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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 (화)

[김세형 칼럼] 남북철도 연결해서 어디에 쓰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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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동해선 철도 북측구간 조사를 마친 남측 조사단이 17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동해선남북출입사무소를 빠져나오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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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남북철도 연결 착공식이 12월 26일 열린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막혀 있고 김정은의 서울 답방도 부도가 났는데 그 여파로 남북 관계가 결빙될까봐 문재인정부는 철도 연결식이라도 해보려고 발을 동동 구르는 것 같다. 우리는 노무현정권 시절 경의선, 동해선 남북철도를 연결해본 경험이 있다. 경의선은 2007년 문산~봉동(개성 부근)을 연결해 1년간 빈차로 448번을 왔다 갔다 했고, 동해선도 남쪽 제진~금강산역 25.5㎞를 시험운행하다가 북측이 금강산에 관광 간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중단했다.

남북한 공동으로 경의선 430㎞, 동해선 800㎞ 조사를 마쳤는데 북한 비핵화가 안 되면 돈 되는 물자 반입은 일절 불허다.

착공식은 시늉으로 하되 진짜 공사를 시작하려면 침목에 못(nail) 하나도 박을 수 없도록 유엔 제재가 발동 중인 게 현실이다. 그래서 착공이란 말이 어색해서 문재인 대통령은 '착수'란 용어를 차용한 것 같다.

결국 이번 철도 연결 착수식은 문재인정부의 '의지' 정도로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북한이 철도 현대화라는 떡을 얻고 싶어 감질나게 만들고 그 선물을 얻으려면 비핵화에 나서라는 미끼다. 체제 유지 전략에 약은 자들이 그 정도에 넘어갈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문재인정부는 빨리 철도 퍼주기를 하고 싶은 모양이다. 임종석 비서실장은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서울서 열차를 타고 베이징에 가서 응원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릉 KTX 사고가 났을 때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런 상황에서 철도 해외수주나 남북철도 연결을 말하기 굉장히 민망스럽다'"고 말했다가 우리 측 승객 안위 걱정은 안 하고 온통 머릿속에 북한 철도만 있느냐는 지적을 받았다.

북한의 철도는 약 5300km로 남한의 4100km보다 노선은 길지만 광복후 현대화를 안한 데다 98%가 단선(單線)이다. 왕복이 불가능하므로 한쪽이 오면 다른 쪽이 비켜서 있어야 하는 반신불수다. 따라서 평양~신의주나 동해선 일부 운행을 제외하면 그냥 녹슨 고물단지로 방치돼 있다고 보면 맞을 것 같다. 이번 공동조사에서 좀 가동된다는 노선도 시속 20~40㎞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남한 KTX의 시속 250~300㎞는 광속이다. 지난번 평창동계올림픽 때 김여정, 김영철이 타보고 평양으로 돌아가 무척 부럽다는 얘기를 그들끼리 나눴던 것 같다. 나중에 김정은이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평양 방문 시 "우리 열차는 느리니 비행기 타고 오시라"고 말한 걸 보면 짐작이 간다.

북한은 순순히 철도 공동조사에 응했는데 무슨 마음을 먹고 그랬을까. 금강산에서 열렸던 민화협 남북회담에서 북측은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을 재개하는데 "무슨 미국의 눈치를 그렇게 보느냐"고 우리 측을 압박했다. 9·24 남북정상회담 때도 대통령을 수행한 기업인들에게 비슷한 말을 했다. 미국 눈치 보지 말고 돈 좀 쓰라는 칭얼이다. 북한의 속을 떠본 철도 관계자들은 "공짜로 최신식으로 철도를 완전 판갈이 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는 말을 필자에게 귀띔했다.

물론 비핵화 문제를 김정은이 담판하지 않으면 못 하나도 못 박는다는 난관을 타개해야 남측은 움직일 수 있다. 차후 정말 북의 철도 현대화를 돕는다면 정부는 다음 항목들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1)예산은 얼마나 드는가. 공사 구간은 어떻게 되는가. 2)돈은 누가 대며, 북한 책임 몫은 얼마인가 3)북한 철도 현대화 후 경제적 효과는 무엇인가 4)안전에 위협적인 요소는 무엇이며, 제거 장치는 있는가.

네 번째 안전문제 항목의 경우 남북철도를 연결해놓았는데 그 이전에 비핵화랄지 군사대치 상황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북측은 열차를 타고 병사와 무기를 실어내려보내 남한을 공격할 초특급 보급장치만 제공하는 셈이 된다.

북한 철도 현대화에 드는 예산은 KTX 수준은 현재로선 제쳐놓은 게 맞을 것이다. 북한은 여행의 자유가 없고 남쪽에서도 부산에서 시베리아를 횡단해 유럽 여행을 한다는 일부 낭만파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그냥 소음으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3주 이상 걸리는 좁은 열차칸에 목욕도 못 하고 유럽까지 여행하는 열혈 여행객은 아마 1년에 젊은이 몇백 명에 그칠지 모르겠다. 그 정도를 위해 천문학적 초고속열차를 건설하자는 것은 정신 나간 주장이다.

