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8일 별세한 김복동 할머니 추모 열기
장례비 2억원 넘게 모여…할머니 뜻 이어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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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수요시위를 맞이하면 길원옥, 김복동 할머니께 세배하고 세뱃돈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할머니들께 세뱃돈 받아보신 분 있으세요?”
윤미향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의 질문에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왔다. 그 모습을 김복동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의자 위에 놓인 영정 속에서 고운 미소를 지은 채였다.
설 연휴 마지막 날인 6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가 어김없이 열렸다. 이날로 1373번째. 지난달 2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인권운동가 김복동 할머니가 별세한 뒤 두 번째로 열리는 시위다. 연휴를 맞아 자녀를 데리고 나온 부모들과 경기 가평군 소년소녀합창단, 안양여자고등학교 학생 등 150여명이 자리를 지켰다. 이날 길 할머니는 추운 날씨 탓에 나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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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의 ‘빈자리’가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병석에 눕기 전까지 거의 매주 수요시위에 나왔던 김 할머니는 설 연휴에도 늘 자리를 지켰다. ‘단짝’ 길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참가자들에게 세배를 받고 덕담을 건네곤 했다. “하늘 아래 엄마라고 불러줄 자식 하나 없다”던 김 할머니에게 참가자들은 가슴으로 낳은 아들·딸이자 손자·손녀들이었다. 할머니는 이들에게 1000원 세뱃돈을 잊지 않고 손에 쥐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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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참가자들은 단상에 올라 저마다 김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토해냈다. 기지촌 성매매 피해 여성 연대 단체인 햇살사회복지회 소속 김숙자씨는 “김복동 할머니가 저희들한테 용기를 잃지 말라고 하셨었다. 그 뒤로 나도 용기가 생겼다. 너무 존경하고 잊지 못할 것”이라며 울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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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듣고 처음 수요시위에 나왔다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경기 부천시에서 누나, 사촌들과 온 배원준(14)군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번에는 꼭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일에는 와보기 힘든데 연휴라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10대 남매를 데리고 나온 주부 김아무개(42)씨도 “아이들에게 수요시위를 보여주고 싶었다”며 “당당히 말하던 김 할머니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고 말했다. 육신이 떠나간 자리에는 할머니의 정신이 오롯이 남았다. 경과보고를 위해 단상에 오른 윤 이사장은 ‘위안부’ 피해 증언과 나눔에 앞장서 온 김 할머니의 삶을 되짚으며 “할머니는 자신의 아픔이 크고 깊을수록 다른 사람의 아픔을 돌아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줬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비록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내가 김복동이다’고 외치는 수많은 나비들로 되살아나 일본 정부를 변화시키고도 남을 것”이라며 공식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는 일본 정부와 “끝까지 싸워달라”던 김 할머니의 유지를 이어가자고 호소했다. “내가 김복동이다”, “나의 목소리가 김복동의 목소리다”, “김복동은 우리의 삶으로 부활했다”는 목소리가 이날 시위를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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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재산을 재일 조선인 학생들 지원 등을 위해 내놓은 김 할머니의 통장에는 160만원이 남아 있었다. 장례비용은 1억원이 넘었다. 어떻게 장례를 치를 수 있었을까. 이날 윤 이사장은 “걱정을 많이 했는데 수많은 분들이 성금을 보내와 2억이 넘게 모였다”며 “남은 장례비 가운데 2200만원은 설 연휴를 앞두고 5개 분야 11개 단체에 각각 200만원씩 보냈다”고 밝혔다. 미투시민행동, 강정사람들, 삼성일반노조,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등이 김복동 할머니의 ‘설날 선물’을 받았다. 이어 3월 중에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의 대학생 자녀들 10명을 장학생으로 선정해 할머니 별세 뒤 첫 생일인 4월17일 각각 200만원씩 모두 2000만원의 ‘김복동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이유진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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