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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1919 한겨레] ‘붉은 로자’ 옛 동지들에게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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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주의 전쟁 반대해 사민당 탈당

군부 결탁한 사민당 우파에게 처형

전세계 민족 연대 강조한 국제주의자



한겨레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독일의 사회주의 혁명단체 스파르타쿠스단을 주도한 로자 룩셈부르크(48)와 그의 혁명동지 카를 리프크네히트(48)가 15일 잔혹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이 타전되었다. 로자 룩셈부르크 등은 한때 동지였던 자국 내 사회민주당 우파 집권세력에 의해 살해되었는데 그 주검은 백림(베를린)의 운하에 유기되었다고 한다.

1871년 파란(폴란드)에서 출생한 유대계인 로자는 서서(스위스) 취리히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수학하고 파란의 산업 발전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자 출신의 혁명가이다. 1893년에는 동학이자 평생의 정인이었던 레오 요기헤스 등과 함께 <스프라바 로보트니차>(노동 대의)라는 신문을 창간해 필명으로 기사를 쓴 기자이기도 하다. 유럽의 노동운동 지도자에 의해 조직된 국제단체인 제2인터내셔널의 3차 대회가 그해 8월 취리히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의 명연설로 유럽의 사회주의자들에게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이른바 ‘붉은 로자’의 등장이었다.

1914년 세계대전 발발 후 독일사민당이 독일 정부의 참전을 지지하자, 이에 반대하며 탈당한 로자는 카를 리프크네히트 등 동지들과 함께 로마시대에 노예 검투사의 반란을 일으켰던 스파르타쿠스에서 이름을 딴 혁명단체 스파르타쿠스단을 결성하였다. 작년 말부터 다른 사회주의 세력들을 규합하여 올해 1월1일 독일공산당을 창당하였으나 군부와 결탁한 독일사민당 우파 세력들에 의해 체포되기에 이른다. 이송 도중 군인의 개머리판에 이마를 맞고 확인사살을 당한 로자의 시신은 백림 운하에 버려졌다고 한다. 수많은 적에 둘러싸여 있던 붉은 로자는 결국 피투성이 로자가 되었다.

다섯살 때 앓은 병으로 평생 절름발이였던 로자는 제국주의 전쟁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을 통렬하게 비판한 원칙주의자였다. 전쟁의 광기가 모든 것을 삼켜버린 지난 대전시기에 반전주의자로 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죽을 때까지 전세계 모든 피지배계급의 연대와 협력을 지향하는 국제주의자의 삶을 살았다.

사회주의는 독일의 마극사(마르크스) 선생이 주조한 혁명이론으로 생산수단을 공유하여 빈부 격차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사상이다. 레닌이라는 혁명가의 주도로 정사년(1917) 러시아에서 일어난 인민봉기가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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