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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내 日 사죄 못받고”…‘유엔서 위안부 증언’ 김복동 할머니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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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병 끝에 93세로 삶 마감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23명

헤럴드경제

29일 서울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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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이자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인 김복동 할머니가 건강 악화로 별세했다.

29일 여성가족부와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지난 28일 오후 10시41분경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93세. 이날 오전 이모 할머니가 별세한 데 이어 김 할머니가 한 많은 생을 마감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총 23명으로 줄었다.

정의연에 따르면 김 할머니는 지난 1926년 경남 양산에서 태어나 만 14세인 1940년 위안부로 끌려가 중국과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에서 피해를 당했다. 김 할머니는 해방 이후 1947년 귀향했다.

일본 위안부 피해를 소재로 2017년 개봉한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모델인 김 할머니는 지난 1992년 위안부 피해를 공개하며 본격적인 여성 인권 운동의 길을 걸었다.

김 할머니는 1992년 8월 제1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아시아 연대회의에서 위안부 피해를 증언했다. 1993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세계인권대회에 참석하기도 했다.

이후 2000년에는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원고로 참여해 피해 사실을 증언했다.

이후에도 김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 회복을 위한 활동을 꾸준히 이어갔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전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나비기금 설립(2012년) ▷전쟁·무력분쟁지역 아이들 장학금 5000만원 나비기금에 기부(2015년) ▷무력분쟁지역 성폭력 피해자 지원 및 활동을 위한 ‘김복동 평화상’ 제정(2017년)이 대표적이다.

김복동 할머니는 지난해 9월엔 암 투병 중에도 화해치유재단 해산을 요구하면서 외교부 앞에 직접 나왔다. 당시 김 할머니는 “어떻게 일가친척도 아니고 팔촌도 아닌 사람들이 얼굴도 모르고, 우리 보러 오지도 않은 사람들이 할머니들 팔아서 그 돈으로 자기들 월급 받는 것이 참 우습다”며 “전 세계 돌아다녀도 우리 같은 나라는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우리가 위로금을 받으려고 이 때까지 싸웠느냐. 위로금을 1000억원을 준다 해도 우리는 받을 수 없다”며 “우리가 돌려보내라고 했으면 적당히 돌려보내야 할 텐데 정부는 해결해준다고 해놓고 아직도 해주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1년여 동안 암 투병을 해오던 김 할머니는 3주 전부터 병원에 재입원해 마지막 치료를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의연 관계자는 “김 할머니는 국제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며 “전시 성폭력 피해의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으로 국제여론을 이끌어냈다”고 밝혔다.

빈소는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장례식장 특 1호실에 마련됐으며, 2월 1일 발인이다. 장례식은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으로 진행된다.

박세환 기자/gre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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