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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9 (토)

[일사일언] 차라리 '쉬고 싶다'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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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봉달호 '매일 갑니다, 편의점' 저자


크리스마스와 신년 휴일을 앞두고 대한민국 곳곳에선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갑작스레 교통사고가 많아지고 사망률이 치솟는다. 입원하는 친척이 늘어나고,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가 불쑥 생겨나고, 부모님이 문득 앓아눕는다. 아르바이트 학생들만 감염되는 특별한 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하기도 한다. 명절 연휴에도 이런 일은 반복된다. 학계에도 보고된 바 없는 기묘한 풍경이다.

휴대폰이 울린다. 발신자를 살펴보니 우리 편의점 오후 알바. 올 것이 왔구나. 내용은 짐작된다. 어머니께서 편찮다거나, 친척 어른이 돌아가셨다거나, 독감에 걸렸다는 사연일 테다. 그래서 크리스마스 휴일에 쉬어야겠다는 '통보'가 접수된다. 곧이어 야간 알바에게도 전화가 온다. 그래 모두들 사고 처리 잘하고, 독감도 낫고, 연휴 다음 날 만나자꾸나.

편의점은 의외로 유사시 대체 인력을 찾기 어려운 업종이다. 식당은 하루이틀 단기 알바라도 구할 수 있지만, 매장을 통째 맡겨야 하는 편의점은 아무나 '대타'로 기용하기 쉽지 않다. 누군가 빠지면 다른 근무자가 그 시간을 메워야 한다. 원래 8시간 일하는 사람이 네댓 시간 추가로 일하는 사건은 종종 일어난다. 아무도 못하겠다면 점주가 고스란히 그 시간을 채운다. 30시간, 36시간 연속 근무는 편의점 점주들 사이에 무공훈장과도 같은 경력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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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더구나 크리스마스와 신정 모두 징검다리 휴일로 다가온다. 제법 놀기 좋은 날들이다. 점주로서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으니, 차라리 미리 통보해주시라. 솔직히 "쉬고 싶다" 말해도 원망하지 않으리. 제발 근무시간 닥쳐 문자 메시지 하나 달랑 보내는 최악의 통보만은 하지 마시길.

홀로 읽을 책이나 잔뜩 골라놓고 올해도 편의점을 지켜야겠다. 휴일 끝자락 여기저기 '기록 경신'의 무용담이 들려오겠구나. "문 닫고 하루 쉬겠습니다." 우리도 간절히 어딘가에 통보해보고 싶다.




[봉달호 '매일 갑니다, 편의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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