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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양승태→김용덕→재판연구관' 징용소송 개입 경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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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심 대법관 "일본에 배상청구 못한다는 논리 만들어보라" 연구관에 지시

결론 정해놓고 '논리개발' 주문…검찰 '양승태가 재판개입 지휘'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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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전 대법원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징용소송 재상고심의 주심을 맡았던 김용덕 전 대법관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하는 쪽으로 미리 결론을 내린 다음 기존 승소 판결을 뒤집을 논리를 개발하라고 담당 재판연구관에게 지시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검찰은 이보다 앞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김 전 대법관에게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대법원장→주심 대법관→재판연구관으로 이어지는 재판개입의 구체적 경로가 드러난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기존 대법원 판결을 파기할 논리를 만들라는 김 전 대법관의 지시사항이 담긴 대법원 내부문건과 이를 뒷받침하는 전·현직 판사들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8일 알려졌다.

2014년 12월 작성된 문건에 따르면 김 전 대법관은 당시 대법원 민사 총괄 재판연구관이던 황모 부장판사에게 "기존 판결이 잘못이었다고 하지 않으면서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인해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나 회사를 상대로 직접 청구를 할 수 없다는 논리를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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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덕 전 대법관 [연합뉴스 자료사진]



대법원은 2012년 5월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강제동원 피해자들 개인이 일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가 소멸하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 역시 대법원 취지대로 판결했지만 신일철주금 등 전범기업들이 재상고해 2013년 8월 다시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됐다.

재상고심 주심으로 지정된 김 전 대법관은 "새로운 사정을 대지 못하는 한 환송판결과 반대로 개인 청구권도 소멸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기 어렵다"며 기존 판결을 뒤집을 방법이 마땅찮음을 인정했다. 이 때문에 첫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고 명확히 선언하지 않으면서도 전범기업에 배상책임을 물리지 않을 수 있는 논리를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법관은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면서 새로운 논리 개발을 "남은 숙제"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은 기존 판결을 뒤집어야 한다는 양 전 대법원장의 의중이 김 전 대법관을 통해 재판 실무를 담당하는 재판연구관에게 전달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의 직접적 재판개입이 실행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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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자료사진]



김 전 대법관이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일선에 전달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은 더 있다. 김 전 대법관은 재판연구관에게 "소멸시효를 어떻게 정하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지 시뮬레이션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멸시효를 산정하는 과정에서 법리가 아닌 추가소송 수요를 고려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승소 판결이 확정되면 2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대거 소송을 낼 가능성이 큰 탓에 소멸시효 문제는 청와대의 주요 관심사였다. 법원행정처는 소멸시효를 구실로 추가소송을 막아 전범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구상한 셈이다.

차한성 전 법원행정처장은 2013년 12월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 등과 만나 '배상책임을 인정한 첫 대법원 판결로부터 3년이 지난 2015년 5월 이후에는 소멸시효가 완성돼 다른 피해자들의 소송 제기가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소멸시효 검토 결과를 공유했다. 법원행정처는 이 '공관회동' 직후 소멸시효가 끝날 때까지 소송을 지연시켜 추가소송을 봉쇄하는 시나리오를 문건으로 작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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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양승태 전 대법원장 소환 조사 (PG)
[최자윤 제작] 사진합성·일러스트



검찰은 실제 징용소송을 심리하는 대법원 소부(小部)에 다른 경로로도 부당한 영향력이 미친 정황을 확인한 상태다. 법원행정처는 재상고심이 접수된 직후부터 재판지연 전략을 담은 문건을 작성해 황 부장판사에게 전달했다. 문건에는 원고 승소 판결이 확정될 경우 일본이 항의하거나 사법적 대응에 나설 수 있고, 관련 소송이 폭주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외교부의 입장이 반영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이 같은 재판개입 방안을 보고받는 수준을 넘어 사실상 지휘했다고 보고 오는 11일 피의자로 소환해 사실관계를 추궁할 방침이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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