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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브렉시트' 영국의 EU 탈퇴

[김성탁의 유레카, 유럽]보수당도 “브렉시트 협상안 반대” 25%, 무책임 덫 빠진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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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 땐 최악의 불황 온다”

영국중앙은행 등 경고성 보고서

11일 하원 표결, 통과 불투명

야당도 대안 없이 반대 정국 혼란

‘수십 년간 영국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투표’로 불리는 브렉시트 표결이 카운트 다운에 들어갔다. 테리사 메이 총리는 오는 11일(현지시간) 브렉시트 합의문이 하원을 통과하게 하려고 전국을 돈 뒤 아르헨티나 주요 20개국 정상회의(G20)로 향했다. 하지만 그에겐 샘 지마 과학부 장관의 사퇴 소식이 날아왔다. 합의안에 반발해 물러난 장관만 여섯 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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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9일 영국 런던 국회의사당 앞에서 브렉시트 반대파들이 시위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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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장 등 투표 미참여자를 뺀 하원 의원 수는 639명. 합의안이 가결되려면 과반인 320표가 필요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수당(316석)에서조차 많게는 네 명 중 한 명이 합의안에 반대한다고 보도했다. 257석의 노동당에서 찬성은 15명 가량뿐이고,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등이 반대를 선언해 통과가 불투명하다.

설상가상으로 브렉시트가 단행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영국중앙은행(BOE)은 합의 없이 EU를 떠나는 ‘노 딜(No Deal) 브렉시트'가 발생하면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한 불황을 촉발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최악의 경우 실업률이 7.5%까지 오르고 집값은 30% 하락하며, 경제가 1년 간 8%가량 위축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도요타자동차는 노딜브렉시트 시 영국 생산을 중지하겠다고 밝혔다.

영국 재무부는 합의안이 천신만고 끝에 통과되더라도 EU에 남는 것보다 15년 뒤 국내총생산이 3.9% 줄어들 것이라는 보고서를 냈다. 브렉시트 반대 단체를 이끄는 엘로이즈 토드는 “이 숫자들 뒤엔 수천개의 일자리와 비즈니스, 위험에 처한 가족들이 있다”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러나저러나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울 처지다. 크리스 레슬리 노동당 의원은 “국민 누구도 스스로와 가족을 어렵게 만들려고 국민투표를 한 게 아니다”고 씁쓸해했다.

합의안 부결 가능성이 커지자 향후 시나리오만 무성하다. ▶브렉시트 연기 ▶제2 브렉시트 국민투표 ▶EU와 재협상 ▶조기 총선 등이다. EU는 부결에 대비해 브렉시트 시기를 내년 3월 29일에서 3개월 연기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더 타임스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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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다리에 있는 '전방 도로 폐쇄(road ahead closed)' 표지판. 앞길이 막힌 영국 브렉시트 정국을 보여주는 듯 하다. [EPA=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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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이 이어지지만, 영국 정부나 정치권은 수습할 역량을 보이지 못한다. 보수당 한 의원은 “메이가 사임하려 하면 사무실 문에 못을 박을 것”이라고 BBC에 말했다. 골치 아픈 상황에 아무도 들어가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란 의미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실시된 지 2년 5개월이 흘렀지만, 영국이 여전히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무책임 탓이 크다.

당초 브렉시트 국민투표는 EU 탈퇴를 주장한 영국독립당(UKIP)이 선거에서 선전할 조짐을 보이자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이를 막으려고 2013년 선거 전략으로 꺼내 들었다. 반EU 정서를 동원한 계산이 맞아떨어져 총선에선 우위를 지켰지만, 브렉시트 국민투표가 예상과 달리 가결됐다. 자신이 친 덫에 나라가 빠져든 책임을 지고 사퇴했던 그의 정계 복귀설이 최근 나오자 노동당 의원들은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나 돌아보라”고 힐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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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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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브렉시트파인 패라지 전 UKIP 대표는 국민투표가 가결되자 할 일을 다 했다며 사임했다. 유럽의회 의원직만 유지 중인 그는 “역대 최악의 합의안이라 부결될 것”이라고 독설을 퍼붓는 중이다. EU 탈퇴 운동을 주도한 보리스 존슨 전 외무장관은 ‘소프트 브렉시트’에 반발해 사임한 후 메이 비판의 선봉에 섰다. 강경파들은 EU와 어정쩡하게 합의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인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 간 ‘하드 보더’(국경 통과 시 통관ㆍ통행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것)를 피할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는 EU 탈퇴를 선호하는 당 지지자들을 적극 설득하지 않았다. 메이의 합의안에 반대하지만 자신의 대안은 밝히지 않은 채 집권 기회를 노리는 모습이다. 사면초가인 메이는 당을 통제하지 못할 정도로 리더십이 취약하다. 제2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국민에 제안하는 용기를 메이에게 기대하긴 어렵다고 가디언은 평했다.

선거 공학으로 시작한 브렉시트는 수년 간의 혼선을 거친 지금도 최악의 결말을 남겨둔 상태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아일랜드-북아일랜드 '피의 역사'..브렉시트의 난제로
영국이 유럽연합(EU) 탈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가장 민감한데도 크게 신경 쓰지 않은 사안이 있다. 아일랜드와 북아일랜드의 국경 문제다. 양 측의 ‘피의 역사'를 고려하지 않은 탓에 브렉시트 합의안은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한계를 안게 됐다.

영국 성공회를 만든 헨리 8세는 아일랜드 주민에게도 국교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 반항하면 무력을 썼고, 북부 지역엔 영국인을 이주시켰다. 북아일랜드는 이후 신교와 가톨릭 구교 간 갈등의 무대가 됐다.

영국 지배를 받던 아일랜드가 1921년 독립했지만 북아일랜드 6개 주는 영국령으로 남았다. 이곳신교 계는 영국에 남기를 희망했고, 구교 계는 아일랜드와 통합을 주장했다. 구교 계가 무력 투쟁에 나서면서 유혈 사태가 이어졌다. 1972년 ‘피의 일요일' 사태 등 1998년까지 3500명 이상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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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아일랜드 벨파스트시에 있는 아일랜드 내전을 그린 벽화.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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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4월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서 신ㆍ구교 계 정파가 30여년 간의 유혈 분쟁을 끝내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양측은 물리적 국경 없이 상품과 인적 교류를 해왔다.

그런데 브렉시트가 시행되면서 EU 회원국인 아일랜드와 영국령인 북아일랜드의 국경이 난제로 떠올랐다. 그렇다고 북아일랜드와 영국 본섬 사이에 구분을 둘 수도 없어 테리사 메이 총리는 영국 전체가 일정 기간 EU의 관세 동맹에 남기로 합의했다. 브렉시트 강경파들이 “그게 무슨 브렉시트냐"고 반발하면서 결국 국경 문제는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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