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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충무로에서] 美中 기술전쟁 사이에 낀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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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올해의 단어로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선정했다. 고대 아테네의 역사가이자 장군인 투키디데스가 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나오는 이야기다. 패권을 놓고 넘버1과 넘버2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는 뜻이다. 그레이엄 앨리슨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의 책 '예정된 전쟁'에서 오늘날 미국과 중국의 대결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에 빗대면서 새로이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미·중 충돌 예견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다. 미국과 중국의 격돌은 이미 시작됐기 때문이다. 다가올 전쟁의 양상은 상대의 병력과 자산을 누가 더 많이 살상하고 파괴하는가를 겨루는 20세기 전쟁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인공지능(AI)을 장착한 드론 군단이 상대의 무기를 파괴하고, 사이버 공격을 통해 지휘통제 체계를 무력화하고, 우주 공간에서 위치 추적 위성을 파괴해 전투기와 군함의 발을 묶는 모습을 예상할 수 있다. 인명 손실 하나 없이 순식간에 승패가 갈리는 그런 전쟁이다.

이를 감지한 중국은 차세대 AI 발전 계획을 발표하며 대규모 AI 투자를 시작했다. 중국의 AI 관련 특허 수가 미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골드만삭스, 가트너, 맥킨지 등은 수년 내에 중국의 AI 기술이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이 지난 3일 미국에 앞서 인류 최초로 달 이면 탐사를 성사시킨 것도 미래 우주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중국 무인탐사 로봇이 달 뒷면에서 활동하는 영상이 지구로 송신됐다.

긴장한 미국은 중국의 거대 통신기업 화웨이 징계와 중국산 제품 조달 중단, 대중 관세 부과 등을 통해 견제에 나섰다.

총탄과 미사일을 주고받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 바로 전쟁이 아니고 무엇인가. 패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안보기술 전쟁이 이미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중 사이에 낀 한국으로서는 전시(戰時)외교를 가동해야 하는 엄중한 시기다. 그런데 이 치열하고 긴장되는 상황을 우리 정부가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지조차 의문이다.

동맹 미국은 방위비 분담금 협상으로 해를 넘겨가면서까지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관시'를 중시하는 중국에 대해서는 주중대사를 1년3개월 만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불러들여 신의를 떨어뜨렸다. 주중대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베이징을 방문하던 날 임명장을 받으러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이웃 일본과는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놓고 불거진 마찰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부가 판결의 후속 조치와 대책 마련에 서둘렀어야 했다.

각종 경제지표가 하나같이 고꾸라져도 '조금만 참고 기다려 달라'는 청와대의 간곡한 부탁에 국민은 다시금 허리띠를 졸라맨다. 하지만 외국을 상대로 하는 외교에서는 그런 읍소가 절대 통할 리 없다. 외교적 위기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

[이진명 외교안보통일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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