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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8 (금)

트럼프의 ‘80분 신년연설’에 담긴 참, 거짓 그리고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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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경제·이민·외교·낙태권 등 점검

일자리 창출 대부분은 취임 전 실적

중국산 고가관세는 소비자 부담으로

국경도시 엘파소 범죄율은 아예 거짓

뉴욕주 ‘낙태권 강화’도 자극적 오도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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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일 저녁(현지시각) 의회에서 80분에 걸쳐 신년 국정연설을 했다. 이날 국정연설은 애초 지난달 29일로 예정돼 있었으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트럼프 대통령의 멕시코 국경장벽 건설 예산안을 거부하며 의회 초청을 연기하는 바람에 일주일이나 미뤄졌다가 성사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초당파적 협력과 화합”을 강조했지만 미국 언론들의 반응은 대체로 싸늘하다. <시엔엔>(CNN) 방송은 “트럼프의 화합 요구가 단지 자신만의 용어였다”고 혹평했다. 이런 가운데 <뉴욕 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면서 실시간 ‘팩트 체크’를 해 눈길을 끌었다. 그의 발언 중에서 경제, 이민정책, 외교정책, 낙태 문제 등 주요 주제들에 대해 참, 거짓, 과장, 오도 여부 등을 조목조목 따진 것이다.

■ 경제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 경제가 취임 초기에 견줘 2배 가까은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압도적으로 활황 국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참·거짓·오도가 뒤섞여 있다. 우선 미국 경제는 지난해 3분기에 연간성장률 기준으로 3.5%를 기록했는데, 라트비아와 폴란드의 경제성장률은 거의 그 두 배에 이르렀다고 신문은 전했다. 중국와 인도도 그와 비슷한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4분기의 미국 경제는 성장 속도가 더뎠으며, 올해 전망은 더 밝지 않다.

트럼프가 “최근 중국산 수입품에 2500억 달러의 관세를 부과해 수십억 달러의 국고 수입을 올렸다”는 주장은 사실에 부합했으나, 그 상당 부분은 미국내에서 유통되는 중국산 상품의 가격에 반영돼 소비자들이 지불하는 결과를 낳았다.

“(내 임기 동안) 제조업 분야에서 60만개의 신규 일자리를 비롯해 530만개의 고용을 창출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뉴욕 타임스>는 노동통계국의 보고서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갓 취임한 2017년 1월에 제조업 일자리 45만여개를 포함해 모두 490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창출됐다고 짚었다. 트럼프가 주장하는 고용 실적의 대부분이 실은 트럼프 정부의 실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민 정책

트럼프 대통령은 “텍사스주 국경도시인 엘파소가 폭력범죄율이 극도로 높아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꼽혔으나, 지금은 강력한 국경장벽 건설로 가장 안전한 도시들 중 하나가 됐다”고 주장했다. 이는 새빨간 거짓으로 판명됐다.

우선 엘파소가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힌 전례가 없을 뿐 아니라 범죄율도 꾸준한 감소세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는 국경장벽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신문은 짚었다. 엘파소에 국경장벽이 세워진 것은 2010년인데, 이미 그 이전에 엘파소는 비슷한 규모의 다른 20개 도시들 가운데 두 번째로 폭력범죄가 적은 도시였다.

역시 국경 도시인 캘리포니아주의 “샌디에이고가 불법 입국자들이 가장 많았으며, 강력한 국경장벽을 세운 덕분에 불법 월경자가 거의 완전히 사라졌다”는 발언은 진실을 오도하는 주장으로 꼽혔다. 샌디에이고 지역에 국경장벽이 처음 세워진 1994년부터 지난해까지 15년새 국경지대에서 체포된 불법입국자가 91%나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의회 조사국의 보고에 따르면, “국경장벽 하나만으로 불법입국자 수에 미치는 뚜렷한 영향을 파악할 수는 없다.”

<뉴욕 타임스>는 “대규모의 조직화한 (중미 국가 출신의) 카라반 행렬이 미국에 들어오려 행진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과장됐다고 봤다. 1월 말 현재 수천명의 카라반이 북상했지만, 이들 중 많은 이들은 멕시코의 신임 중도 좌파 정부의 비자 발급 완화와 일자리 제공 정책 덕분에 미국으로 월경하는 대신 멕시코에 잔류하는 쪽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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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 정책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이 ‘사회주의 정책’으로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를 참담한 빈곤과 절망으로 바꺼놓은 잔학성을 비난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진실을 오도한 것이다. 마두로 정부 집권기에 베네수엘라가 천문학적 인플레와 식료품 및 보건의료 서비스의 파탄 등 경제가 황폐화된 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 붕괴는 사회주의 정책의 실패 뿐 아니라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결여, 부패와 독재가 더 큰 요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트럼프는 또 “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지 않았다면 미국은 지금 북한과 전쟁 중일 것”이라고 주장했으나, 뉴욕 타임스는 “이는 근거가 없다”고 짚었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정부의 집권 말기에 북-미 간 전쟁이 촉발될 조짐은 없었으며, 되레 트럼프 정부 집권 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북한과 김정은 정권을 잇따라 자극하면서 긴장이 커졌다는 것. 당시 트럼프는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거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리틀 로켓맨”이라고 부르며 적대적 표현을 남발했다.

■낙태와 모성보호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주 의회 의원들이 태아가 생겨난 맨 처음 순간부터 모체의 자궁에서 찢겨나가는 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며 환호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도 교묘하게 사실을 비튼 것이다. 지난달 22일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민주당)은 임신부의 낙태권을 보장한 모성보건법에 서명했다. 이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최초로 여성이 자신의 모성 보건을생명이 위태롭거나 태아의 생존 가능성이 없을 경우 임신중절을 헌법적 권리로 인정한 ‘로 대 웨이드 사건’의 판결이 나온 지 46주년이 되는 날이기도 했다. 뉴욕주의 새 법안은 종전에 대법원이 임신 24주까지만 허용하던 낙태 시기를 “여성의 생명이 위태로울 경우에 한해” 그 이후까지 연장하는 게 뼈대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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