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2 (금)

[장혜수의 카운터어택] ‘유종의 미’라는 대안적 현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2024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프리미어12에 출전했던 한국 야구대표팀이 19일 귀국했다. 1회 대회(2015) 우승, 2회(2019) 준우승에 빛났던 한국은 3회째인 이번에 조별리그도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은 13일 대만에, 15일 일본에 공교롭게도 연거푸 3-6으로 졌다. 2승 2패의 한국은 17일 일본이 쿠바에, 대만이 호주에 나란히 지기를 바라며 하릴없이 결과를 지켜봤다. 요행수 같은 건 없었다. 한국은 3승 2패로 조 3위에 그쳤고, 일본 도쿄에서 열린 4강전(슈퍼라운드)에 가지 못했다.

중앙일보

프리미어12 개막을 앞둔 9일 대만 타이베이 톈무구장에서 진행된 한국 야구대표팀의 첫 훈련을 지켜보는 류중일 감독.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 경기를 남기고 탈락을 확정한 한국은 18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호주를 5-2로 물리쳤다. 이에 여러 매체에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는 표현을 썼다. 류중일 대표팀 감독 등 코칭스태프나 류 감독을 선임한 한국야구위원회(KBO)도 그렇게 생각하며 자위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기는 게 지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호주한테 이기든 지든 달라지는 건 없었다.

과연 ‘유종의 미’, 한자로 ‘유종지미(有終之美)’이긴 했을까. 유래를 살피면 어림도 없다. 춘추시대 진(晉)나라 영공은 무도했다. 이에 신하 사계가 『시경』의 한 구절로 간언했다. “미불유초 선극유종(靡不有初 鮮克有終)” 즉 “처음이 있지 않은 게 없고 끝이 있는 게 드물다”는 말이다. 훗날 송나라 학자 범중엄이 그 뜻을 사자성어로 새긴 게 유종지미다. 시작은 누구나 한다. 끝까지 잘하는 게 유종의 미다. 대세와 무관한 마지막 한 경기 이겼다고 칭찬조로 할 말이 아니다. 끝내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는 거다.

귀국길에 류 감독은 “얻은 것도 잃은 것도 많다”며 “불펜진 등 젊은 선수들 기량 향상을 확인했다. 특히 김도영(KIA) 같은 선수를 발굴한 건 수확”이라고 했다. 아무도 류 감독이 김도영을 ‘발굴’했다고 보지 않는다. 불펜진은 대회 전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류 감독은 “국제대회에서 성적을 내려면 선발 투수를 키워야 한다”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주로 선발투수를 뽑는 외국인 선수 제도를 없애자는 건가. 이번 대표팀 선발진은 자신이 뽑은 게 아닌가. 모름지기 옛말에 ‘패장은 용맹을 얘기할 자격이 없다(敗軍之將 不可以言勇)’고 했다.

10년 전, 한국이 2014 브라질 월드컵 축구대회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뒤 홍명보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좋은 경험을 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해설위원이던 이영표가 “월드컵은 경험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일갈했다. 이를 변용해 류 감독에게 전하고 싶다. “프리미어12는 유망주를 발굴하거나 기량을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증명하는 자리”라고. 탈락 후 최종전 승리를 ‘유종의 미’로 여겼다면 그건 대안적 현실을 믿는 공허한 정신 승리에 불과하다.

장혜수 콘텐트제작에디터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