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카드사 등 대형 금융회사에 이어 핀테크업계도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시작한 제로페이 사업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금융위원회에 전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핀테크업계가 공식적으로 반대 입장을 낸 건 처음이다. 민간 금융회사의 사업 영역인 간편결제 시장에 정부가 수십억원의 혈세를 투입해 뛰어드는 것에 대한 찬반 논란은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핀테크업계는 지난달 31일 금융위원회 금융혁신기획단이 개최한 전자금융업자 간담회에서 금융위가 제로페이에 반대 입장을 내달라고 건의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핀테크업계 관계자는 "간편결제 서비스는 핀테크 회사를 비롯해 민간 금융회사들이 이미 하고 있는 영역인데 정부가 수십억원의 혈세를 투입하며 제로페이 사업을 진행하는 게 옳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며 "주무부처인 금융위가 나서서 반대 입장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고 말했다.
서울시와 중기부가 추진하는 제로페이에 대해 핀테크업계가 반대 의견을 냈다. /조선DB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제로페이는 서울시와 중소벤처기업부가 소상공인 결제 수수료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지난해 12월 시범서비스를 시작한 간편결제 서비스다. 간편결제 과정에서 발생하는 계좌이체 수수료를 은행이 받지 않기로 하면서 수수료 '제로(O)'가 가능해졌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서울시가 나서서 민간 은행의 팔을 비튼다는 논란이 나오기도 했다.
특히 중기부와 서울시가 수십억원의 예산을 제로페이 홍보에 쓰기로 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시는 제로페이 사업에 지난해 30억원을 썼고, 올해도 38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중기부도 60억원의 홍보 예산을 편성해놓은 상태다. 정식으로 편성된 예산 외에도 서울시는 300억원 규모의 특별교부금을 제로페이 실적에 따라 25개 자치구에 차등 지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우는 등 제로페이 사업에 적지 않은 혈세가 투입되고 있다. 서울시와 중기부가 두 팔 벗고 나섰지만 시범서비스 기간 성과는 신통치 않다.
핀테크업계에서는 민간 금융회사가 할 수 있는 서비스를 관(官)이 나서서 하는 구조 자체가 문제라고 보고 있다. 또 다른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핀테크 업체들이 제로페이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은 맞다"며 "시장에서 여러 간편결제 업체들간의 경쟁이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제로페이에 정부 지원이 몰리면서 다른 간편결제 서비스까지 제로페이 아래로 끌려들어가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카드업계에서도 제로페이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제로페이 같은 간편결제 서비스에 30만원 정도의 소액 여신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카드업계에서는 정부가 제로페이를 밀어주기 위해 카드사들의 고유한 업무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카드업계의 고위관계자는 "결제 서비스는 민간 금융회사의 고유 영역인데 정부 주도의 서비스가 이 영역을 넘어선 것도 모자라 여신전문금융회사들의 고유 업무인 신용공여 서비스까지 제로페이에 주려고 한다"며 "여신금융협회 등 카드업계 차원에서 정식으로 정부에 항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 중구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제로페이 결제 시연을 선보이고 있다. /뉴시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기존 대형 금융회사부터 신생 핀테크 업체들까지 제로페이에 한 목소리로 반대하고 있지만, 간편결제 서비스 주무부처라고 할 수 있는 금융위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은행들을 압박하는 인위적인 수수료 인하로는 한계가 있다"며 우회적으로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게 전부다.
금융권에서는 제로페이 사업을 주도하는 박원순 서울시장과 홍종학 중기부 장관이 모두 여권의 유력 정치인인 탓에 금융위로서도 대놓고 의견을 낼 수 없는 상황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제로페이에 관해서라면 유구무언"이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