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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1 (금)

[집단소송⑤] "이질적 제도는 사장돼…광역소송이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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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용 판사 "피해자 규모 파악돼 기업도 합의 수월"

"입증책임 완화 동시에 법관재량 폭넓게 인정해야"

뉴스1

장지용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판사)이 지난 2일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사법정책연구원에서 뉴스1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19.1.2/뉴스1 © News1 황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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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윤지원 기자 = 사법정책연구원은 지난해 국제컨퍼런스를 통해 미국의 복잡소송 유형인 광역소송을 국내에 소개했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현재 미국 민사소송의 40%가 광역소송으로 진행될 만큼 활용도가 높다.

광역소송은 쟁점이 공통된 다수의 소송이 미국 전국 법원에 산발적으로 제기될 때 특정 연방지방법원의 판사에게 사건을 모두 이송해 통합적으로 변론 전 절차를 진행하게 하는 제도다.

미 역사상 최대 재난사고라 불리는 딥 워터 호라이즌 시추선 폭발 사건도 광역소송으로 진행됐다. 미 전역 수십개 법원에 13만500여명의 원고가 최소 3000건의 소송을 제기했을 때 이를 루이지애나주 연방법원의 한 판사에 이송해 한꺼번에 처리하게 했다. 한 판사가 사건을 판단하기 때문에 대규모 복잡 소송의 변론 전 절차가 신속하고 상호 모순없이 해결됐고 대부분의 소송이 화해로 종결됐다.

사법정책연구원에서 관련 연구를 진행한 장지용 연구위원(서울중앙지법 판사)을 지난 2일 만났다. 그는 "효력이 강한 집단소송을 한번에 도입하는 게 어렵다면 그 중간단계에서 광역소송 도입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 복잡소송은 어떻게 진행되나.
▶국내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미국의 복잡소송은 대표자소송이다. 대표자소송은 효력이 강력하다. 대표자가 수행한 소송 결과가 소를 제기 안하는 피해자 전체에 미친다. 하지만 최근에는 많이 이용하지 않는 추세다.

-왜 그런가.
▶누군가가 대표자로 나서서 소송을 수행했는데 패소한 경우 문제가 생겼다. 다른 피해자들은 '나한테 왜 영향을 미치지. 소송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라고 불만을 가졌다. 그러다보니 누가 대표성을 갖는지를 판단하는 부분에서부터 다툼이 많았고 법원도 대표자소송을 허가할 때 매우 신중해졌다. 과장을 보태자면 미국에선 대표자소송 시대는 지났고 광역소송이 활용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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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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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역소송은 변론 전 절차에 그치는데 왜 활용도가 높은가.
▶광역소송은 기본적으로 화해로 종결되는 것을 염두에 둔 제도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대부분 화해로 소가 종결되기 때문에 배상액을 정하는 본안 심리를 별도로 하기위해 다른 법원으로 사건이 재환송되는 경우가 드물다. 굳이 까다로운 요건의 대표자소송을 안하더라도 광역소송을 통해서도 피해자들은 충분히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개별적 소송을 제기했을 때보다 광역소송에서 화해가 쉬운 이유는 무엇인가.
▶기업이 늘 두려워하는 것은 한명의 원고랑 화해하면 향후 이것을 기준으로 얼마나 많은 피해자들이 같은 적용을 받게 되는지 예측이 어렵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뜻 합의에 이르기가 힘들다. 광역소송의 경우에는 피해자들을 모두 모아 소송을 진행하기 때문에 배상 총액이 어느정도 예상되니 기업 입장에서도 합의해주기가 쉽다.

-그외 원고 입장에서는 어떤 이득이 있을까.
▶원고 수가 늘면 변호사도 여럿이 붙어 협력한다. 개별 원고들이 찾기 어려운 증거 현출도 쉬워진다. 사건을 전담 받은 재판부도 몇 년에 걸쳐 그 사건만 맡게 되니 사건을 판단하는 전문성이 생기는 등 여러 장점이 있다.

-광역소송에서 화해가 되지 않아 배상 결정을 위해 다른 법원에 재환송되면 어떤가.
▶광역소송도 대표 원고를 뽑아 시범 소송을 한다. 이 시범 소송의 결과가 사실상 이 사건의 표준이 되어 다른 재판부의 개별 심리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륙법 체계를 지닌 우리나라 법 제도 하에서 미국식 복잡소송 유형은 이질적이란 지적도 있다.
▶맞다. 대륙법 전통인 유럽도 미국식 대표자소송의 ‘옵트아웃’(대표자 소송으로 전체 피해자에게 동일한 손해배상이 이뤄지는) 방식을 도입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이 있다. 이런 제도를 들여왔을 때 미국 로펌들이 활개할 상황을 우려하기도 한다. 독일은 폭스바겐 배기가스 조작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지난해 11월 대표 확인 소송을 도입했다. 이 제도는 배상액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피해에 대한 책임만 확인하는 소송이라서 완벽한 구제가 안 된다. 유럽 국가의 이런 소극적 입장은 우리에게도 시사점이 있다. 미국 것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활성화가 어려울 수 있다. 결국 대표자소송을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광역소송 검토를 고민해볼 수 있다.

-현재 도입된 증권분야 집단 소송도 활용이 잘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민사소송 법체계는 기본적으로 대륙법이다. 그런 점을 감안해서 너무 이상적 제도를 설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질적 제도는 사장될 수밖에 없다. 집단소송 분야를 확대하는 것과 더불어 어떻게 제대를 활용되게 만드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고의 입증책임을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
▶입증책임 완화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법제도를 조금 더 전향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원고의 입증 책임이 낮아지면 사건을 판단하는 판사의 재량도 덩달아 높아져야 한다.

-법관의 재량을 늘리는 건 왜 중요한가.
▶우리나라 법관은 조정이나 화해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판결로 가야 뭐든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대륙법계 특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들도 판사 개인에 신뢰를 주기보다는 정해진 절차대로만 하길 바란다. 미국에선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있으면 거기에 사건을 몰아주는 것에 반감이 없지만 우린 무작위 배당 등 특정 요건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이런 환경에서는 미국 판사들처럼 화해나 조정을 할 때 과감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
yjw@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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