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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강릉 펜션 사고]펜션 보일러와 연통 이음매 1~2㎝ 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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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방안 곳곳에 구토 흔적…전형적 일산화탄소 중독 현상

실내 가스누출경보기도 없어

잠자던 학생들 ‘무방비 노출’

경향신문

18일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치고 체험학습을 온 서울 대성고 3학년 학생 3명이 사망하고 7명이 중상을 입은 강원 강릉시의 펜션 앞에 설치된 출입통제선 앞에서 경찰이 경비를 서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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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어요. 학생들이 모두 입에 흰 거품을 물고 있었고, 방과 거실 곳곳엔 토한 흔적이 남아 있었어요. 전형적인 일산화탄소 중독 증상이었습니다.”

18일 서울 대성고 3학년 학생 10명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된 강원 강릉시 경포 인근의 펜션에 도착해 구조활동을 벌인 강릉소방서 소속 119구급대원들은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신고를 받은 직후 출동한 구급·구조대원은 35명이다. 이들은 방과 거실을 뛰어다니며 숨을 쉬는 학생들을 가려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학생들은 복층 구조인 2층 펜션 거실에서 4명, 방에서 2명, 위층 방에서 4명이 발견됐다.

119대원들은 “거실에 있던 4명 중 2명과 아래층 방 안에 있던 1명 등 3명은 아예 축 늘어진 채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면서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돼 일단 호흡이 감지되는 학생들부터 먼저 구조해 비교적 규모가 큰 강릉아산병원 등으로 긴급 이송했다”고 말했다. 학생들을 구조한 직후 119구조대는 복합가스측정기로 실내 공기를 측정했다.

측정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거실에선 155ppm, 방 안에선 159ppm가량이 측정됐다. 이는 정상 수치인 20ppm보다 8배 높은 수준이다. 무색·무취해 인지할 수 없는 일산화탄소가 수능을 마치고 여행 온 학생들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것이다.

사고가 난 펜션 바로 옆집에 거주하는 고운봉씨(69)는 “오늘 오전 10시쯤 펜션 주인과 만나 안부를 물으며 얘기할 때까지 별일이 없었는데 오후에 학생들이 집단으로 일산화탄소에 중독돼 발견됐다는 얘기를 듣고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며 “좀 더 빨리 학생들이 투숙하고 있는 방을 살폈더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현장을 찾아온 주민 박양길씨(71)는 “온갖 정성을 들여 키운 어린 자식들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당했으니 부모들은 억장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린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 사고 원인은

구조작업을 마친 소방당국과 경찰은 이날 펜션 내부를 살피던 중 1.5m 높이의 베란다 벽면에 설치된 보일러와 연결된 연통의 이음매가 1~2㎝ 어긋나면서 틈이 벌어져 있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일단 이탈된 보일러 연통에서 새어나온 일산화탄소가 문틈을 통해 거실과 방으로 유입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가스안전공사 등과 함께 정밀감식을 진행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배기가스가 외부로 배출되지 않고 실내로 유입돼 사고로 이어졌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조사 중”이라며 “언제부터 연통이 이탈돼 있었는지는 좀 더 조사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펜션 실내엔 가스누출 경보기도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주택이나 펜션의 경우 설치 의무가 없다. 보일러 배기가스 유출 정황 등을 고려해볼 때 인재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 피해 왜 컸나

병원에서 측정한 환자들의 체내 일산화탄소 농도는 25~45%가량이었다. 정상은 3% 미만이다.

일산화탄소가 폐로 들어가면 혈액에 있는 헤모글로빈과 급격히 반응하며 산소의 순환을 방해해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병원에서 의식을 잃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압산소치료를 하는 것도 산소 공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강릉아산병원 관계자는 “환자 의식이 많이 떨어져 있어 현재 대기압 상태에서 100% 산소 공급 치료를 하고 있다”며 “학생들이 상당 시간 집중적으로 일산화탄소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늦게 발견된 것도 문제였다. 경찰은 “이날 오전 3시까지 건물 2층에 묶고 있던 학생들의 인기척이 있었다는 게 펜션 업주의 진술”이라며 “이날 오후 객실 중간점검을 하던 펜션 업주가 발견해 상황이 악화된 것 같다”고 전했다.

최승현 기자 cshdmz@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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