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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3 (수)

법원 "생명 위험하면 난민 아니라도"…인도적 체류 첫 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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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신청한 외국인에 대해 정치적·종교적 신념 등과 상관 없이 생명이 위험하다면 인도적 체류를 허가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인도적 체류에 대한 난민당국 결정이 행정소송 대상이 된 첫 사례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안전 등을 이유로 한시적으로 국내에 머물게 해주는 제도다.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으면 국내에 1년 거주하게 되고, 매년 다시 심사를 받아 체류 기간을 1년씩 연장할 수 있다.

조선일보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은 예멘인들이 밝은 표정으로 난민당국 청사를 나서고 있다./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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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승원 판사는 A씨가 인도적 체류를 허가해 달라며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A씨 일부 승소 판결 했다고 16일 밝혔다.

A씨는 2016년 2월 20일 단기 체류 목적으로 국내에 들어왔다. 입국 다음날인 21일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현 서울출입국·외국인청)에 "난민으로 인정해 달라"고 신청했다. 그는 내전이 발생한 나라에 돌아가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정부는 ‘박해를 받게될 것이라는 충분히 근거있는 공포’를 인정하기 어렵다며 작년 5월 22일 난민불인정 처분을 내렸다. 난민으로 인정받으려면 ‘정치적 견해나 종교적 신념 등을 이유로 박해받을 우려’가 있어야 한다. A씨는 이의 신청을 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A씨는 "이대로 돌아가면 정부군에 징집돼 전쟁에 참여하다 죽을 수 있다"며 정부의 난민 인정 불허에 대한 취소 소송을 냈다.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면 인도적 체류라도 허가해 달라고도 했다.

정부는 소송 과정에서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난민 신청자는 인도적 체류 허가를 신청할 권리가 없고, 해당 사항이 행정소송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도 주장했다. A씨가 애초부터 난민 신청만 했을 뿐 인도적 체류 허가를 요청하지 않은 데다 난민당국 역시 A씨에게 인도적 체류를 불허한다는 처분을 내린 적이 없기 때문에 법원에서 다툴 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원은 A씨를 난민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 판사는 "A씨는 3년 가까이 군복무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반정부 정치활동을 한 적이 없었다"며 "A씨가 자신의 나라에서 종교적,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박해를 받았거나 받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A씨의 징집 거부는 단순히 병역에 대한 반감이나 전투에 대한 공포의 수준이지, 이를 넘어 진실한 정치적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법무부의 난민불인정 처분은 적법하다"고 했다.

다만 인도적 체류는 허용해야 한다고 봤다. 이 판사는 먼저 "난민인정 신청을 한 것은 난민으로 인정되지 않을 경우 인도적 체류라도 허가해 달라는 의사표시가 포함된 것"이라며 "난민인정 신청권은 인정하면서 인도적 체류 허가 신청권이 없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했다.

이 판사는 "A씨 나라는 현재 내전 중으로 A씨가 돌아갈 경우 생명의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며 "A씨의 난민 신청과 관련한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되, 인도적 체류에 관한 청구는 받아들인다"고 했다.

[박현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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