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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스캔들 포화 속 빈손 귀국 트럼프, 고의적 벼랑끝 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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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 시작부터 ‘집사’ 출신 코언 폭로에 발목 잡혀

낮은 차원 합의보다는 합의 무산이 국내 정치에 유리

싱가포르 회담 취소 소동 때와 같은 대북한 압박 전술

“추가 협상 곧 있을 것”…향후 협상 여지는 남겨둬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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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에서, 그것도 세계적 주목을 받은 역사적 정상회담에서 합의 없이 회담장을 걸어나오는 것은 이례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8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이런 선택을 했다.

합의 무산은 양쪽 모두의 책임이기는 하나,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시작과 함께 처한 정치적 환경과 그 특유의 벼랑 끝 전술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도중 과거 핵심 측근의 폭로성 의회 증언이라는 대형 복병을 만났다. 김 위원장과 회담 성공을 예고하는 환담을 나누던 27일 저녁, 1만3400㎞ 떨어진 지구 반대편 워싱턴에서는 전혀 다른 풍경이 벌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이자 ‘해결사’로 불렸던 마이클 코언이 트럼프 대통령을 ‘사기꾼’ ‘인종주의자’ ‘범죄자’라고 부르며 하원 감독개혁위원회의 공개 청문회장에 선 것이다. 미국 언론들은 하노이의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워싱턴 청문회장의 코언에 집중했다.

코언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 때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 타격을 준 민주당 전국위 해킹 이메일 폭로를 위키리크스로부터 사전에 연락받았다고 증언했다. 또 대선 기간에 모스크바의 트럼프타워 프로젝트 협상이 진행됐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에 대해 거짓말을 사주했다고 밝혔다.

하노이 현지에도 그 여파가 몰려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만찬 직전 일대일 환담 자리에서 기자가 코언의 증언에 대해 묻자 대답 없이 머리만 흔들었다. 곧 그 질문을 한 <에이피>(AP) 통신 기자 등 애초 만찬 취재를 하기로 약속된 펜기자 4명의 만찬장 입장을 백악관이 막았다. 세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소리치는 질문들에 대한 민감함”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은 사진기자들이 펜기자가 없으면 취재를 거부하겠다고 압박하는 바람에 펜기자 1명만 들여보냈다.

이날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북-미 정상회담 및 미-중 무역 협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엉성한 합의를 대가로 우리의 지렛대를 팔아치울 준비가 된 것 같다” “북한과 중국 모두에 항복의 길을 가는 것 같다”며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이런 환경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민주당이나 주류 언론의 비난을 받을 낮은 차원의 합의보다는 합의 무산을 택하는 게 차라리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개연성이 있다. 그는 회담 전부터 “서두르지 않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성급하게 부실한 합의를 하지 말라는 미국 정치권이나 언론의 주문에 대해 ‘난 쉽게 양보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강조한 셈이다. <시엔엔>(CNN) 해설가 존 커비가 “회담장을 기꺼이 박차고 나왔다고 대통령을 질책할 생각은 없다”, “딜을 위한 딜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높이 살 만하다”고 말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격적으로 회담 취소를 발표했다가 번복한 전력이 있다. 이런 협상 스타일을 감안하면, 이번 합의 무산도 큰 틀의 협상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지난해 정상회담 취소 소동에서 보듯 북한을 강하게 압박해 더 큰 타결의 여지를 확보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과의 3차 정상회담을 “약속하지 않았다”면서도 “그것이 열릴지를 보자”고 말했다. 그는 싱가포르 회담 취소 소동 때도 김 위원장에게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라”고 편지를 보낸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으로 미뤄, 북-미는 냉각기를 거친 뒤 협상 재개 노력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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