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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18 (수)

규제장벽탓 역주행 줄기세포…5년째 신규치료제 허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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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줄기세포치료제 (上)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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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적으로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지만 국내 줄기세포 산업은 역주행을 거듭하고 있다. 2014년 코아스템이 루게릭병에 쓰이는 줄기세포 치료제 '뉴로나타-R' 판매 허가를 받은 것을 끝으로 새롭게 판매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가 전무한 상태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줄기세포 업체만 10여 개에 달하지만 지난 5년간 새롭게 판매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가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파미셀이 개발한 알코올성 간경변 줄기세포 치료제 '셀그램-LC'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낸 조건부 허가 신청마저 이달 초 반려되면서 당분간 새로운 줄기세포 치료제 판매 허가를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국내 업체들의 줄기세포 기술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재 전 세계에서 시판되는 8개 줄기세포 치료제 가운데 4개가 한국산일 정도로 줄기세포 시장에서 국내 줄기세포 업체들이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알츠하이머, 크론병, 췌장암 등 난치성 희귀질환 치료제에 도전하는 줄기세포 업체도 많다.

실제로 우리나라 줄기세포 기술력은 여러 바이오 분야 가운데 초일류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4개의 줄기세포 치료제를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줄기세포 관련 임상시험 건수도 미국 다음으로 많다.

식약처에 따르면 1999~2016년 전 세계 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은 미국이 155건(49%)으로 가장 많고 한국 46건(15%), 중국 29건, 스페인 15건 순이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2017년 작성한 기술수준평가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 바이오 기술력은 미국의 77.4% 수준으로 4.3년의 기술 격차가 존재하지만, 줄기세포 분야는 미국 대비 86.9% 수준으로 우리가 보유한 바이오 기술 중 가장 앞서 있다.

하지만 정부는 2005년 황우석 사태를 전후해 줄기세포 치료 안전성과 윤리성을 강조하면서 과도한 규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은 환자 모집이 어렵고, 연구비용 등이 일반 합성의약품에 비해 많이 들어 상용화하는 데 기간이 오래 걸리고 돈도 많이 든다.

이 때문에 정부가 개발 중인 줄기세포 치료제의 신속한 시장 진입을 돕기 위한 적절한 지원책 대신 규제 일변도로만 가다가는 연구만 하다가 끝나버릴 위험성이 크다. 줄기세포 변방으로 치부됐던 중국만 해도 2015년부터 줄기세포 연구·품질관리 지침 등을 내놓고 사업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식약처에 따르면 중국은 줄기세포 관련 임상 건수가 2016년 한 해 동안 8건으로 미국(23건)에 이어 2위로 올라서면서 한국(5건)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일본은 2013년 기존 약사법을 개정해 허가받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를 의사 책임하에 시술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개발 중인 줄기세포 치료제가 안전성에 문제가 없고, 유효성이 입증될 가능성이 높다면 임상 2상 후에 최대 7년간 시판을 허용하면서 임상 3상을 진행하도록 하는 '조건부 승인' 제도를 도입했다.

일본이 조건부 승인을 통해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면서 일본 업체들은 최근 유도만능줄기(iPS)세포 기술을 활용해 치료 분야를 넓히고 있다. 이미 자란 체세포를 다시 거꾸로 미성숙기 줄기세포(배아줄기세포)로 되돌려 여러 인체조직으로 바꿀 수 있는 일종의 '만능세포'를 만드는 방식이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iPS를 활용해 심장질환, 파킨슨병 치료제 개발을 위한 임상시험을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유럽에서도 치료 방법이 없는 말기 암이나 희귀질환 환자를 대상으로 판매 허가 전이라도 줄기세포 신약을 무상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바이오의약품의 시장 진입을 앞당기기 위해 일본에 이어 2016년 조건부 판매 허가 제도를 도입했다. 생물학적 제제 등의 품목허가심사 규정 개정을 통해 '생명을 위협하는 질환'이나 '중증의 비가역 질환'에 쓰는 세포치료제는 임상 2상 결과만으로 조건부 허가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파미셀의 간경변 치료제(셀그램-LC)가 식약처에서 조건부 허가 반려 조치를 받은 것을 비롯해 최근 2년간 조건부 승인 문턱을 넘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하나도 없다. 강스템바이오텍, 네이처셀 등 바이오기업들이 줄기세포 치료제를 내놓고 조건부 허가를 신청했지만 통과하지 못했다. '중증의 비가역적 질환' 범위를 과도하게 엄격히 해석하는 바람에 심사 대상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강스템바이오텍은 2017년 개발 중인 아토피피부염 줄기세포 치료제 퓨어스템의 조건부 허가를 신청했지만 식약처는 아토피피부염이 중증 비가역 질환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신청을 반려했다.

줄기세포 업체들은 "조건부 판매 허가 제도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며 "유연하게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치매나 파킨슨병, 암과 같은 중증질환에만 허용하는 걸 고집한다면 줄기세포 치료제 상용화는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줄기세포나 유전자 치료 등 첨단바이오 분야를 기존 합성의약품과 똑같은 방식으로 허가·관리하는 것도 문제라는 목소리가 크다. 현행 줄기세포 치료제는 합성의약품과 동일하게 약사법으로 관리돼 임상부터 치료제 개발까지 10년 넘게 걸린다.

줄기세포 치료를 선택한 환자는 대부분 다른 수단을 쓰고도 효과를 얻지 못해 줄기세포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줄기세포 치료제의 신속한 개발과 상용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2016년 줄기세포 등 첨단 바이오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첨단재생의료 지원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된 바 있다. 이 법은 세포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등을 정의하고, 원료 채취부터 시판 후 사용에 이르는 전 주기에 걸쳐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된 첨단바이오의약품 상용화를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여야 의원들 의견을 반영해 '첨단재생의료 및 첨단바이오의약품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줄기세포 치료제 상용화에 도움이 되는 재생의료법 등 전향적인 법안이 다 묶여 있어 시장 확대에 제한을 받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줄기세포 치료제는 태반이나 골수, 신경, 근육 등에서 여러 종류의 세포로 변할 수 있는 다중 분화 능력을 가진 줄기세포를 채취해 배양한 뒤 손상된 신체 부위를 재생하는 데 쓰인다.특히 줄기세포 치료는 고령화로 인해 수술이 힘들고 약이 잘 듣지 않는 노인뿐만 아니라 난치 희귀질환 등을 치료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로 여겨진다.

■ 용어설명

▷ 줄기세포 치료제 : 다양한 세포로 분화 및 자가 재생산이 가능한 미분화세포(줄기세포)를 활용해 손상된 조직이나 장기를 재생해 치료하는 바이오 의약품.

[김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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