.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우리 곁에 남아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세계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의 연대도 중요하다. 위안부 문제가 일본의 전쟁범죄 중 하나라는 점에서 이들과의 연대는 위안부 운동의 활동 지평을 넓히는 일이다. 김복동 할머니는 생전 베트남, 콩고, 우간다 등 전쟁·무력분쟁지역 피해 여성들에게 기부했다. 오 처장은 “우간다 전쟁 피해자들이 김복동 할머니를 통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억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나눔의집’은 할머니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면 지금 공간을 또 다른 여성 인권 피해자를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안신권 나눔의집 소장은 “사할린 강제 이주노동자들이나 파독 간호사 등 한국 사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여성 인권 문제의 피해자들을 모실 예정”이라며 “당사자 외에도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독립운동 후손, 위안부 피해자의 딸 등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유족들과 대화하다 보면 트라우마가 대물림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어떤 분들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엄마가 피해자여서 내가 공부 못하고 냉대 받았다. 그래서 나도 이혼했다’ 같은 말을 하기도 한다”며 “이들도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군자 할머니 방 등 인권운동에 투신한 일부 할머니들 방은 나눔의집을 찾는 사람들이 떠나간 할머니들의 삶을 추모하는 장소로 남기려고 한다. 나눔의집은 일본군위안부인권센터 건립도 준비 중이다.
연구자들은 생전 피해자와 함께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기억 구술 연구를 계속하려고 한다. 박정애 동북아역사재단 일본군위안부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기억, 위안소가 있던 마을에 대한 기억을 가진 유족이나 목격자 연구는 계속돼야 한다”며 “피해자 경험을 전승해 기억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복순 할머니는 관련자 연구가 중요함을 알려주는 사례다. 2008년 세상을 떠난 이 할머니에 대한 구술집은 없다. 그는 생전 자신이 인도네시아 자바섬으로 끌려갔다고 생각했지만, 서울대 인권센터 정진성 교수 연구팀 조사 결과 이 할머니는 남태평양 축제도(일명 트럭섬)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서 트럭섬 강제동원 피해자 사진을 찾아낸 연구팀은 이를 한국 피해자들과 대조했다. 생전 이 할머니를 지켜봤던 활동가와 이 할머니의 큰아들이 ‘사진 속 여성은 이복순이 확실하다’고 확인했다. 이후 연구팀은 각종 자료를 대조해 이 할머니가 트럭섬에서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2017년 밝혀냈다. 트럭섬의 조선인 위안부 신원이 확인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정부, 위안부 문제에 소극적
말만 하고 구체적 대안 없어
정부의 준비는 부족하다. 정부는 피해자들이 일본을 대상으로 소송하거나 발언하면 ‘입장’ 또는 ‘논평’을 내는 정도로만 대응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빈소에 조문하는 등 과거사 문제 청산에 의지를 보였지만, 앞서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 적은 없다.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도 파행을 겪었다. 이 연구소는 위안부 관련 자료를 집대성하고 각종 연구사업을 지원하려고 여성가족부가 산하 기관인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위탁해 만든 것이다. 지난해 8월 출범했지만 초대 소장을 맡은 김창록 경북대 교수가 3개월 만에 물러나는 등 파행을 빚었다. 지난 1월 여가부는 연구소의 독립성을 확보하는 등 위안부 피해자 기념사업을 재정비하겠다고 밝혔다. 재정비 로드맵은 발표되지 않은 상태다. 여가부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 자료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이 많다.
위안부 기록 발굴 연구자인 강성현 성공회대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국가범죄이고 전쟁범죄다. 국가 차원의 법 제도적 진실규명이 진행되어야 한다”며 “일본뿐 아니라 한국 정부도 이 문제에 대면하고 응답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피해자 중심 사회운동과 정부 역할이 둘 다 필요하다.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고희진 기자 go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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