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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가스 새는 보일러, 경보기도 없어…`강릉 참사` 또 人災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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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수능을 마친 서울 대성고 학생 10명이 체험학습차 강원 강릉 경포 인근 펜션을 찾았다가 3명이 숨지고 7명이 의식을 잃은 사고가 18일 발생했다. 이날 저녁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소방당국 등 관계자들이 현장을 통제하며 합동감식을 통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다. [강릉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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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0명이 강원 강릉시 저동의 한 펜션에 합숙했다가 3명이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면서 사고 원인 등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보일러 본체와 연통 간 틈새에서 일산화탄소가 누출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산화탄소 감지기가 없어 피해를 키웠다는 점에서 또다시 전형적인 '인재'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 보일러 일산화탄소 누출 추정

경찰과 소방청 등 관계당국은 사고 직후 현장 검증을 통해 LPG 보일러와 배관 연통 간에 틈새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사고가 난 펜션은 2013년 10월 단독주택으로 건설된 뒤 게스트하우스로 사용되다가 올해 7월 펜션으로 업종을 전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반 철골 구조로 지은 2층짜리 건물에 전체 5개 객실로 구성됐다.

피해자들은 2~3층이 합쳐진 복층 구조인 201호에 투숙했다. 문제의 보일러실은 2층 실내에 위치해 있고 건물 외부로 연통이 연결돼 있었다. 사고 직후 소방당국이 가스측정기로 각방의 가스 농도를 측정한 결과 일산화탄소 농도는 150PPM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 농도(20PPM)보다 무려 8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소방당국에 따르면 일산화탄소 허용 농도는 50PPM으로 그 이상을 넘어가면 사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보일러실에서 누출된 일산화탄소가 사고 원인일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경찰은 이날 현장 브리핑에서 "보일러와 연통 간 틈새가 직접적인 사망 원인인지 추가로 조사해봐야 할 문제"라며 "필요하다면 유족과 협의를 통해 부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가스보일러를 사고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본체와 연통에 틈새가 발견됐다면 이 틈새로 일산화탄소 등이 나와 사고가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관계당국은 보일러 배관 등에 문제가 없었는지 펜션 주인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 고3 학생들 왜 단체로 투숙?

학생 10명은 수능을 치른 대성고 3학년 남학생들로 체험학습차 강릉을 찾은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10명 모두가 같은 반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명 중 대다수가 2학년 때 같은 반이어서 서로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박 일정으로 전날 오후 4시께 펜션에 입실했다가 변을 당했다. 발견 당시 피해자들은 펜션 내 거실과 방 등 곳곳에 쓰러져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온도가 높아진 바닥에 쓰러지면서 화상까지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강릉아산병원 관계자는 "방바닥이 뜨거운데 의식을 잃으면서 화상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며 "중독 시간 추정은 불가능하나 오후 1시까지 일어나지 못한 상황을 볼 때 새벽부터 중독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펜션 주인은 새벽 3시까지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고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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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원짜리 감지기만 있었어도…

일산화탄소는 색·냄새·맛이 없어 중독될 때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이 때문에 미국 캐나다 등에서는 2010년쯤부터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를 의무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야영시설에만 경보기 설치 의무가 있을 뿐 주택·펜션에는 경보기 설치 의무가 없다. 쇼핑몰에서 감지기 가격은 1만원도 하지 않는데 이 감지기만 있었어도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날 오후 5시께 소방청과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현장에 대한 합동 감식에 들어갔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이개호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진선미 여성가족부 장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이 강릉에서 관계장관 회의를 갖기도 했다. 정부는 사고 장소가 농어촌 민박인 만큼 농어촌 안전점검 대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또다시 안전사고가 일어난 데 대해 가스 누출 가능성과 함께 대책 마련 필요성을 지적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재 연 1~2회 가스 안전점검을 받도록 하고 있지만 미흡한 사례가 많다"며 "펜션 주인이 자체 점검하고 제출한 보고서만을 토대로 문제가 없다고 간주하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 "체험학습 절차상 문제는 없어"

대성고 3학년 학생들은 이번주가 현장학습 주간이어서 대부분 학교에 등교하지 않고 체험학습을 떠난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 체험학습은 '현장체험학습'의 하나로, 학생이 개인 계획에 따라 현장체험을 하고, 이를 통해 교육적 효과를 누리도록 권장하는 학습법이다. 학교장의 사전 허가를 받아 이뤄진다. 학생들이 학교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취지에서 2006년 도입됐다.

개인체험학습을 가기 위해서는 학생이나 학부모가 계획한 체험학습 신청서를 소속 학교 교장에게 제출한 뒤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자율성을 강조한 학습 활동인 만큼 교사가 학생들을 인솔하지 않는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현장체험학습은 부모 동의하에 학생이면 누구나 신청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서울 = 박대의 기자 / 안수진 기자 / 진영화 기자 / 강릉 =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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