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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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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주의 공포가 불러온 '포퓰리스트 보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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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우리 대 그들'…아웃사이더 지도자들이 새로 그린 대결 구도

(서울=연합뉴스) 이승우 기자 = 워싱턴의 이단아이자 '언더도그'였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지구촌을 휩쓸었던 세계주의(globalism)의 퇴조라는 현상에서 보면 그렇다는 얘기다.

국제적 명성을 자랑하는 정치 컨설턴트이자 칼럼니스트인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 그룹 회장이 쓴 신간 '우리 대 그들'(US vs THEM)에 따르면, 세계화 열풍은 자본 이동과 신중산층 부상을 이끌었지만, 그 부작용으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 극심한 '공포심'을 키웠다. 바로 국가와 정부가 우리 개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심이다.

특히 몇 년 전부터 미국, 유럽을 위시한 많은 나라에서 실직, 이방인, 국가와 민족 정체성의 소멸, 공공장소에서 일어나는 테러와 폭력에 대한 공포심이 날로 커졌다. 유럽은 이슬람 이민자들이, 미국의 경우 남미에서 넘어오는 불법 이주자들이 두려움을 증폭했다.

공포는 언제나 극단을 낳는다. 좌향좌, 우향우가 급격히 일어나거나 어쩔 수 없이 중도를 선택하더라도 새롭게 등장한 중도 정치인을 찾는다.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트럼프의 당선, 2017년 신인 중도 정치인 마크롱의 프랑스 대통령 당선과 독일 극우 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 돌풍, 지난해 이탈리아 우파 정당과 분리주의 정당의 약진, 1930년대 이후 최초로 탄생한 멕시코 좌파 대통령, 군 출신 우파 인사의 브라질 대통령 당선 등은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들 신진 아웃사이더 정치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포퓰리스트적 특성이 있고 "새로운 경계선을 그리는 재주"가 있다.

즉 이들은 국민이 자신의 권리와 안전을 빼앗아갈 것 같은 자들과 맞서 싸우는 정치 구도, 이른바 '우리 대 그들'의 구도를 선명하게 제시할 줄 아는 분열의 명수들이다.

예컨대 트럼프의 선거 참모였던 스티븐 배넌은 대선 승리 이후 "세계주의자들은 미국 노동자층의 배를 갈라서 아시아 중산층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우리 대 그들'의 대립은 좌우 양쪽 진영에서 모두 활용될 전망이다. 민주당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같은 좌파 진영 반(反)세계주의자들은 지배층인 대기업과 엘리트를 겨냥해 '그들'이란 용어를 사용한다. 반면 트럼프 같은 우파 진영 안티-글로벌리스트들은 이민자 등에 노골적으로 보호망을 제공해 국민을 기만할 가능성이 있는 정부를 '그들'이라고 칭한다.

연합뉴스

우리 대 그들



세계주의가 만드는 공포는 우선 경제적 공포가 있다. 저자는 "사람들은 생계를 걱정할 상황이 오면 문제의 원흉으로 지목할 사람들을 찾아 공격한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는 정체성에 대한 공포다. 세계화는 국가 간에 공산품과 금융 상품만 이동하는 게 아니라 '사람'까지 한꺼번에 이동시킨다. 이 때문에 민족 정체성과 종교 문제가 발생한다. 2015~2016년 유럽연합(EU)에선 이민자 250만여 명이 망명을 신청했고, 이 중 무려 110만 명이 독일로 들어갔다. 2017년 독일 총선에서 극우 성향 '독일을 위한 대안'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원내에 진입한 계기다.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에서도 반이슬람 성향 우파 정치세력이 대거 약진한다.

세계주의는 또 '연결'을 통해 공포를 유발한다. 정보의 빠른 연결과 유통은 경제 거래와 교육·협력 기회를 제공하지만, 분노를 유발하고 시위를 조직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실시간 중계되는 테러와 강력 사건은 공포를 부추긴다. 특히 파편화가 가능한 인터넷 특성은 '필터 버블'을 만들어냈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만 교류함으로써 위안을 얻지만, 편향성이 강화되는 현상이다. 소셜미디어에서 우리는 점점 뜻 맞는 사람만 팔로우하고 원하는 뉴스만 읽으려 한다.

저자는 이러한 '우리 대 그들'의 대결이 점점 격렬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특히 각국 정부는 대중의 분노를 막아줄 보호막을 만들고자 경제적 보호주의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의 중국 무역 때리기는 우연처럼 발생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저자는 또 중국, 러시아와 같은 사회주의 또는 전체주의 독재 국가는 정보 유통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들 정부는 인터넷 차단은 물론 국민의 신원 정보까지 통제함으로써 '빅 브러더'와 같은 통제국가를 추구할 것으로 저자는 예상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장벽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사회 계약을 재작성할 것인가?"라고 말했다.

김고명 옮김. 272쪽. 1만7천원.

lesl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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