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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기업 비밀 유출 우려 의사록 공개 안 해”…“투자자 알권리 차단, 시대 안 맞는 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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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래소 기업심사위 ‘비공개 회의’

한국거래소 기업심사위원회(기심위)의 ‘깜깜이 회의’가 도마에 올랐다. 기심위 회의가 베일에 싸여 있다 보니 기업의 상장폐지가 결정될 때마다 논란을 키우는 형국이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거래소 기심위는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와 같은 분식회계인데도 경남제약에 대해 상장폐지 결정을 내려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거래소 측은 경남제약에 지난 5월 이미 6개월간 개선할 수 있는 기간을 부여했지만, 경남제약이 개선계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삼성바이오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개선계획 이행여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은 거래소와 경남제약만 안다. 개미 투자자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기심위는 상장 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오른 기업의 상장폐지 여부를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외부전문가 6명과 거래소 임원 1명이 참석한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위원 명단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다.

기업경영의 계속성, 투명성 등 기심위 심사 요건이 있지만 거래소 관계자가 아닌 이상 투자자는 세부 내역을 확인할 수 없어 사실상 ‘밀실 회의’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민간기업이라 비공개한다지만

공공기관 때도 공개한 적 없어

상장폐지 결정 위원도 깜깜이


거래소에 따르면 내부 위원회 운영 규정상 비밀유지 의무가 있어 기심위를 비롯한 모든 회의의 의사록은 공개되지 않는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업의 영업기밀, 임직원의 신상과 관련된 개인정보 유출 등의 우려가 있다”며 “외부 노출 시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지 못할 수 있어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간기업이라 업무적으로 정보공개법상 공개 대상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거래소는 2009년 공공기관으로 지정됐다가 2015년 해제됐다. 하지만 공공기관이었을 때도 거래소는 기심위 등 내부 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한 적이 없다.

반면 유사한 회의체인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의 회의 결과는 사후 공개된다.

금감원도 100% 민간분담금으로 운영되는 특수법인으로 공공기관이 아니다. 제재심의위는 금융사에 대한 위법 사항 여부를 심의하는 기구다. 하지만 금감원은 기업기밀 등이 노출되지 않도록 회의에서 발언한 사람과 민감한 사항 등에 대해서는 드러나지 않도록 회의록을 작성해 공개하고 있다. 금감원 관계자는 “당사자에게 논의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 쓸데없는 공방이나 논란을 막고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공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원회의 회의록의 파급력이 더 크다. 하지만 모두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와 같은 방식으로 사후 공개된다. 이들 기관의 회의록 공개로 시장이 혼란을 겪고 있다는 문제 제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유사한 금감원 제재심의위는

기밀 유출 막으며 회의록 공개

“공익 부합하도록 논의해야”


오히려 깜깜이 기심위로 투자자 입장에선 해당 기업의 어떤 부분이 미비해 상장폐지가 결정된 것인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어 의혹만 확산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도 금감원도 공공기관이 아님에도 공익을 위해 회의록을 공개하고 있다”며 “작은 기업일지라도 상장폐지는 숱한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으로 투자자 입장에선 구체적 내용을 알권리가 있는데 거래소가 시대에 맞지 않는 관행으로 알권리를 차단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실상 기심위는 규제를 자율적으로 대행하는 공적기능을 하도록 위임받은 기구로 공공기관인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며 “공적기능을 하는 만큼 논의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로 회의록은 물론 위원들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최 교수는 “사안에 따라 공개를 하면 안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어 공개가 무조건 정답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비공개로 보호돼야 할 이익이 무엇인지, 공익에 부합하는지를 봐야 한다”며 “이를 판단할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은성 기자 k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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