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의 파시즘] 김선희 교수 인터뷰
◆ 여성혐오 반발로 등장한 ‘혐오 미러링’
워마드 분석 전문가인 김선희 이화여대 교수(철학)는 지난 11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워마드가 ‘놀이’라고 표현해 온 커뮤니티의 전략적 룰이 지난해 6~7월부터 깨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과거 ‘혐오미러링’은 나름의 규칙이 있었다”며 “여성들에 대해서는 비난하지 않는다든가 성소수자는 예외였지만 약자에 대한 혐오는 안에서 자정하려 하고 자제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워마드의 미러링 전략은 여성혐오에 대한 반발 차원에서 나왔다. 예컨대 여성혐오 표현인 ‘김치녀’의 대응차원에서 ‘한남충’이란 표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혐오 표현이 존재하지 않는 것에 혐오를 하면 ‘분탕’이라며 내부에서 자정하는 현상도 있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스스로를 놀이터로 규정하는 워마드의 놀이 전략은 현실에 영향을 준다기보다 규칙 안에서 이뤄졌고 이에 대한 도덕적인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특징이 있었다”며 “이는 혐오가 갖는 비윤리적인 비난을 벗어나는 방식이었고 그 안에는 저항의식이 있었다”고 분석했다.
◆ ‘자기파괴’로 어긋난 미러링 전략
반면 워마드의 여성혐오에 대한 저항의식은 점차 사라져 갔다는 지적이다. 여성을 혐오하는 기득권 세력에 향해야 할 혐오는 난민과 장애인 등 소수자로 향했다. 지난해 7월 태아 시신을 훼손한 사진이 워마드에 올라왔고 “남자 장애인을 사살해야 한다” 등의 소수자를 비하하는 게시물도 잇따라 올라와 물의를 빚었다. 김 교수는 “혐오는 약자를 배척하기 위한 사회적 무기가 될 수 있다”며 “워마드가 (혐오)미러링을 강자에게 하는 게 아니라 (또다른) 약자에게 행함으로써 결국 약자를 공격하게 되는 역설적이고 모순적인 상황에 당면했다”고 꼬집었다.
워마드 내부에서 여성들끼리 계급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워마드가 ‘여성 우월’을 표방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진짜페미’, ‘가짜페미’를 나누는 등 분리와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문화적, 정치적, 육체적 억압에서 벗어나자는 ‘탈코르셋 운동’은 처음 워마드 안에서 긍정적이었다”며 “하지만 점점 변조돼 탈코르셋을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한다는 또 다른 규범을 강요하는 여성 간 갈등이 발생했다”고 했다. 탈코르셋은 자유를 중시하는 해방의 의미인데도 역설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했고 결국 여성 내 계급 분리까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런 현상을 ‘자기파괴’로 정의하며 “여성들도 처음에는 (워마드를) 지지했으나 이런 부분 때문에 이탈한 경우가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김선희 이화여대 교수(철학). 본인 제공. |
◆ “혐오의 언어를 정치적 언어로 바꿔야”
김 교수는 페미니즘 운동이 관심을 받기 시작한 시점에서 이제는 ‘혐오의 언어’가 아닌 ‘정치적 언어’의 페미니즘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실감각을 갖추고 성 평등 관련 제도를 개선할 수 있도록 생산적 논쟁이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워마드가 비난받고 있지만 온라인상에서 사회 전반의 이슈를 제기해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운동, 혜화역 시위 등 여성들을 결집할 수 있는 역할을 한 부분이 있다”며 “이제 미러링에서 나타난 혐오의 언어대신 법과 제도 개선을 위한 정치적 언어로 나아가 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워마드 규제’ 논란과 관련, “혐오표현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차별”이라며 “제도와 인식 개선을 통해 사회의 자정능력을 키워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안승진 기자 prod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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