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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김 맛의 90%는 원초가 좌우, 1월 김이 가장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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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충남 서천군 서면 마량항에서 배를 타고 1시간을 가니 바다 위에 가로 2.2m, 세로 40m 크기의 김 양식용 틀 300여 개가 펼쳐져 있었다. 김 양식업체 동백수산의 김 양식장이다. 양식용 틀 아래로 김의 원재료인 원초(元草)가 자라고 있었다. 김예환(58) 동원 F&B 원초 감별 명장(名匠)이 수온이 3도까지 내려간 찬 바다에서 갓 건진 김 원초를 쭉 찢어 건넸다. 씹어 봤더니 입안에 김 특유의 맛과 함께 감칠맛이 돌았다. 식감은 쫄깃쫄깃했다.

국내 1위 포장김 생산업체인 동원 F&B에 1990년 입사한 김 명장은 29년째 김 수매를 담당하는 베테랑 원초 감별사다. 김 양식자들이 김 포자(홀씨)를 뿌리고 수확할 때까지의 과정을 관리하고, 품질 좋은 김 원초를 구입하는 것이 업무다. 지난 2006년에는 회사로부터 '원초 감별 명장'이라는 직함을 받았다. 1만8000여 명 동원그룹 직원 중 유일하다. 지난 2013년부터는 조미 김(기름을 바르고 구워 소금 간을 한 김)을 생산하는 동원 F&B 청주공장의 공장장으로 동원 F&B의 김 생산을 총괄하고 있다.

조선비즈

11일 충남 서천 김 양식장에서 김예환 동원F&B 원초 감별 명장이 갓 건진 검붉은 색 김 원초를 들어 보이고 있다(큰 사진). 바다에서 수확한 김 원초는 인근 공장에서 가로 21㎝·세로 19㎝ 크기로 가공된 뒤 조미 과정을 거쳐 소비자 식탁에 오른다(작은 사진). /신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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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명장은 맛있는 김을 만들기 위한 좋은 원초의 조건으로 '검붉은 색'과 '탄성'을 꼽았다. 그는 "소비자는 보통 김을 검푸른 색으로 알지만, 사실 김은 붉은빛이 도는 홍(紅)조류"라며 "품질 좋은 김 원초는 탄성이 있어 당겼을 때 잘 늘어난다"고 했다. 좋은 원초가 자라는 장소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펄이 형성된 곳이라고 했다. 조수 흐름이 좋아야 김의 먹이인 플랑크톤 공급이 활발해지기 때문이다. 김 명장은 "김의 맛과 품질은 원초가 90% 이상 좌우한다"고 강조했다.

김 제조업체들은 질 좋은 원초 확보에 공을 들인다. CJ제일제당은 지난 7월 국내 2위 김 생산업체 삼해상사의 지분 40%를 300여 억원에 취득했다. 업계 관계자는 "김 원초 공급력을 강화하기 위한 CJ제일제당의 배팅"이라고 했다. 대상은 자체 품질 등급제를 만들어 원초를 5등급으로 분류해 구매하고 있다.

김 포자를 뿌리고 50일이 지나면 '초사리 김(처음 수확하는 김)'을 딸 수 있다. 이후 15~20일 간격으로 8~9번을 더 수확한다. 보통 20~25㎝ 자라면 따는데, 태풍이 오거나 바람이 세게 불면 조류에 김이 유실되기 때문이다. 김 명장은 "찬 바닷물에 김이 냉해(冷害)를 입기 직전인 1월에 딴 김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동원 F&B는 매년 국내 김 생산량의 5% 수준인 650만속(束·가로 21㎝·세로 19㎝ 김 100장을 묶는 단위)의 원초를 구매한다.

"김 수확 철인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산지에서 먹고 자는 게 일입니다. 충남 서천을 시작으로 서해안을 따라 전남 영광·신안까지 내려간 뒤 운전대를 동쪽으로 틀죠. 이후 전남 해남·진도·완도를 거쳐 부산 낙동강 하구의 '낙동김'까지 봅니다. 김 수확 철에는 일주일에 한 번쯤 집에 가요. 매년 5만~6만㎞씩 운전해 다니는 게 20년이 넘었네요."

그는 "충남 논산 출신이지만, 30년 가까이 서해·남해를 누비다 보니 이제는 바닷사람 다 됐다"고 했다.

김 명장이 구입한 김 원초는 산지 인근 공장에서 세척된 뒤, 조미가 되지 않은 '마른 김'으로 가공돼 청주공장으로 옮겨진다. 청주공장에서 100도에 한 번, 250도에 또 한 번 굽고 소금 간을 해야 소비자 식탁에 오르는 포장 김으로 거듭난다.

그는 "원초는 장갑 끼지 않고 맨손으로 만져봐야 제대로 감별할 수 있다"며, 찬 바닷물에 두 시간 넘게 담궈 하얗게 질린 손을 내밀었다.

"찬 바닷물에서 따온 김을 하루 4~5시간씩 만지고 동상에 걸리길 수백 차례입니다. 1년 내내 손이 따뜻한 날이 없는 것, 원초감별사의 숙명 아닐까요."

서천=이동휘 기자(hw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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