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고 지는 일을 보는 게 전부, 그래서 모든 걸 느낄 수 있는 곳
라오스의 국경, 메콩강에 사는 이와라디 돌고래./사진 변종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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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롭지 않은 이웃의 섬, 씨판돈
씨판돈은 사천 개의 섬이라는 뜻이다. 라오스의 최남단. 캄보디아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곳에 사천 개의 섬이 있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아주 작은 모래톱부터 제법 큰 규모의 섬까지, 다양한 크기의 섬들이 살가운 간격으로 이웃해 있다. 가느다란 쪽배를 타고 섬들 사이를 배회하면 섬 하나가 한 채의 집 같기도 하고, 때로는 말없이 돌아앉은 사람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외로운 섬들이 아니라 어디서나 닿을 수 있는 이웃의 섬들이다.
사천 개의 섬 중 한 곳에 안착하기 위해 이른 아침 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렸다. 씨판돈에서 가장 큰 섬은 인구 1만5천여 명이 거주하는 돈콩(Don Khong)섬이다. 가장 번화하고 화려한 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배낭여행자들은 가장 남쪽의 돈뎃으로 향한다.
가느다란 쪽배를 타고 작은 섬 사이 골목을 누빈다./사진 변종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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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뎃은 히피들의 성지, 배낭여행자들의 집합소로 유명세를 얻고 있다. 2009년 후반에 겨우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그마저 아쉬워하며 촛불 밝히던 예전을 그리워한다. 그만큼 문명과 상관없이 살던 섬은 여전히 느리게 고여 있다. 어쩌면 도시를 살던 사람들은 이곳의 생경한 불편함을 즐기러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섬의 북쪽, 보트가 정박하는 근처에 숙소와 카페들이 몰려 있지만, 대부분은 섬을 떠날 때까지 숙소 안에서 뒹굴거나 섬을 잘 벗어나지 않는다. 산책하거나 책을 읽거나 간단하게 배를 채우는 일 아니면, 날마다 뜨는 태양과 날마다 지는 태양을 비교하는 일을 가장 큰 일로 여긴다. 메콩강 위로 지는 석양은 누가 보더라도 부정하지 못할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강 위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야자수의 실루엣, 하루를 마감하는 사람들의 피곤한 발걸음까지 경쾌하게 느껴진다.
◇ 사원보다 인기가 좋은 리피폭포
간혹 지루해지면 자전거를 빌려 돈콘(Don Khon)섬을 다녀오기도 한다. 두 섬은 프랑스식민지 시절에 건설된 158m의 콘크리트 다리로 연결돼 있다. 섬의 규모에 비해서 너무 큰 다리가 아닌가 싶지만, 섬을 옮겨 다니는 데 불편함이 없으니 고마운 다리이기도 하다.
섬 북쪽엔 왓 콘따이(Wat Khon Tai) 사원과 1894년에 건설된 철도를 달리던 증기기관차가 쓰러져가는 모습으로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여행자들의 관심은 언제나 강 쪽으로 흐른다. 리피폭포(Lipi Waterfall)는 여행자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강 위의 폭포, 강을 흐르던 물이 계단처럼 떨어지는 곳이다. 거대한 폭포가 아니라서 실망도 하지만 물살의 힘은 대단하다. 우기의 리피폭포는 무서우리만큼 거대한 소리를 낸다.
돈콧에 사람이 가장 몰리는 곳 리피폭포, 거대하지 않지만 물살의 힘이 대단하다./사진 변종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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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폭포를 경험했다면 이제 강의 돌고래를 만날 차례다. 자전거를 타고 낮은 숲들을 지나 곡식들이 익어가는 논밭을 건너 캄보디아 국경을 맞이하는 곳에 비밀스럽게 흐르는 강을 만난다. 같은 메콩강이지만 왠지 비밀스럽다. 단지, 돌고래가 산다는 이유로 그렇다.
◇ 메콩강에 사는 이와라디 돌고래
"우리 돌고래를 보러 갈까?" 그 제안을 받은 건 아주 오래전, 라오스의 북쪽 루앙프라방의 어느 일본 여행자에게서였다. 그때 처음 강에 돌고래가 산다는 것을 알았지만, 단지 돌고래를 보기 위해 남쪽 국경까지 가야 한다는 말에 손사래를 쳤었다.
숨소리보다 고요한 강 위에서 이라와디 돌고래를 기다렸다. 1970년대에는 천 마리가 넘게 서식했지만, 지금은 백여 마리에 불과해 쉽게 볼 수 없다고 했다. 포기할 쯤에 작은 파도처럼 매끄럽게 수면 위로 등을 보이는 돌고래를 목격했다. 태평양에서 힘차게 뛰어오르는 돌고래와 달리 좀 더 은밀하고 고요했다. 그 시간이 왜 그리 감동적이었는지 모르겠다. 기다리다 보니 간절해진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런 것 같다.
씨판돈에서는 해가 뜨고 지는 걸 관찰하는 일이 중요하다. 매일 뜨고 지는 해도 이곳에서는 달리 보인다./사진 변종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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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간혹 불편을 자처하며 자신의 행복을 깨닫기도 한다. 사천 개의 섬들이 모인 곳. 씨판돈. 그중에 두 개의 섬에 잠시 살았을 뿐인데 오래도록 기억에서 비밀스럽게 강물 소리를 낸다.
PS. 섬의 수칙
대부분 여행자는 소개한 두 곳의 섬 중 한곳에 머물며 섬을 오간다. 강이 주는 즐거움이 가장 큰 곳이므로 강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레포츠를 만끽할 수 있다. 좀 더 고급 숙소를 원한다면 돈콩에서 지내는 것이 낫지만, 씨판돈의 묘미는 이 두 섬을 오가면서 생기는 것이다. 숙소를 잡을 때는 강을 마주하는 방갈로를 추천한다. 모기나 벌레를 대비한 방충 시설이 잘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 이곳에서 캄보디아로 국경을 건널 수 있다. 섬을 빠져나와 남쪽 국경을 이용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 변종모는 광고대행사 아트디렉터였다가 오래 여행자로 살고 있다. 지금도 여행자이며 미래에도 여행자일 것이다.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은 떠나게 될 것이니 우리는 모두 여행자인 셈이므로. 배부르지 않아도 행복했던 날들을 기억한다. 길 위에서 나누었던 소박하고 따뜻한 마음들을 생각하며, 그날처럼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짝사랑도 병이다',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아무도 그립지 않다는 거짓말', ‘그래도 나는 당신이 달다',‘나는 걸었고 세상은 말했다' 등을 썼다.
[변종모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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