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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화장품·차·책···넌 아직도 사니? 구독 경제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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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은 일정 기간 구독료를 내고 상품과 서비스를 받는 경제활동을 뜻한다. 구독경제는 소비자를 제품을 ‘사는’ 고객이 아니라 ‘구독’하는 사람으로 바꾼다. 전통적인 산업에 다양한 서비스가 구독의 형태로 더해진 것이다. 구독경제가 어디까지 진화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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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구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지난 1월 21일 오전 열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 제작발표회장이 테마파크처럼 꾸며져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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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0대 여성 ㄱ씨는 3개월 전 화장품 ‘구독’을 시작했다. 최소 구독료는 한 달 5만원이다. 한국 여성이 한 달에 화장품에 쓰는 평균 비용인 10만원보다 적다. “다른 시도를 해보자”며 구독을 시작하자마자 가이드가 찾아와 피부 상태를 측정했다. 피부결이나 톤이 나쁘진 않지만 민감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화장품은 ‘피부 재생주기’라는 28일마다 배달된다. 스킨이나 로션이 담긴 통에는 자신의 이름이 각인된 가죽 라벨이 달려 있다. 시중에서는 ㄱ씨의 취향에 맞는 무향 화장품을 찾기 어려웠지만 여기서는 모두 원하는 제형과 향으로 제작할 수 있다. ㄱ씨는 “화장품을 검색하고 쇼핑하는 데 쓰는 시간과 에너지가 확연히 줄었다”면서 “28일 용량만 있어 집에 화장품을 쌓아둘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2 ㄴ씨(33)는 한 달 전 차량을 ‘구독’했다. 한 달 72만원에 현대차의 쏘나타, 투싼, 벨로스터를 바꿔 탈 수 있다. 장기 렌트나 리스 상품과 달리 주행거리에 제한이 없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앱으로 모든 걸 주문할 수 있어 사용하면서 불편함은 느끼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 48시간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도 타봤다. 신혼인 ㄴ씨는 “주변 아빠들이 다들 나중에 아기가 생기면 SUV로 가야 한다고 하는데 구독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나는 SUV랑 안 맞는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신차 구입을 앞두고 짧은 시승만으로는 차량을 결정하기 어려울 때, 그리고 한국에 잠깐 들어왔다가 출국해야 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짧게 이용하기에 괜찮은 접근”이라고 했다.

#3 ㄷ씨는 평소 베스트셀러, 혹은 지인들이 추천한 책을 샀다가 돈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고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반납하기엔 시간이 빠듯하다. 이런 이유로 책과 멀어지던 중 지난해 여름부터 월정액 독서앱 ‘밀리의 서재’를 이용하게 됐다. 한 달 9900원으로 무제한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서비스다. 읽을 책을 고르지 못했을 때는 밀리가 ‘배달’해준 책을 본다. 덕분에 몰랐던 분야, 관심 없던 분야의 책을 만나기도 한다. 정말 ‘인생의 책’이 아닌 이상 소장할 필요는 없다는 게 ㄷ씨 생각이다.

현재 ㄷ씨의 온라인 서재에는 읽은 책 50여권과 인용한 문구 592개가 차곡차곡 저장돼 있다. 실물이 없다는 점은 ㄷ씨에게 오히려 장점이다. 자취를 하고 있어 책과 책장의 부피는 부담이다. ㄷ씨는 “하지만 실제 효과는 책을 소유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자신이 읽은 책 목록을 이미지로 볼 수 있고, 구독을 끊지 않는 한 언제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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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씨가 구독하고 있는 독서앱 ‘밀리의 서재’ 화면. ㄷ씨가 읽은 책과 인용구 숫자가 표시된다. / ‘밀리의 서재’ 화면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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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의 시대에서 구독의 시대로

“날 구독하세요.”