보편적으로 거론하는 북한 철도 현대화는 복선전철이다. 시속 100㎞쯤 속도를 낼 수 있는 현대식이다. 이 같은 철도를 복선으로 개성~신의주 430㎞, 감호(금강산 아래쪽)~두만강 800㎞ 등 총 1230㎞를 건설하는 데 대략 38조원으로 연구원들은 계산해놓았다(교통연구원 자료, 정양석 자유한국당 의원). 여기에 개성~평양, 강릉~금강산 4차선 고속도로를 놓는데 5조6000억원쯤이 드는 것으로 돼 있다. 값이 더 저렴한 북한 측 자재와 인력을 쓸 경우에 그렇고 만약 남측 자재와 노동인력을 쓴다면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간다. 여기엔 철도를 완공한 다음 신식 열차차량을 구입하는 데 드는 돈은 빠져 있다.

그러고도 중요한 난제가 하나 도사리고 있다. 바로 전력 문제다. 남한 전철의 전력은 교류 2만 5000V의 고압 전력을 쓰는데 북한은 직류 3000V에 불과해 설사 현대식 철도가 완성돼도 그 전력으로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도로 30~40㎞로 빌빌거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남북 분단 시 남한보다 발전시설, 철도가 압도적으로 유리했던 북한 기간시설의 현재 몰골이 이렇다. 공산당 패밀리가 일당 독재를 70년간 끌어온 북의 낙후된 현실이 참으로 부끄럽다.

정부는 새해 북한경협예산으로 1조원 이상을 편성해 국회를 통과했는데 철도관련 예산이 2500억원쯤이 되는지, 더 많은지 자료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자, 모든 장애물을 넘어 경의선, 동해선을 현대식으로 완성했다고 치자. 그러면 뭘 실어 나를까.

여행객이 별로 없어 객차(客車) 수요는 빈곤할 거라는 점은 앞서 지적했다. 그럼 무슨 실어나를 화물이라도 있는가. 우선 남북한은 경협이 안 되면 경의선이 1년간 빈차로 다닌 전례가 상황을 웅변한다. 그냥 유령 객차가 왔다 갔다 할 뿐이다. 그렇다면 남측의 국제화물을 유럽으로 실어나른다? 시베리아철도(TSR), 중국경유철도(TCR), 몽골선(TMGR)을 타고 러시아, 유럽으로 화물을 운송할 시설은 갖춰질 것이다. 그럼, 기업체들이 이 시설을 사용할까? 나는 유럽의 러시아 체코 폴란드 등지에 공장을 건설해 놓고 있는 현대·기아차, 삼성전자 등에 정식으로 질문해 봤다. 지금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중국 측 항구를 통해 단 하나의 물자라도 운송하고 있느냐고.

시베리아를 경유하는 철도 노선의 운송시간과 비용이 정말 싸다면 그쪽으로 잠시 화물선을 타고 가서 운송하면 될 테니까. 돌아오는 답은 "없다(never)"였다. 20여 년 전 중후장대형 화물이 많았을 때는 몰라도 지금은 반도체나 휴대폰 같은 고가 제품은 비행기로, 나머지 기초연료 화물은 배로 부친다는 것이다. 선박도 요즘은 30만t짜리 슈퍼화물선(VLCC)이 나와 운송료가 공기 값 하고 비슷하게 초저렴하다. 불확실하고 덜컹거려 손상 우려가 높고 러시아, 중국의 유럽 노선은 자기네 화물 싣기에도 바쁠 정도로 붐비는데 한국의 화물을 실을 메리트가 전무하다는 설명이 또한 돌아왔다. 인공위성을 통해 화물 이동을 확인하는데도 공산권이라 마음이 안 놓인다는 것이다.

북한 철도를 천문학적 거금을 들여 현대화 해봤자 당장은 여행객도, 화물 운송도 쓸 필요가 없음이 명백하다. 중국 북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쪽이 개발돼 한국 기업이 진출하면 화물 유통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먼 훗날의 가정일 뿐이다 .

그러므로 정치인들이 부산에서 러시아까지 여행이나 화물을 보낸다거나 철도 연결이 안 돼 남한은 섬(island)이라며 남북철도 연결을 재촉하는 것은 철없는 말이다. 남북철도 연결 착공식을 해놓으면 그다음부터는 북측은 언제 지어줄 거냐, 안할 거면서 착공식은 왜했느냐고 따지며 괜히 부채의식만 키울 공산도 크다.

그렇다면 철도연결 착공식을 이렇게 서두를 이유가 뭔가. 탈원전을 강행해놓고 설명을 못 하는 것처럼 이또한 손해를 볼 공산이 크다. 설상가상 미국을 자극해 자동차 관세(25%)나 방위비 부담 증가로 한 방 먹인다면 자살골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임종석은 서울에서 베이징까지 3년 후 열차를 타고 가자고 했는데 현재 평양~베이징 간 국제열차 23시간20분, 서울~도라산역 1시간20분, 남북 국경 통과 2시간, 개성~평양 간 4시간30분, 도합 약 32시간 걸린다고 교통연구원은 필자의 질의에 답해왔다. 남북철도 현대화를 해봤자 개성~평양 간에서 한두 시간 단축될 터인데 30시간 열차를 타고 베이징 가서 동계올림픽을 구경할 인원이 몇 명일까?

[김세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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