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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Citylife 제666호 (19.02.19)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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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이 빚어낸 악몽 ‘1차 대전’ 『몽유병자들』

시티라이프

크리스토퍼 클라크 지음 / 이재만 옮김 / 책과함께 펴냄


이 책은 1903년 세르비아의 오브레노비치 국왕 암살 사건부터 1914년 전쟁 발발 직전까지의 역사를 촘촘하게 훑어간다. 1세기 전 유럽에서 일어난 전쟁의 원인을 다룬 책을 선물한 이유는 뭘까. 『워싱턴 포스트』는 의도하지 않은 분쟁이 발생할 위험성에 대한 메시지를 극대화하기 위해 책을 건넸다고 분석했다. 이 책의 주제는 한 문장으로 거칠게 요약할 수도 있다. “1914년의 주역들은 눈을 부릅뜨고도 보지 못하고 꿈에 사로잡힌 채 자신들이 곧 세상에 불러들일 공포의 실체를 깨닫지 못한 몽유병자들이었다.”

시계를 되돌려보자. 1914년 6월28일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유럽 대륙은 겉으로 보기에 평화로웠다. 하지만 당시 유럽은 끓기 직전의 물처럼 긴장감이 높았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러시아, 영국, 이탈리아까지 6개국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맺고 있었다. 역사학자들은 ‘썩은 사과’인 독일의 유책성에 초점을 맞추거나 공동책임 혹은 ‘체제’의 결함에서 원인을 찾아왔다. 이 논쟁은 1세기가 지난 지금도 진행 중이다. 크리스토퍼 클라크 케임브리지대 역사학 교수는 이 논쟁은 오늘날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가 전쟁이 ‘왜’ 일어났느냐보다는 ‘어떻게’ 일어났느냐에 주목한 이유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의 ‘7월 위기’를 역사상 가장 복잡한 위기로 꼽는다. 알바니아 영토국가의 갑작스러운 등장, 흑해에서 오스만과 러시아가 벌인 해군 군비 경쟁, 소피아에서 베오그라드로 방향을 돌린 러시아의 정책…. 이 같은 단기적 사건들이 중첩되면서 유럽의 체제는 급속한 변화를 겪었다. 게다가 유럽의 군주들은 별개의 지휘계통을 수렴할 능력이 부족했다. 균형 잡힌 의사결정은 요원한 일이었다. 파벌주의와 과잉 수사(修辭)는 결과적으로 7월 위기로 귀결됐다. 전쟁은 정치적 행위자들이 내린 연쇄 결정의 정점이었다. 최선의 정보를 바탕으로 최선의 판단을 내렸지만 제국주의, 민족주의, 무장, 동맹, 재정과 같은 요소가 함께 작용하면서 전쟁이 발발했다는 얘기다.

저자는 1차 세계대전은 실제로 일어나기 전까지는 불가피한 전쟁이기는커녕 오히려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이었다고 주장한다. 우발성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독일의 계산에서는 러시아가 개입할 확률이 희박하다는 가정이 있었다. 하지만 1913년 세르비아에 대한 오스트리아의 최후통첩을 러시아가 용인한 것은 명백한 이유 중 하나다.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독일은 위험을 감수하는 수준이 아니라 위협을 시험하는 수준의 도발이었다. 특히 저자는 다자간 상호작용을 도외시한 채 단 한 국가에 전쟁 책임을 지우거나 교전국들의 ‘유책 순위’를 매기는 견해가 역사와는 다르다는 것을 세밀한 서술로 입증한다. ‘인류의 가장 거대한 전쟁’은 유럽 국가들이 공유하던 정치 문화의 소산이자 특정 국가의 범죄가 아닌 공동의 비극이었던 셈이다.

▶29인의 소설가, 박완서를 기리다 『멜랑콜리 해피엔딩』

시티라이프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펴냄


한국 문학사에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린 박완서(1931~2011년). 문학의 세례를 받고 자란 후배 작가들이 고인에게 소설이라는 형식의 편지를 띄운다. 박완서 작가 8주기를 기념해 소설가 29명이 박완서를 기리며 쓴 오마주 소설집이 출간됐다. 생전에 박완서는 짧은 소설, 즉 콩트 쓰는 맛을 “방 안에 들어앉아 창호지에 바늘 구멍을 내고 바깥세상을 엿보는 재미”로 비유하기도 했다. 후배 작가들도 고인이 즐겨 쓴 형식인 콩트를 택했다. 강화길, 김사과, 김숨 등 젊은 작가들과 권지예, 김종광, 이기호, 조경란 등 중견 작가들까지 대거 참여했다. 29편의 소설은 박완서를 직접 언급하지 않은 소설이 대부분이지만 고인을 그리워하는 이야기도 여러 편 실렸다. ‘작고 당시 남프랑스에 머물며 부고를 접해 영전에 작별인사를 못한 것이 가슴에 맺혀 있다’는 함정임의 소설은 고인을 직접적으로 소환한다. 과거 편집자로 일하던 계간지에서 박완서의 장편 연재를 맡거나 작품 세계를 망라하는 특집호를 펴낸 기억을 떠올리며, 고인을 향한 각별한 애정을 고백한다. 이기호는 생활고에 치인 가장의 비애를 담은 소설을 통해 박완서 작가가 보여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재현한다. 김성중은 등심과 안심을 ‘등신, 안심’이라 잘못 메모하는 아내를 통해 부부의 애처로운 화해를 보여주고, 조해진은 계약직 교수 채용 심사에서 옛 연인에게 반대표를 행사하는 교수 정혜의 이야기로 속물근성을 풍자하기도 한다.

[글 김슬기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666호 (19.02.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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