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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1 (토)

총리 되겠다는 누나 주저앉힌 타이 국왕…3월 총선 앞 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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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갈등해온 친탁신-반탁신 세력

5년 군정 끝내고 총선에서 ‘리턴 매치’

개헌으로 군부 등에 업은 반탁신 유리해져

친탁신, ‘왕실 인사’ 내세워 압승 노렸지만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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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은 국왕의 성명에 따르겠다. 우리는 왕실의 전통을 존중한다.”

5년 만에 치러지는 다음달 24일 총선을 앞두고 정권 탈환을 위해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의 누나인 우본랏 라차깐야(67) 공주를 총리 후보로 내세우려던 타이의 ‘친탁신계’ 정당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앞서 타이 국가유지당은 8일 “민주주의를 지켜내야 한다. 쿠데타로 생겨난 정권이 지속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우본랏 공주를 총리 후보로 내세우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와치랄롱꼰 국왕은 당일 밤 “왕실 고위 관계자가 정치에 참여한 것은 어떤 이유든 매우 부적절하다”며 강경한 반대 성명을 내놨다. 그러자 이튿날인 9일 국가유지당은 ‘공주 옹립을 포기한다’며 꼬리를 내렸고, 공주 역시 자신의 에스엔에스(SNS)에 “(지금까지의) 격려와 응원에 감사한다”며 출마 포기 의사를 밝혔다.

<뉴욕 타임스>와 <아사히신문> 등 주요 외신들은 1박2일에 걸친 우본랏 공주 출마를 둘러싼 타이 정계의 숨가쁜 움직임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철없는 공주의 출마 시도와 좌절’이란 해프닝처럼 보이는 이번 사태의 이면에 지난 20년간 타이 사회를 양 갈래로 찢어놓은 탁신 친나왓 전 총리에 대한 찬반이라는 첨예한 갈등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타이 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유지하고 있는 탁신 전 총리는 2001년 1월 정권을 잡은 뒤 대규모 공공사업, 사회보험제도 개혁, 마약 퇴치 등의 정책을 쏟아냈다. 혜택을 본 농민층과 도시 빈민 등 ‘친탁신’ 세력은 압도적 머릿수를 바탕으로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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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군부와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 세력이 탁신 전 총리의 일방적 통치 스타일과 부패 의혹을 내세우며 반격에 나섰다. 탁신 전 총리는 4년 뒤인 2005년 2월 총선에서 승리하지만, 2006년 9월 유엔총회 참석차 자리를 비운 사이 15년 만에 군부의 기습 쿠데타가 발생했다. 이후 타이는 탁신 전 총리에 대한 찬반을 둘러싸고 두번의 총선과 계엄 선포, 정당 해산 등으로 이어지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친탁신과 반탁신 사이의 긴 대립은 탁신 총리의 동생인 잉락 친나왓이 이끄는 프아타이당(타이공헌당)이 2011년 7월 총선에서 승리하며 일단락됐다. 그러나 불과 2년 뒤인 2013년 11월 탁신 전 총리의 사면을 둘러싸고 첨예한 갈등이 재발했다. 그러자 군부 실력자 쁘라윳 짠오차 육군참모총장(현 임시 총리)이 “극심한 사회 갈등 해소”를 명분으로 2014년 5월 쿠데타를 일으켰다. 애초 군부는 2015년 8월께는 권력을 민정에 이양한다고 밝혔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5년 만인 올해 3월24일 총선 일정을 잡았다.

그사이 헌법은 친탁신파에 불리하게 개정됐다. 2016년 8월 개정된 헌법을 적용하면, 새 총리는 하원의원 500명과 현 군정이 임명하는 상원의원 250명이 한표씩 행사해 뽑게 된다. 친탁신파가 총리를 배출하고 집권하려면 하원의 과반(251명)이 아니라 상하원을 합쳐 376석 이상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친탁신 정당은 총선 압승을 통한 정권 탈환을 위해 ‘왕실 인사’ 카드를 꺼냈지만 국왕의 반대로 뜻을 접게 됐다.

우본랏 공주 카드가 폐기되며,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란에 빠져들게 됐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이대로라면 “친탁신 정당이 하원 다수당을 점하지만 총리는 배출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군정을 마무리하는 총선 뒤에도 혼란이 이어질 것이란 의미다.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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