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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7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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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의 해부]②논제도 논거도 똑같고 비문까지 '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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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재사용'하며 어색한 표현까지 고스란히

해외저널 논문 전무…미국 명문대 박사로는 이례적

연합뉴스

논거로 제시한 구절들 일치
(서울=연합뉴스) 임화섭 기자 = 1975년에 발표된 D. W. Palmer의 「"To Die Is Gain" (Philippians I 21)」논문(왼쪽과 가운데)과 2006년에 발표된 배철현의 「죽는 것도 이득이다 -- 바울의 죽음관」논문(오른쪽). 분량이 22쪽인 배철현 논문 중 4쪽 연속으로 인용 구절이 겹치는 부분이 이어진다. 2019.1.13. [페이스북 커뮤니티 '신학서적 표절반대', 이성하 원주 가현침례교회 목사 제공]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임화섭 오예진 김예나 기자 = 연구부정행위 의혹이 제기된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전(前) 교수의 저작 중에는 단행본뿐만 아니라 논문도 포함되어 있다.

13일 서울대 인문대 홈페이지의 배 전 교수 소개(아직도 현직으로 표시되어 있음)에는 학술지 논문 27편의 목록이 실려 있다.

이 중 상당수는 페이스북 커뮤니티 '신학서적 표절반대'의 운영자인 이성하 원주 가현침례교회 목사와 저작권 에이전시 '알맹2'의 맹호성 이사 등에 의해 '표절' 및 '재탕' 의혹이 제기된 상태다.

의혹에 대해 공식적 결론이 내려질지는 미지수다. 서울대가 조사를 하지 않은 채 배 전 교수의 사표를 수리해 버렸기 때문이다. '면죄부 논란'이 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만 사표 수리나 징계 여부와 무관하게, 연구윤리 확립 차원에서 서울대가 진상조사를 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배 전 교수의 학술지 논문 목록에는 미국 등 해외에서 발행되는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이 단 하나도 없다. 미국 명문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대 교수로 임용된 학자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배 교수의 학술지 게재 논문 중 4편은 영문으로 작성됐으나, 『언어학』(사단법인 한국언어학회), 『Journal of Universal Language』(세종대학교 언어연구소), 『The Mediterranean Review』(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SCRIPTA』(사단법인 훈민정음학회) 등 국내 학술지에만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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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논문 내용을 가져온 새 논문
(서울=연합뉴스) 배철현 전 서울대 교수는 2006년 6월 학술지 『서양고대사연구』에 「오리엔탈리즘과 오리엔탈 르네상스」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 논문은 배 교수가 2001년 9월 사회과학원 학술지 『계간 사상』을 통해 펴낸 논문 「'유럽'의 모체를 찾아: <오리엔탈리즘> 다시 읽기」와 대부분의 내용이 겹친다. 2006년 논문은 전체 28쪽 중 1∼22쪽과 26∼27쪽 등 총 24쪽 분량을 2001년 논문에서 그대로 옮겨 실었다. 사진은 두 논문의 1∼2쪽을 캡쳐한 부분이다(노란색 줄 친 부분). 두 논문은 첫 문장부터 동일하다. 2019.1.13. [페이스북 페이지 '신학서적 표절반대' 제공]



◇ 논제·인용·분석까지 겹치는 논문

배 전 교수는 2006년에 「죽는 것도 이득이다 -- 바울의 죽음관」이라는 논문을 철학연구회가 발행하는 『철학연구』에 실었다.

이 논문에는 신약성경 빌립보서에 나오는 사도 바울의 죽음에 관한 견해를 그리스와 로마 문헌에 나타난 죽음에 관한 견해와 비교해 조명하는 부분이 포함되어 있다.

배 전 교수는 22쪽 분량의 논문 중 4쪽에 걸쳐 그리스 고대 극작가 아이스퀼로스(논문의 표기는 '아에쉴루스')의 『결박된 프로메테우스』, 에우리피데스(논문의 표기는 '유리피데스')의 『메데아』와 『헤라클레스』, 바퀼리데스의 『승리 찬양시』, 신약성경의 『요한계시록』,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키케로의 『카틸리나 탄핵 연설』,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등을 인용했다.

그런데 인용 구절들과 설명이 1975년 『Novum Testamentum』에 발표된 D. W. 팔머(Palmer)의 영문 논문 「"To Die Is Gain" (Philippians I 21)」에 나오는 것과 똑같다. 순서까지 대부분 일치한다.

