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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8 (화)

[하종강 칼럼] 노동현장의 ‘김용균들’, 지금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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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하종강

고 김용균 청년이 담당했던 것과 비슷한 업무는 분말 형태의 재료를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 공정이 있는 현장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흘러내린 모래들을 다시 모아서 컨베이어벨트 안에 집어넣는 고된 노동을 누군가는 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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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용균 청년이 담당했던 것과 비슷한 업무는 분말 형태의 재료를 운반하는 컨베이어벨트 공정이 있는 현장 어디에서나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누군가는 그 먼지 구덩이를 헤치고 컨베이어벨트를 점검하는 일을 해야 하고, 밖으로 흘러내린 가루들을 다시 모아서 컨베이어벨트 안으로 집어넣는 고된 노동을 담당해야만 한다.

쇳물을 부어 일정한 형태의 쇳덩어리를 만들어내는 주물 공정에서는 매우 고운 모래(주물사)로 형틀(주형·거푸집)을 제작한 뒤, 그 형틀에 쇳물(용탕)을 붓고 굳은 뒤에 모래 형틀을 부수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그 주물사를 다시 사용하기 위해 처음 공정으로 옮길 때에도 역시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다. 컨베이어벨트의 방향이 꺾이거나 연결되는 부위에서는 고운 모래가 마치 폭포처럼 흘러내리기도 한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흘러내린 모래들을 다시 모아서 컨베이어벨트나 통(호퍼) 안에 집어넣는 고된 노동을 누군가는 하고 있을 것이다.

오래전, 한 주물공장을 방문해서 보니, 주물사를 이동시키는 컨베이어벨트가 서로 겹치면서 연결되는 부분 지하에 깊이 2m, 사방 4m 정도의 땅굴을 파서 작업 공간을 만들었다. 앞 공정 벨트의 맨 끝부분에서 떨어지는 모래 가루들을 빗자루와 삽으로 긁어모아 양동이에 퍼 담아서, 뒤 공정 벨트의 맨 앞부분에 갖다 붓는 일을 한 명의 노동자가 쉬지 않고 하고 있었다. 지하 계단을 내려서자마자 눈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은색 모래 가루가 날리고 있었는데 아무런 보호 장구도 없이 수건 한 장으로 얼굴을 칭칭 감은 채 눈만 빼꼼하게 뚫려 있어 마치 미라처럼 보이는 노동자가 혼자 그 고된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

안내하는 직원에게 “여기 환경측정 실시했습니까”라고 물어보았더니 “하청입니다”라고 답한다. “이 사람 특수건강진단은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하청이라니까요”라고 익숙하게 답하는데, 그 대답을 지금까지 여러번 해봤다는 듯 매우 예사로운 말씨다.

다행히 그 회사의 노동조합이 노동안전보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할 때여서 노사협의회나 산업안전보건위원회가 열릴 때마다 문제를 제기했고 그 뒤에 많이 개선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행정관청에 고소해서 기업이 엄청난 과징금 처분을 받고 문제가 개선될 가능성이 있었다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과징금은 기업이 절약할 수 있었던 비용보다 훨씬 더 많은 금액이어야 실효성을 발휘할 수 있다. 노동자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자유시장경제의 질서를 교란하는 행위로 취급해 기업 경영에 실제로 타격을 입을 만큼의 벌금이나 손해배상금을 부과하는 선진국들도 많다.

과거 정부에서는 공무원이 그 사실을 알고서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가능했다고 치자. 그래서 하청 노동자들이 여럿이나 산재로 사망했어도 원청회사는 ‘무재해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고 치자. 문재인 정부에서는 그렇게 되지 않도록 바라는 것이 과연 지나친 기대일까?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을 많이 인상했다고 했지만 실상은 거의 대부분 도로 깎였다. 탄력근로제 기간 확대로 일은 더 힘들게 하고 임금은 더 적게 받을 수밖에 없게 됐는데, 기간 확대는 이미 기정사실이니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 들어와 부작용 완화 방안을 논의하자고 한다. “사업장 점거 파업 금지와 단협 유효기간 확대 등을 허용하는 방향에는 정부도 크게 문제없다는 입장”이라는 게 경사노위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탄력근로제 논의가 끝날 때까지 노동시간 단축 위반에 대한 처벌 유예기간을 연장하는 쪽으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말까지 했다. ‘주 52시간 노동제’가 사실상 무력화된다는 뜻이다.

제발 김용균씨 사망 사건에 이은 문재인 대통령의 다짐들조차 그렇게 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위험·안전 분야의 외주화 방지를 위해 더욱 노력해주기 바란다”는 대통령의 발언 하나만이라도 정부의 구체적 조처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 문 대통령이 지난해 4월13일 광화문 광장에서 적었던 “안전 때문에 눈물짓는 국민이 단 한명도 없게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사는 사람”이라고 한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 모여서 다시는 고 김용균 청년 같은 노동자가 생기지 말도록 하자고 다짐하는 집회조차 “노동자들의 성급한 요구”로 보는 시민들이 있는 한, 그 시민들의 표를 먹고 사는 정치인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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