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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김기천 칼럼] 노란조끼와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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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비즈



"치즈 종류가 246가지나 있는 나라를 어떻게 다스릴 수 있겠는가."
드골 전(前)프랑스 대통령의 말이다. 그가 정계에서 물러나 있던 제4 공화국(1946~58년) 시절 군소정당 난립과 정국 혼란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데 대한 탄식이었다고 한다. 제4 공화국은 13년간 내각이 23번이나 바뀌었을 정도로 정정(政情)이 불안했다.

요즘은 프랑스 치즈가 350~450가지로 늘었다고 한다. 좀더 세분하면 1000가지에 이른다는 주장도 있다. 입맛이 더 다양하고 까다로워진 만큼 프랑스를 다스리기도 힘들어졌을 듯하다. 실제 근래 프랑스 대통령 중에는 박수 받으며 임기를 마친 경우가 없다. 좌·우 가릴 것 없이 모두 실패한 지도자로 고개를 숙여야 했다.

현 마크롱 대통령도 그 길로 가고 있다. 오만과 불통이 일차 원인으로 꼽힌다. 마크롱이 작년 10월 드골의 고향마을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어느 주민이 연금이 너무 적다고 말했다. 마크롱은 "드골의 원칙은 ‘우리는 자유롭게 말할 수 있지만 불평만은 절대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고 했다. 드골의 말을 빌려 프랑스인들이 불평불만이 너무 많다고 되받아 친 것이다.

대통령이 할 이야기는 아니다. ‘입방정’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로 경솔한 발언이다. 최근 프랑스를 뒤흔들고 있는 노란조끼 시위의 배경에는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행태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 자리잡고 있다. 프랑스 국내외 언론에서는 마크롱이 좀더 겸손해야 한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물론 마크롱이 겸손한 성격으로 바뀐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노란조끼 시위는 기본적으로 그의 친시장, 친기업 정책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다. 부유세 낮추고, 최저임금 동결하고, 복지 축소하고, 노동 개혁을 밀어붙인 데 대한 저항이다. 프랑스 중산층과 서민들은 그에게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낙인을 찍었다.

그러나 마크롱의 경제정책 방향과 철학을 국민들이 몰랐던 것은 아니다. 사실은 정반대다. 유류세를 제외한 다른 핵심 정책들은 모두 마크롱의 대선 공약이다. 그는 대선 유세를 통해 프랑스 경제를 살리기 위한 시장친화적 개혁 방침을 누구보다 선명하게 밝혔다.

프랑스 유권자들은 대선 결선투표에서 마크롱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마크롱이 끌어들인 아마추어 애송이들의 신생 정당에 표를 몰아주기도 했다. 의회 절대 과반의석을 안겨줬다. 야당의 견제를 받지 않고 소신껏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마크롱 집권 이후 경제 성적도 양호한 편이다. 작년엔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경제성장률이 2%대로 올라갔다. 벤처 창업과 투자가 활발해지고, 실업률이 하락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도 10년만에 처음으로 3% 아래로 떨어졌다. 완만하지만 프랑스 경제의 체질 개선과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었다.

그런데도 여론이 갑자기 뒤집어진 것은 선뜻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대통령 개인의 문제에 더해 정책 추진 방식이 매끄럽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부유세를 축소하더라도 그렇게 서두를 일은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마크롱과 그 참모들의 국정 경험이 부족한 탓에 불필요하게 오해를 산 부분도 적지 않다.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인들의 변덕과 이기심, 무책임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시라크, 사르코지, 올랑드 정부도 연금 개혁과 노동 개혁을 시도했다가 모두 실패했다. 번번이 폭력 시위와 파업에 가로막혔다. 저성장과 실업, 재정악화 등 프랑스 경제의 고질병을 다스리기 위한 개혁을 국민들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해외 언론은 "세금은 덜 내고 혜택은 더 받겠다는 게 프랑스인들의 요구"라고 꼬집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완고한 나라’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라는 프랑스의 부정적 이미지가 더 강화됐다. 폭력 시위로 인한 직접적인 피해보다 더 뼈 아픈 손실이 될 수 있다.

노란조끼 시위는 주도 세력이 없다. 공통의 요구사항이나 철학, 방향성이 모호하다. 유류세 인상 반대를 내걸고 시작됐지만 곧바로 중구난방식 요구가 쏟아져나왔다. 운동의 정체성이 분명치 않다. ‘파괴자’로 불리는 폭도들에게 주도권이 넘어가는 듯한 양상도 보인다. 뚜렷한 중심과 대안이 없다보니 일단 뒤집어 엎고 보자는 식으로 흘러가는 인상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국민투표와 미국 대선에서도 이런 흐름을 읽을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극우와 극좌 포퓰리스트 정당이 손을 잡고 정권을 잡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가적 자해(自害) 현상이 전세계로 번지고 있다. 마크롱은 포퓰리즘의 득세에 제동을 거는 상징적 존재였지만 이번에 무너졌다. 어수선한 세상이고 혼란스런 시대다.

한국의 촛불 시위는 노란조끼 시위와 유사한 점이 있다.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힘을 얻었고, 소셜미디어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노란조끼를 치켜세우며 촛불 정신을 되살리는 자극제가 되기를 기대하는 시각이 있다. 전혀 엉뚱한 해석은 아니지만 위험한 발상이다.

민노총을 비롯한 일부 세력은 촛불정신에 대한 독점적 해석권과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처럼 위세가 등등하다. 정부에 대해 끊임 없이 ‘촛불 청구서’를 들이밀며 법의 경계를 예사로 넘나들고 있다. 그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과 부담이 갈수록 부풀어 오르고 있다. 대중 운동이 왜곡·변질·악용될 위험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출발점과 양상은 다르지만 한국도 점점 프랑스처럼 통치가 안되고 개혁이 불가능한 나라로 가고 있다. 경제 활력을 되살리기 위한 근본 처방 대신 임시방편의 땜질 처방으로 버티고 있다. 국가 전체적으로 ‘버는 사람’이 구박 받고 ‘쓰는 사람’이 큰소리치는 경우가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결코 달갑지 않은 또 하나의 공통점이다.

조선비즈 논설주간(kcki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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