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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국경장벽에 갇힌 美 정치… 최장 셧다운 기록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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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벼랑끝 싸움하는 까닭은

국경 장벽 문제를 둘러싼 여야 충돌로 시작된 미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 정지)이 13일(현지 시각) 23일 차로 접어들어 역대 최장 기록을 갈아치웠다. 지금껏 1995년 말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여야가 복지 예산을 놓고 맞붙어 21일 동안 연방정부를 멈췄던 것이 최장 기록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트위터에 '민주당은 워싱턴으로 돌아와 셧다운을 끝내고 남쪽 국경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인도주의적 위기를 끝내기 위해 일해야 한다'며 '나는 백악관에서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은 돌아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게 트럼프식 협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과 타협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할 경우 소송을 통해 이를 막을 것"이라고 했다.

국경 장벽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이길래 미국의 여야가 3주가 넘도록 연방정부를 멈춰 세우고 벼랑 끝 싸움을 벌일까. 단순히 장벽 건설이 아니라 미국의 정체성 문제와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미 보수층은 영국에서 건너온 청교도들이 세우고 유럽계 백인들이 일으킨 국가 정체성이 최근 밀려 들어오는 이민자들 때문에 위협받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라고 하지만 이민자의 비율이 최근처럼 높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1850년에도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미국에 거주하는 비율은 9.7%밖에 안 됐다. 이 비율은 1910년 14.7%로 최고치를 찍었으나 이후 이민의 문을 틀어막아 1960년엔 이 비율이 5.4%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다 다시 서서히 늘어 2017년 13.7%를 기록하며 10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멕시코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캘리포니아·텍사스·뉴멕시코·네바다·하와이주(州)는 백인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절반이 안 된다. 이 추세라면 미국 전체적으로 2020년이면 18세 이하 청소년에선 백인이 과반 지위를 상실하고, 2045년이면 전체 인구에서도 백인 비중이 절반 이하로 내려간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불법 이민뿐 아니라 외국계 이민의 주요 통로가 되고 있는 '전문직 단기 취업(H1B)' 비자 제도도 손질하겠다고 했다. 합법 이민도 손을 보겠다는 것이다.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는 과거 인터뷰에서 "미국을 집어삼키는 문제는 합법 이민"이라며 이민의 문 자체를 틀어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보수 색채가 짙은 공화당은 '전통적 미국'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장벽으로 상징되는 이민 제한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당원의 75%가 장벽 건설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반면 이민자와 유색 인종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민주당은 이민 확대에 적극적이다. 여론조사 회사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아시아계의 민주당 지지율은 65%로 공화당(27%)을 압도하고 히스패닉도 민주당(63%) 지지율이 공화당(28%)의 두 배가 넘는다.

이민과 난민 문제는 미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 정치 지형도 뒤흔들고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정정 불안으로 밀려드는 난민과 이민자들로 2016년 현재 EU의 무슬림 비율은 4.9% 정도지만 2050년엔 14%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2050년엔 이 비율이 스웨덴은 30.6%, 독일 19.7%, 프랑스 18.6%, 영국은 17.2%까지 높아져 각 나라의 정체성에 변화를 줄 수 있을 수준이 된다. 급증하는 난민에 대한 반감은 유럽에서 극우 정치 세력들이 급부상하는 토양이 되고 있다. 과거 의회 진출조차 어려움을 겪었던 극우 정당들이 이탈리아에서는 연립 정부를 구성할 만큼 위세를 떨치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이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고 있고 독일·오스트리아에서도 극우 정당들 지지도가 치솟는 중이다.





[워싱턴=조의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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