세상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이다. 구독은 일정 기간 구독료를 지불하고 상품과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경제활동을 뜻한다. 신문, 우유 배달 같은 오래된 유형부터 넷플릭스와 멜론 같은 디지털 스트리밍 형태의 구독, 월정액을 내면 정기적으로 면도기나 의류, 식료품 등을 배송받는 서비스까지 구독이 전방위로 확장되면서 ‘구독경제’가 형성됐다.

구독경제는 소비자를 제품을 ‘사는’ 고객이 아니라 ‘구독’하는 사람으로 바꾼다. 기업은 제품을 서비스로 만들어 반복적인 수익을 창출한다. 소비자는 소유하지 않고 구독하면서 물건이 아닌 경험을 소비한다. 전통적인 산업에 다양한 서비스가 구독의 형태로 더해지면서 ‘만물이 서비스화’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구독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일정 비용을 내고 회원으로 가입하면 물건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형태로 이미 미디어·콘텐츠 분야를 중심으로 수백 년 전부터 존재했다. 전기료와 수도세, 통신료도 구독경제에 속한다. 하지만 현재는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그 외연이 질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먹고 마시는 것부터 책과 음악, 영화, 법률 서비스와 컴퓨팅 자원(아마존·네이버), 자동차(포르쉐·BMW·현대 등)와 비행기(서프에어), 침대(코웨이)도 디지털의 ‘옷’을 입고 구독하는 시대가 됐다.

구독경제의 성장은 기술 발전과 궤를 함께한다. 과거에 방문판매와 우편, 전화 등 오프라인 기반의 멤버십 모델이 모바일로 바뀌면서 접근성이 크게 높아졌다. 정보기술 분야 칼럼니스트인 류한석씨는 “모바일로 검색만 하면 사람들이 소셜미디어(SNS)에서 공유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고, 스마트폰 앱으로 빠르게 신청하고, 앱에서 즉각 원하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며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많이 이용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기관 포레스터리서치는 이런 변화상을 ‘고객의 시대’로 표현했다. 소비자들이 기업과 대등한 정보력을 갖추고, 필요한 순간에 어디서든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기기로 원하는 정보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시대를 말한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끊김없는 스트리밍 서비스가 가능해서 과거처럼 비디오를 소장하거나 다운로드 받을 필요가 없어졌다”며 “소유에서 경험으로 소비철학 자체가 변했다”고 말했다. 신문이나 자동차는 집에 두고 오면 더 이상 이용할 수 없지만 모바일 기술과 결합해 구독하면 언제 어디서든 경험할 수 있다.

멤버십을 구매하고 쓰지 않으면 ‘호갱’이 되지만 잘 쓰면 알뜰한 소비가 가능하다. 디지털 방식의 소비에 익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유리하다. 전미영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젊은 세대는 다양한 제품을 경험해보고 싶어한다”며 “부정적으로 보면 소득이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제품을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커서 소유가 아닌 구독으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 연구위원은 1인가구 증가를 비롯한 인구 변화도 구독경제 부상에 한몫했다고 본다. 1인가구가 증가하고, 장거리 주말부부 등 가족 형태가 비정형화된 변화를 보이면서 소비 역시 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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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는 지난 1월 7일 차량구독 서비스 ‘현대 셀렉션’을 선보였다. 현대 셀렉션은 한 달 72만원에 쏘나타, 투싼, 벨로스터 중 월 최대 3개 차종을 교체해 사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 현대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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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비용 제로 시대가 만든 구독

넷플릭스나 멜론, 리디북스와 밀리의 서재 등 국내외 미디어·콘텐츠 분야에서 구독경제가 활발하게 시도되는 것은 ‘한계비용’과 관련이 있다. 디지털 형태로 제공되는 서비스의 경우 일단 비용을 들여 콘텐츠와 인프라를 구축한 후에는 추가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한계비용)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한편, 처음에 고객을 기하급수적으로 늘려야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초기에 무료 혜택과 오리지널 콘텐츠로 구독회원을 확보하고, 이들이 떠나지 못하도록 ‘잠금효과’를 얻는 데 업계가 사활을 거는 이유다.

