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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8 (금)

[뉴스 따라잡기] 트럼프와 에르도안의 은밀한 약속? "美, 터키 정부 '눈엣가시' 귈렌 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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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즈메트 운동’으로 반정부 인사 낙인찍힌 귈렌

CNBC “트럼프, 귈렌을 ‘협상 카드’로 사용”

미국, 터키 달래기용으로 귈렌 추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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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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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30일부터 지난 1일까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들이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선 지난 여름 ‘경제 보복’를 두고 얼굴을 붉혔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도 만났습니다.

지난 8월 미국은 터키가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런슨(50)를 2년 간 구금했다는 이유로 터키 철강과 알루미늄 관세를 2배 높였고, 한때 리라화 가치가 폭락하기도 했는데요. 이에 에르도안 대통령이 ‘미국산 전자 제품 불매’를 외치며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기도 했죠. 하지만 터키가 지난 10월 앤드루 목사를 석방하며 양국 간 갈등은 일단락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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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백악관에서 터키에서 2년간 구금됐다 풀려난 앤드루 브런슨 목사와 백악관에서 만나 기도하고 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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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귈렌 추방 추진 중이라고 말해”

껄끄러운 사이였던 이 둘이 이번엔 ‘은밀한 약속’을 했나 봅니다.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 정부의 ‘정적’ 펫훌라흐 귈렌(75)을 터키로 추방하겠다고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는 메블뤼트 차우쇼을루 터키 외무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귈렌 송환 관련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에 16일(현지시간) 말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이날 차우쇼을루 장관은 “미 연방수사국(FBI)이 귈렌과 관련 있는 단체가 탈세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는 증거도 봤다”고도 주장했습니다.

이슬람학자 겸 사회활동가인 귈렌은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정적’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교육기관·싱크탱크 등을 설립해 이슬람 문화를 전파하는 히즈메트(Hizmet) 운동을 이끌고 있는데,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 운동을 정부 전복을 주도하는 테러 행위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히즈메트의 영향을 받은 인사들이 터키 정부에 비판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이유로 지난 1999년 병 치료를 이유로 미국으로 건너가 ‘셀프 망명’한 귈렌은 현재 미 펜실베니아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약 20년 간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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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약 20년동안 망명생활을 하고 있는 터키의 이슬람학자 펫훌라흐 귈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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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 대통령은 귈렌을 2016년 7월 일어난 군사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하고 당시에도 미국에 송환을 요구했고, 차우쇼을루 장관도 지난달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에게 귈렌과 그의 추종자 80명을 터키로 송환하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사실 미 행정부가 귈렌 송환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달 NBC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법무부와 연방수사국에 귈렌을 터키로 인도할 합법적 방법을 조사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귈렌을 ‘협상 카드’로 사용?

미국이 갑자기 귈렌 송환을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외신은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암살 사건으로 고조된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 양국 간 긴장을 완화하기 위한 의도라고 분석합니다. CNBC는 “트럼프 대통령이 터키가 카슈끄지 사건에 순응하는 대가로 귈렌을 ‘협상 카드’로 사용한다”고 전하기도 했는데요.

지난 10월 주이스탄불 사우디총영사관에서 카슈끄지가 암살되면서 그 배후엔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있다는 정황이 여럿 드러났습니다. 카슈끄지 암살범이 빈살만 왕세자의 측근이라는 증거 등이죠. 터키 정부는 빈살만을 피살의 배후라고 지목했고, 미 중앙정보국(CIA) 역시 같은 결론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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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 위치한 주이스탄불 사우디 총영사관에서 살해된 반체재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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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외교적 이유로 사우디를 두둔하고 있습니다. 사우디는 지난해만 미국산 무기 180억 달러(20조원) 어치를 사들인 최대 수입국인데다, 사우디를 제재할 경우 국제 유가도 상승할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사우디의 편을 드는 동시에 터키 정부의 정적을 추방해 터키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터키를 달래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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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G20 정상회담에서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만났다. [UPI=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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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파스크렐 미 하원의원도 미국이 귈렌 추방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귈렌 추방을 고려하고 있다”며 “귈렌이 무자비한 사우디 왕족을 위한 볼모가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백악관은 이번 귈렌 송환 추진과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으며, FBI 역시 귈렌의 탈세 혐의에 대해 아무런 답변도 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차우쇼을루 장관의 말이 사실이라면, G20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상대국과 밀약을 맺으며 ‘그림자 외교’를 펼친 건데요. 공교롭게도 지난 1일 G20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찬 회동을 한 날, ‘화웨이 2인자’인 멍완저우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체포되기도 했습니다. 정상 간 회담에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입니다.

김지아 기자 kim.ji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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