팔머의 논문에 있던 그리스어 원어가 배 전 교수의 논문에서는 생략됐고, 영어 번역 대신 한국어 번역이 들어갔으며, 팔머 논문에 인용된 구절이나 설명 중 일부가 배 전 교수 논문에서 빠진 점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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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난나는 지하세계에 왜 내려갔나?」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페이스북 그룹 '신학서적 표절반대' 의 이성하 목사는 배철현 교수의 논문 「이난나는 지하세계에 왜 내려갔나?」의 표절 의혹도 제기했다. 이 목사는 2004년 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의 『종교와 문화』 10집에 실린 이 논문이 톨키드 야콥슨(Thorkild Jacobsen)의 1976년 책 『어둠의 보물들 (The Treasures of Darkness: A History of Mesopotamian Religion)』을 표절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각각 표절 의심 대목을 표시한 것으로, 파란색으로 표시된 부분은 야콥슨의 책 본문을 번역해 논문의 각주로 넣은 것이라고 이 목사는 주장했다. 야콥슨 논문은 배 교수 논문의 첫 문단 각주 1번에 거론돼 있기는 하나, 인용 표시가 없는 곳에서도 일치되는 내용이 무더기로 나왔다는 것이다. 2019.1.13. [페이스북 커뮤니티 '신학서적 표절반대' 제공]



배 전 교수는 팔머의 영문 논문을 빌립보서 1:21-24에 나타난 바울의 견해에 관한 각주에서 거론했으나, 정작 고대 그리스·로마 문헌 인용 부분에서는 논문 내용을 4쪽이나 연속해서 가져 오고도 거론을 하지 않았다.

팔머의 1975년 논문 역시 빌립보서에 나오는 바울의 죽음관을 다룬 것일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헌에 나타난 죽음관과 이를 비교하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었다.

즉 배 전 교수의 2006년 논문과 팔머의 1975년 논문은 주요 논제뿐만 아니라 주요 논거로 쓰인 인용이나 분석 부분까지도 여러 페이지에 걸쳐 일치한다는 것이다.

◇ 똑같은 내용 '재사용 의혹'도

이미 발표한 논문 중 상당 부분을 나중 논문에 '재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의혹도 있다. 꽤 많은 분량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점에서, 과연 새로운 연구로 봐야 하는지 의심스러운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배철현 전 교수가 2002년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발간하는 『기독교 사상』에 게재한 「이마고 데이?」라는 글 중 상당히 많은 부분이 서울대학교 종교학연구회가 2003년 발간한 『종교학연구』 22집에 게재된 「인간은 하나님이다 - 창세기 1.26절의 Imago Dei에 대한 재해석」에 그대로 옮겨져 있다. 후자는 서울대 인문대 홈페이지의 논문 목록에는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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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논문과 새 논문에 똑같은 비문
(서울=연합뉴스) 오예진 기자 = 왼쪽은 배철현 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의 2001년 논문 「'유럽'의 모체를 찾아: <오리엔탈리즘> 다시 읽기」, 오른쪽은 2006년 논문 '오리엔탈리즘과 오리엔탈 르네상스'의 10∼11쪽을 편집해 이어 붙인 사진이다. 배 전 교수는 2001년 논문을 2006년 논문에 그대로 베껴 쓰면서 비문이나 오타까지도 그대로 옮겨 온 것으로 보인다. 빨간색 밑줄 부분은 "'옥시덴스' 즉 '해가 지는 곳'" 등으로 써야 자연스럽지만 배 교수는 "'옥시덴스'는 '해가 지는 곳," 이라고 써 부자연스럽다. 파란색 밑줄 부분은 "학문을 태동시켰다"가 올바른 표현이겠으나, 배 전 교수는 "학문의 태동시켰다"라는 비문을 썼으며 2006년 논문에서도 비문을 그대로 썼다. 2019.1.13.



다만 학술 연구논문의 내용을 에세이로, 또는 거꾸로 개작하는 것은 독자층이 다르므로, 연구 실적으로 중복 제출하지 않고 논문 또는 글에서 사실관계를 제대로 밝힌다면 문제삼기 어려울 수도 있다.

배 전 교수의 논문이나 기고문 중 내용이 겹치는 사례는 꽤 많았으며, 옛 글에 포함된 어색한 표현이나 비문이 새 글에 그대로 실린 경우도 종종 있었다. 내용을 제대로 검토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베꼈음을 시사하는 정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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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논문의 어색한 표현이 새 논문에 그대로
(서울=연합뉴스) 오예진 기자 = 배철현 전 서울대 교수가 2006년 6월 학술지 『서양고대사연구』에 게재한 논문 「오리엔탈리즘과 오리엔탈 르네상스」는 배 교수가 2001년 9월 사회과학원 학술지 '계간 사상'을 통해 펴낸 논문 「'유럽'의 모체를 찾아: <오리엔탈리즘> 다시 읽기」(왼쪽 및 가운데 사진)을 거의 그대로 베꼈다. 배 교수는 특히 2001년 논문을 옮기면서 어색한 표현까지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노란색 줄로 표시된 부분은 "사이드는 그람시에(게)서" 또는 "사이드는 그람시로부터"라고 쓰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배 교수는 둘 다 "사이드는 그람시에게"라고 표기했다. 2019.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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