유통업계도 비슷하다. 대표적 사례인 아마존 프라임의 경우 연 119달러(약 13만4000원)의 회비를 내면 이틀 안에 무료배송을 해주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뮤직·오디오북 스트리밍 서비스, 무제한 클라우드 사진 저장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서 교수는 “아마존은 철학 자체가 이익을 남기지 않고 고객을 잡는 것”이라며 “엄청난 가성비를 줘서 한 번 들어가면 잠가서 절대 다른 데로 갈 수 없게 된다”고 말했다.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 쿠팡의 경우, 지난해 10월 쿠팡 로켓와우멤버십을 선보였다. 월 2900원에 가격 상관 없이 무조건 무료배송, 30일 이내 무료반품, 당일배송, 신선식품 새벽 배송 등의 혜택을 제공한다. 2월 중순 현재 가입자가 150만명을 돌파했다. 2015년부터 월 단위로 유아용품, 식품, 생활용품 등을 정기적으로 배송하는 서비스도 시작했다. 위메프도 지난 1월 23일 월 990원의 유료멤버십 서비스를 시작했다. 특가상품 구매시 결제액의 2% 적립, 할인쿠폰 지급, 별도 특가구매 기회 제공 혜택을 준다. 황훈 쿠팡 홍보팀장은 “고객들은 시간과 비용상 편의를 얻고, 업체는 충성고객을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공유경제도 구독경제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리디셀렉트 같은 도서 앱 구독서비스는 한 권의 전자책을 수천 명이 공유하는 것과 같다. 차량 구독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위워크와 같은 공유오피스는 공간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구독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구독경제의 범주에는 한계가 없어 보인다. 전통적으로 소유 욕구가 강했던 자동차도 구독을 통해 공유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현대차를 비롯해 포르쉐, BMW 등이 차량 구독 서비스를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현대차는 차량을 소유하는 부담 없이 매달 새로운 차를 경험하길 원하는 고객에게 이상적인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여러 차종을 선택할 수 있는 게 기존 리스 형식이나 렌터카와 다른 점이다. 월 구독료에는 각종 세금과 보험료, 기본 정비료가 포함돼 있어 이용하는 동안 별도 비용이 들지 않는다. 현대차 측은 운전자 실수로 차량 파손 등의 사고가 나도 면책부담금(최대 50만원) 외에 이용자가 따로 부담하는 비용은 없다고 설명했다.

앱을 통해 계약과 결제, 차량교체, 반납 등 모든 과정을 처리할 수 있어 빠르고 편리하다. 이 회사는 차량 구독 프로그램을 10개월 정도 운영하면서 현재 50명인 구독 프로그램 규모를 확대할 계획이다. 기아차도 올해 상반기 중 차량 구독 서비스를 낼 것으로 알려졌다.

어디까지 확산될까

비행기와 기차를 구독할 수도 있다. 미국의 서프에어사는 월 2000달러(약 225만원) 정도의 회비를 내면 항공기를 이용해 미국과 유럽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고, 프랑스 국영 철도회사 SNCF는 16~27세를 대상으로 한 달에 79유로(약 10만원)만 내면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놨다.

기존 구독 서비스를 여러 개 묶은 ‘콤보’ 형태의 구독서비스가 출현할 수도 있다. 아직은 하드웨어 제조사의 성격이 강한 애플도 하드웨어 업그레이드를 포함해 통신사 요금, 애플 뮤직과 뉴스 등 여러 구독서비스를 묶은 통합 구독 플랜을 내놓을 수도 있다.

이젠 더 이상 하나의 제품을 오래 쓰는 게 미덕이 아닌 세상이 됐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경험을 향유하려는 욕구가 커지면서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까지 구독모델이 확산될 것”(전미영)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내구재를 중심으로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이장혁 고려대 경영대 교수는 “아주 저렴한 소모품 외에 대부분의 상품은 이와 같은 구독모델로 갈 것”이라면서 “제품과 서비스가 결합되고 그 중에서도 서비스의 비중이 갈수록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이하늬 기자 ha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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