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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9 (수)

음주측정 거부 택시기사에 ‘무죄’ 판결···재판부의 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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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측정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50대 택시기사가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경찰은 바뀐 지침을 적용하지 못한 2심 재판부의 ‘실수’라고 보는 반면, 법원은 측정 당시 상황만으로는 처벌하기가 어렵다고 봤다.

경향신문

대구지법 전경.|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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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경북경찰청의 수사 결과와 1·2심 판결문 등을 보면, 개인택시 기사 ㄱ씨(59)는 지난해 11월25일 오후 7시56분쯤 경북 칠곡군 왜관읍 매원리의 한 도로에서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내,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음주측정을 요구받았다. 피고인에게서 술 냄새가 심하게 나고 몸을 비틀거리며 횡설수설하는 등 음주운전으로 의심할 만한 대목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같은 날 오후 8시11분부터 21분까지 약 5분 간격으로 3회에 걸쳐 ㄱ씨에게 음주측정에 응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는 측정기를 제대로 불지 않았고, 경찰은 음주상태를 확인할 수 없었다.

이에 출동 경찰관은 최초 측정 요구시점에서 약 17분이 지난 오후 8시28분쯤 음주측정거부 혐의로 현장에서 그를 체포했다. ㄱ씨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음주측정불응)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수사기관의 판단이 적합하다고 봤다. 대구지법 제10형사단독(김부한 부장판사)은 지난 5월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ㄱ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김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정당한 사유 없이 경찰 공무원의 음주측정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대구지법 제3형사부(강경호 부장판사)는 지난달 29일 ㄱ씨에 대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경찰이 ‘교통단속 처리지침’을 지키지 않고 단속을 한 만큼, 측정 불응 의사가 명백하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이유 중 하나였다.

항소심 재판부는 경찰청 교통단속 처리지침 제38조 제11항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에 따르면 경찰은 음주측정에 응하지 않는 운전자에 대해 (불응에 따른) 불이익을 10분 간격으로 3회 이상 명확히 알리고, 이후에도 측정을 거부한 때(최초 측정 요구시점부터 30분 경과)에 ‘측정거부X’로 기재해야 한다. 재판부는 경찰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경찰은 재판부가 잘못된 근거로 판단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경북경찰청 관계자는 “항소심에서 인용한 교통단속 처리지침은 사건 발생 전인 지난 4월에 바뀌었다. 법원의 잘못이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4월11일부터 시행된 지침에서는 ‘명확한 의사표시를 하지 않으면서 경찰관이 음주측정 불응에 따른 불이익을 5분 간격으로 3회 이상 알렸음(최초 측정요구부터 15분 경과)에도 계속 음주측정에 응하지 않으면 음주측정 거부자로 처리한다’고 명시돼 있다. 즉, 이번 사건의 경우 지침에 따라 처리한 셈이다.

대구지법 관계자는 “항소심 재판부가 바뀐 규정을 알았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면서 “경찰 내부에 적용되는 ‘지침’은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어겼다고 해서 법률 위반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인이 음주측정 거부 의사를 강하게 밝히지 않는 등 측정 지시에 명백하게 따르지 않았다고 볼 수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라면서 “상고심 재판부에서 다시 판단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2심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를 참고해 음주운전 여부가 의심되는 운전자가 호흡측정기에 숨을 내쉬는 시늉만 하는 등 측정을 ‘소극적’으로 거부한 경우, 이러한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반복돼 의사가 ‘명백하다’고 판단될 때 음주측정 불응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단속에 나섰던 경찰관은 1심 법정에서 “피고인이 측정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고, 그 부는 방법을 수차례 설명했지만 잘 측정이 안됐다. 피고인이 술에 많이 취해 보였다”면서 “피고인이 부는 시늉만 계속했고, 불어도 1~2초 부는 방식으로 계속 거부했다”고 진술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결국 상고심에서는 경찰청 내부 지침과 재판부의 판단이 다른 부분(시간 등), 피고인의 측정불응행위가 어떤 수준이었는지 등을 두고 법리 다툼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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